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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셔의 예술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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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옛날 사람들은 예술을 주술(마술)과 구분하지 않았다. 라스코 벽화에 그려진 사냥감의 그림들은 가상이 아닌 현실이었으며 가상과 현실은 구분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벽에 사냥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과 사냥하는 것과의 논리적 연관관계를 의심하지 않았다. 즉, 벽에 사냥하는 그림을 그리면 논리적 인과에 따라 자연스럽게 사냥감이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주술은 그렇게 주변에 있는 사물을 모두 영혼화시켰다. 오늘날 과학이 영혼까지 사물화시키는 것과 정반대로 말이다. 하지만 인류는 시간이 지나면서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를 깨닫게 된다. 과학이 시작된 것이다. 그 시작과 동시에 주술은 힘을 잃었다.

중세에 이르러 가상과 현실은 구분되기 시작한다. 이카루스의 날개에서 태양에 너무 가까이 다가간 다이달로스의 아들 이카로스는 태양의 열에 날개가 녹아 바다에 추락하고 만다. 마술의 시대가 종말을 고한 것이다. 이제 중세 미술은 두가지 흐름으로 나아간다. 바로 종교와 철학이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예술을 자신의 이데아론으로 바라보았다. 이데아 세계를 모방한 현실 세계를 또 다시 모방한 것이 바로 예술이므로 예술은 이데아 즉, 진리에서 두단계 멀어진 모방(mimesis)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장인은 침대를 만들기 전에 머릿속에 그 개념과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그 개념을 모방하여 침대를 만든다. 개념은 이데아고 침대는 질료를 통해 이데아를 모방한 현실세계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화가는 침대를 그림으로 나타낸다. 모방의 모방인 셈이다. 플라톤은 모방자가 모방을 통해 자신이 무엇을 지향하는지 나타낸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이데아를 지향하는 장인이 현실세계를 지향하는 화가보다 높은 위치에 있다고 보았다.

그에 더해 플라톤은 유용성의 관점으로 예술을 바라보았다. 유용한 것이 아름답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세에 이르러 가상과 현실이 분리되면서 가상은 더 이상 현실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이제 사람들은 아무리 동굴에 사냥감을 그리고 빌어도 사냥이 잘된다는 연관관계를 믿지 않는다. 플라톤 주의자들은 주장했다. 예술(가상)이 현실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러나 철학자들은 굴하지 않고 예술의 필요성을 찾아냈다. 바로 예술을 통해 진리를 전달할 수 있을거라 기대한 것이다.

한동안 지속된 진리의 표현방식이라는 미학의 진행은 근대 칸트의 형식미학에 의하여 깨진다. 예술은 내용이 아니라 그 형식에 있다는 것이다. 똑같은 주제를 가지고 그려도 내가 그린 그림과 램브란트가 그린 그림을 비교해보면 램브란트가 그린 그림이 미적으로 우수할 수 밖에 없다. 이는 미술이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달린 형식의 예술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그런데 사진의 발명으로 미술은 위기에 처한다. 사진이 미술을 향해 종말의 공포탄을 쏜 것이다. 아무리 현실을 그대로 묘사해도 사진이 그대로 옮겨놓은 현실의 복사를 이길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미술은 종말하지 않았다. 이제 미술은 현실 대상의 재현이기를 포기한다. 추상의 표현이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풍경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모더니즘 예술의 시작이다.

모더니즘 예술에는 다양한 분류가 있다. 모더니즘의 시작인 세잔과 피카소의 입체주의 르네 마그리트의 초현실주의와 예술의 패러다임을 바꾼 다다이스트 등...

그 중에서도 초현실주의에 속한다 할 수 있는 모리츠 코르넬리스 에셔(Morits Collelius Escher, 1898~1872, 이후 에셔)의 작품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왜 마그리트가 아닌 에셔인가.
에셔는 서양미술사에 있어 변칙적인 화가이다. 다른 초현실주의 화가들이 비이성적이고 감성적인 현실 초월을 그렸다면 에셔는 논리적이고 이성적이지만 현실적으로 재현 불가능한 작품을 남겼다. 마그리트의 <청강실, The Listening Room>(1958)을 보면 방이 있고 방 크기 만한 사과가 그려져있다. 한눈에 보자마자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는 장면임을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에셔의 작품인 <폭포, Waterfall>(1961)을 보면 얼핏보기엔 큰 문제 없이 논리적이고 현실적으로 보이지만 떨어진 폭포는 다시 흐르고 흘러 위로 올라가 다시 폭포가 되어 떨어진다. 찬찬히 보고 나서야 순환하는 폭포물과 이상하게 연결된 기둥을 통해 현실적으로 불가능함을 인지하게 된다. 이러한 변칙적인 작풍으로 인해 에셔의 작품은 누구나 모르는 사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오히려 미술관에서보다 과학관의 눈의 착시코너에서 그의 작품을 더 자주 발견하기도 한다. 획기적인 미술사적 패러다임 전환을 이루어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알지만 그와 동시에 누구도 모르는 화가 에셔, 그 점에서 에셔를 다루기로 결심했다.

에셔의 미술은 크게 5가지 분류로 나눌 수 있다. - 1. 평면균등분할(Tessellation) 2. 거울에 비춘 상 3. 가상과 현실의 혼재 4. 불가능한 형태 5. 3차원의 파괴
여기서 평면균등분할은 또 다시 4가지 분류로 나눌 수 있다. -  1. 이율배반 2. 변형(metamorphose) 3. 비유클리드 기하학 4. 칼레이도치클루스
그럼 각각의 특성을 그가 그린 작품을 통해 알아보도록 하자.

본래 풍경화를 그리던 에셔는 두차례의 스페인 여행을 기점으로 작풍을 바꾸기 시작한다. 바로 알함브라 궁전에 그려진 모자이크 문양에 영감을 받은 것이다. 이를 기반으로 에셔는 정통적 평면균등분할(이하 테셀레이션)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그 과정에서 기하학의 도움을 받게 되는데 이는 나중에 그의 비유클리드적 테셀레이션을 창조하기까지 이른다.

그는 병진이동, 회전, 미끄러짐 반사, 반사로 나타나는 이소메트리(isometry)를 활용하여 테셀레이션을 그렸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단순한 다각형이 아닌 파충류, 새, 인간등 유기체적 형상을 활용하여 테셀레이션을 구성하였다. <도마뱀 25번, Lizard No. 25>(1939)는 그가 그린 가장 기본적인 테셀레이션이다. 빈틈없이 오로지 도마뱀의 형상으로 공간을 채웠다. 에셔는 이 기본적인 형상에 여러 변형을 주었는데 그 유형으론 대표적으로 4가지가 있다.

첫번째로 이율배반이다. 그의 작품 <낮과 밤, Day and Night>(1938)을 보자. 낮과 밤은 서로 반대되는 개념이다. 낮과 밤은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 서로를 배척하는 것이다. 하지만 에셔의 그림 가운데를 보면 낮과 밤이 중첩되어 있다. 서로 배척하는 두가지가 공존하는 것을 철학에서 이율배반이라 한다.

여기에 두번째 특징인 변형이 이루어지는데 낮에서의 논은 밤으로 가면 새가 되며 반대 또한 마찬가지의 변형이 이루어진다. 이 변형을 극도로 나타낸 작품이 바로 <말씀, Verbum>(1942)이다. 가운데 빛을 기준으로 삼각형이 가장자리로 갈수록 생물의 모양으로 바뀐다. 하지만 변형은 가운데에서 가장자리로 가면서만 생기지 않는다. 가장자리끼리 좌우로 갈수록 배경과 자리를 바꿔가며 다른 생물로 변화한다. 그야말로 변화의 극치이다. 작품명이 말씀인 것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라는 『요한복음』.   첫구절에서 비롯된다. 천지창조의 모습을 테셀레이션으로 나타낸 것이다.

에셔의 테셀레이션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바로 비유클리드 기하학과 결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전에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탄생한 시대적 흐름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은 유클리드 원론의 제5공준에서 비롯되었다. "두 직선이 한 직선과 만날 때, 같은 쪽에 있는 내각의 합이 2직각(180도)보다 작으면 이 두 직선을 연장할 때 2직각보다 작은 내각을 이루는 쪽에서 반드시 만난다."인데 쉽게 설명하자면 한 직선A가 있고 직선 밖의 한 점B가 있을 때 B점을 지나는 직선 A에 평행한 직선은 하나뿐이다는 평행선 공준이다.

다른 유클리드 공리에 비해 다소 복잡해보이기 때문에 수학자들은 혹시 이 공준이 공리가 아닌 정리(공리로부터 도출된)가 아닌지 의문을 품었다. 하지만 오랜세월을 거쳐 증명불가능함이 입증되었고. 가우스는 신기하게도 이 공리를 부정한 상태에서도 수학적 체계(=공리계)에 큰문제가 없다는 무모순을 발견하게 된다. 그 후 가우스의 제자 리만이 3차원에서의 평행성 공리를 주장하게 된다. 이때까지 유클리드 기하학은 2차원 평면을 전제로한(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당연하게도 그렇게 생각했다) 이야기였다. 종이에 도형을 그렸을 때 그 도형의 성질에 대해만 이야기한 것이다.

그러나 리만은 달랐다. 도형이 아닌 종이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만약 종이가 구부러져 있다면 평행성 공리도 달라지는 것이 아닌가. 둥근 지구를 보면 경도를 나타내는 경선은 모두 평행한다. 하지만 극점에서 모두 만난다. 평행선임에도 불구하고 두 극점에서 서로 만나는 것이다. 유클리드 제5공준이 3차원 곡면에서는 적용되지 않는 것이다. 유클리드 제5공준이 적용되지 않는 기하학 이것이 바로 비유클리드 기하학이다.

여기서 비유클리드 기하학은 두가지로 분화한다. 곡면에도 두가지가 있다. 구와 같이 볼록한 곡면과 말안장과 같이 움푹한 곡면 말이다. 전자에서 삼각형의 내각은 180도가 넘는다. 반대로 후자에선 삼각형의 내각은 180도를 넘지 않는다. 전자가 구면기하학(로바체프스키기하학), 후자가 바로 쌍곡기하학이다.

다시 돌아와서 에셔는 쌍곡기하학을 테셀레이션에 활용하기로 시작했다. 쌍곡공간을 2차원에 투영한 푸앵카레 원반과 마찬가지 방법으로 테셀레이션을 그리기 시작한다. 움푹파인 면에 그린 정육각형은 그 형태가 2차원 유클리드 평면과 다를 수 밖에 없다. 그 비유클리드적 곡면을 유클리드적 평면으로 변환시켜 나타낸 것이다. 무한성을 나타내기 위해서 말이다. <서클 리미트 4 - 천사와 악마, Circle Limit IV-Devils and Angels>(1960)와 푸앵카레 원반을 비교해보면 둘 사이의 연관성을 한 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에셔는 여기에 만족하지 못했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활용하여 무한성을 표현하고자 하였지만 한계에 부딪힌 것이다. 원반의 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를 무한히 연속하려면 무한히 넓은 종이가 필요하지만 우리의 우주는 닫혀있다. 그때 에셔는 다면체를 떠올렸다. 만약 다면체에 테셀레이션을 표현하면 무한히 반복되면서도 그 자체로 닫혀있는 완벽한 무한성을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시작으로 나온 것이 바로 칼레이도치클루스다.

에셔의 두번째 특징은 거울에 비춘 상을 자주 활용했다는 것이다. 그 대표작으로 <유리구슬을 든 손, Hand with Reflecting Sphere>(1935)을 들 수 있다. 작품 속에는 유리구슬을 바라보는 에셔의 모습이 담겨있다. 이 작품은 오로지 회화로만 표현이 가능하다. 사진으로 표현하고자 한다면 필연적으로 카메라가 거울의 상에 등장하거나 시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에셔의 모습과 그 배경은 3차원이다. 하지만 상(한자)이 담긴 곳은 3차원 구의 2차원 평면이다. 하지만 이 3차원 구도 곧 2차원 그림으로 전락한다. 거울을 통해 3차원(에셔의 상) 2차원(3차원 구의 2차원 표면)으로 표현되고 에셔의 그림을 통해 다시 3차원(구)이 2차원 그림(<유리구슬을 든 손>)으로 그려지면서 구와 에셔의 상은 3차원이 아닌 2차원 그림으로 전락하고 만다.

거울은 3차원 상을 2차원 유클리드 평면에 나타낸다. 지극히 회화의 과정과 유사하다. 에셔가 거울에 비춘 상을 주로 활용한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 일 것이다. 거울의 상은 3차원 상을 2차원에 모방한 것이기 때문에 결국은 현실이 아닌 가상이다.
이제 거울 속 상이 현실과 이어지기 시작한다. 중세 이후로 분리된 가상과 현실이 다시 합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도마뱀, Reptiles>(1943)을 보면 테셀레이션 속 도마뱀이 현실로 나와 돌아다니고 다시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

<화랑, Print Gallery>(1956)에서는 관객이 보는 그림이 액자를 벗어나 관객이 있는 장소가 된다. 내가 보고 있는 가상이 곧 현실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엔 함정이 있다. 가상과 현실의 통합 또한 여전히 그림 속이기 대문에 가상 속 가상과 현실의 혼재인 것이다.

<그리는 손, Drawing Hands>(1948)을 보자. 두 손이 가상과 현실을 오가며 서로를 그린다. 하지만 실제로 이 두손을 그리는 것은 두 손 중 어느 한 손도 아닌 에셔의 실제 손이다.

헤겔은 유물론(실재론)과 관념론의 기나긴 싸움 즉, 객관과 주관의 싸움은 이율배반적으로 보이지만 절대정신으로 보면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다. 에셔의 <그리는 손>과 비교해보자면 두 손은 객관과 주관이다. 서로가 서로를 그리는 이율배반적인 상황은 2차원을 벗어나 3차원의 에셔가 두 손을 그리는 실제 손을 본다면 해결된다. 마찬가지로 객관과 주관 보다 고차원적인 절대정신으로 보면 이 이율배반적인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 작품은 2차원이 아닌 3차원 세계에서 바라본다면 단순히 에셔가 그린 그림에 지나지 않듯이 말이다.

같은 작가의 작품 <뫼비우스의 띠 II, Mobius Strip II>(1963)을 보자. 뫼비우스의 띠를 개미가 기어가고 있다. 개미의 입장에서 뫼비우스의 띠는 딜레마이다. 안과 밖이 동일하니 말이다. 하지만 3차원의 우리에게 뫼비우스의 띠는 딜레마가 아니다. 한번 꼬기만 하면 현실에서 충분히 존재할 수 있고 이미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에셔는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한 번 꼬기 시작한다. 바로 현실상 존재 불가능한 형태를 담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다른 시점을 한 공간에 묶어 놓았다. 피카소와 세잔과 같은 아이디어지만 형식은 조금 달랐다. <위와 아래, Up and Down>(1947)에서는 같은 장면을 위와 아래시점으로 본 것을 위 아래 합쳐놓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었다. 여기서 더 들어가 <세개의 세계, Three Worlds>(1955)에서는 수면 위(나무), 수면(나뭇잎), 수면 아래(물고기)로 이루어진 세 가지 시점을 하나의 작품에 동시적으로 녹아냈다.

그리고 에셔는 이제 현실적으로 존재 불가능한 조형구조를 작품에 담아내기 시작했다. <폭포, Waterfall>(1961)와 <상승과 하강, Ascending and Descending>(1960)이다. 영원히 반복되는 폭포와 계단. 테셀레이션에서 지향한 바와 마찬가지의 무한성을 2차원에 투영한 3차원의 세계로 담아낸 것이다.

원근법에 대한 비판적인 접근으로 탄생한 이 그림은 신기하게도 뫼비우스의 띠와 정반대로 오로지 2차원 평면에서만 존재한다. 3차원적으로는 성립 불가능한 딜레마인 것이다. 3차원적으로 보이지만 3차원에선 존재할 수 없고 2차원에서만 존재가능한 것. 여기서 에셔는 2차원에 투영된 3차원은 허구라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3차원의 파괴를 실행한 것이다. 에셔의 <세개의 원구체, Three Spheres I>(1945)을 보면 구로 보이는 그림이 다른 각도에서 작품을 찍은 사진을 보면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특정 시점에서만 3차원으로 느껴지는 단순한 2차원 그림인 것이다. <도리스식 기둥, Doric Columns>(1945)에서 3차원적으로 보이게 만든 격자 배경 속 도리스식 기둥은 뒤틀려져 있다. 마찬가지로 2차원에 투영된 3차원은 허구임을 강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더글리스 호프스태터는 『괴델, 에셔, 바흐』라는 저서를 통해 시대와 직업이 다른 이 세 인물에게서 추론되는 상동성(=유사성)을 이야기한다.
괴델은 불완전성 정리를 통해 정합적이면서 무모순적인 체계의 존재가 불가능함을 입증했다. 체계는 우선 공리로 부터 시작한다. 공리로부터 정리들이 도출되고 정리들은 다시 각자 여러 명제들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괴델은 제1불완전성 정리로 참임에도 불구하고 증명할 수 없는 명제가 존재함을 입증했다. 이어 제2불완전성 정리로 체계(=공리계) 스스로가 자신의 무모순성(모순이 없음)을 입증할 수 없음을 알아냈다. 완전한 줄 알았던 체계가 붕괴한 것이다.

명제 Q는 증명 불가능하다는 명제 Q가 있다 가정할 때(각주1), 명제 Q가 참이면 Q는 증명 불가능하므로 전제(명제 Q가 무모순임을 증명가능하다)와 모순되어 Q는 거짓이 된다. 하지만 Q가 거짓일 경우 Q라는 명제는 증명가능하다. 이때 Q라는 명제는 「Q라는 명제는 증명불가능하다」이므로 서로 모순되어 Q는 참이 된다. Q가 참이면 Q는 거짓이 되고 Q가 거짓이면 다시 Q가 참이 되는 아이러니한 순환의 무한적 반복. 이 순환의 무한적 반복을 호프스태터는 에셔의 <폭포>, <상승과 하강>처럼 무한히 반복되는 폭포물, 계단 그리고 바흐의 <무한히 상승하는 카논, Canon perpetuus super thema regium>에서도 떠올린 것이다.

에셔는 알함브라 궁전을 통해 영감을 받고 기하학과 예술을 접목시켜 더 높은 예술을 가능케 했다.

사진의 발명은 여러 예술가를 위기에 빠뜨렸지만 덕분에 예술은 더 높은 단계로 도약할 수 있었다. 이제 사진과 기술의 발전은 가속하여 컴퓨터그래픽을 통해 현실에 존재 불가능한 것까지 묘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인공지능이 예술의 영역까지 침범하고 있다. 이제 또 어떻게 위기에 몰린 예술의 패러다임을 바꿀 에셔와 같은 화가가 나올지 기대되는 바이다. 그건 어쩌면 당신일지도 모른다.

각주1) 지구가 3차원 구이듯 지구의 표면 지각은 2차원이다. 종이 지도를 보면 2차원평면이지 않은가. 이처럼 구의 표면은 2차원이다
각주2) 메타수학을 수학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괴델은 괴델수를 만들어 메타수학을 수학적 명제로 전환시켰다. 명제를 수리적으로 바꾸어 검증하기 시작한 것이다. [Dem(n,x)와 Sub(n,m,x)]

참고문헌
진중권. “미학오디세이 1-2.” Humanist, 2018.
양순영. “에셔(Morits Collelius Escher)의 판화를 통해서 본 비유클리드 공간.” 강릉대학교 교육대학원, 2006.
정은희. “M.C. 에셔에 있어서 공간의 문제.” 홍익대학교 대학원,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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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갑자기 프로그래밍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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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로 발달한 과학은 마법과 구별할 수 없다.

개미는 아무리 발버둥쳐도 이 세상을 구성하는 법칙인 물리학을 알지 못한다. 개미에게 세상은 마법이다.
하지만 인간은 알 수 있다. 인간에게 세상은 잘 짜여진 시스템이다.
나는 내가 매일 쓰는 컴퓨터가 어떻게 구성되고 돌아가는지 알고싶다. 아니 모르는 게 너무 분하다. 그래서 알아야겠다.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참지 못하는 사람이다.
나는 이제 마술쇼를 구경하는 관객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올해 크게 진로를 바꾸게 되었다. 본래 꿈꾸던 일본어 통역사를 포기하고, IT에 몸을 담아보고자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였다. 갑작스럽게 프로그래밍이라는 지금까지 겪어본 적도 없는 길을 선택한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오늘은 그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첫째, 살아남기 위해서다. 요즘 IT기술의 발전이 심상치 않다. AlphaGo를 시작으로 chatGPT와 그림을 그려주는 AI까지. 올해 유독 AI에 대한 깜짝 놀랄 일이 많았다. 앞으로 이런 일은 점점 더 많아질 것이다. 지금까지 예술 통역 이런 일은 절대로 AI가 대체할 수 없다고 호언장담하던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대체할 수 없다는 영역이 점점 더 줄어드는 것 같다. 앞으로 많은 직업이 IT의 영향을 직격탄으로 맞을 것이다. 내가 선택하는 직업이 IT의 영향을 받을지를 고려하는 것은 중요하다. 산업혁명 시기 마부를 꿈꾸는 것만큼 특정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위험할 수 있다는 걸 요즘 세상이 보여준다.

많은 통역일을 하는 선생님께서 통역은 절대로 대체되지 않을 것이라 말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통역일을 하는 선생님께서 AI와 IT기술에 대해 얼마나 아는지 궁금하다. AI에 대해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AI의 일에 대해 말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다. 예술가가 아무리 예술 분야는 절대로 대체되지 않을거다라고 말해도 그 사람이 AI 전문가가 아니라면 무턱대고 그 말을 믿기에는 부족함이 많다. 바둑이 경우의 수가 많다며 AI가 이기지 못할 거라 했던 2016년 AlphaGo 대국 때의 바둑 전문가들을 생각해보라.

 

둘째, 그렇다면 살아남을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IT다. 사물 인터넷이라는 말을 보면 알겠지만, 예전에 IT와 연관이 없던 모든 분야가 IT의 영역 안에 들어왔다. 금융의 영역이던 은행은 IT기술이라는 날개를 달아 핀테크로 변모했고, 자동차는 자율주행을 꿈꾸게 되었다. 폴란드어를 하는 사람은 폴란드와 일을 하는 기업에만 필요하지만, 영어를 하는 사람은 어느 기업에서든 환영받는다. IT는 차세대 영어다. 영어를 쓰지 않는 곳이 없듯, IT 또한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어쩌면 영어보다 더.

 

셋째, 불편한 점을 스스로 개선할 수 있다. IT기술을 다루는 사람은 이제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이다. 소비자는 그저 시장에 나와있는 제품을 소비할 뿐이다. 본인이 원하는 제품이 있다면, 기업에서 그러한 제품을 만들어주길 기다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생산자는 다르다. 생산자는 본인이 원하는 것을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다. 냉장고에 있는 식품의 유통기한을 입력하면 해당 날짜에 알람을 보내도록 설정하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 살다보면 여러 불편한 점이 생기고, 이 중에서는 IT기술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많다. 이러한 기술을 다룰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 삶을 더 편리하게 만들 수 있다. 기업이 불편한 점을 알아차리고 해결책을 주기 전에 말이다.

 

넷째, 장소의 제약이 사라진다. IT업계는 컴퓨터로 일을 한다. 컴퓨터와 네트워크만 있다면 내가 파리에 있든 도쿄에 있든 상관없이 업무가 가능하다. 재택 근무와 디지털 노마드가 가능하다. 코로나19 바이러스와 같은 감염병 상황에서도 언제든지 유연하게 업무 조정이 가능하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로써는 장소의 제약이 없다는 것이 엄청난 매력이지 않을 수 없다. 에펠탑을 배경으로 카페에 노트북을 켜고 일을 한다니 얼마나 멋진가.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럴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IT업계를 벗어나면 이러한 선택조차 불가능하다. 소방관과 경찰관이 직장을 놔두고 파리에서 근무가 가능할까? 파리 소방서와 경찰서가 아니라면 힘들 것이다. IT업계는 다른 어느 업계보다도 장소의 제약에서 자유롭다.

 

다섯째, 소프트웨어는 한계가 없다. 우리는 비행기가 아니면 날 수 없다. 하지만 컴퓨터 세계 속 우리는 어떠한가. 프로그램 코드를 구현하면 우리의 아바타는 날아다닐 수 있다. 현실에서 불가능한 것이 소프트웨어의 세계 안이라면 구현할 수 있다. 집채만한 지우개도, 몇천년 전에 터진 화산의 위력도 컴퓨터로 재현할 수 있다.

 

여섯째, 직장을 잃어도 기술은 남는다. 문과 직렬에서 쌓은 커리어는 온전히 그 회사를 위한 것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은퇴를 하면 회사에서 쌓은 직무 능력이 재취업시 활용하기 어렵다. 어렵게 재취업을 하더라도 그 회사에 맞게 새로 시작해야 한다. 문과 직렬에서 법무와 회계가 아닌 이상 진입장벽이 높은 기술을 가지고 있는 직렬은 많지 않다. 하지만 프로그래밍 능력은 직장을 벗어나도 존재하며 활용 가능하다. 직장이 아닌 프리랜서라는 선택도 가능하다. 평생 직장이 사라지는 요즘 세상에서는 더더욱 중요한 사항이다.

 

일곱째, 준비과정이 명확하고 가시적이다. 문과 계열의 많은 직렬이 자기소개서와 면접전형에서 정성평가를 받게 된다. 따라서 명확하게 통과되는 커트라인이 존재하지 않는다. 경험을 수치화하더라도 모호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열심히 대외활동 성공경험 리더십 경험을 어필하지만 합격 기준을 따지자면 모호하기만 하다. 하지만 IT계열은 명확하게 요구 능력을 제시하고 본인이 요구하는 능력을 충족하는지 판단하기가 다른 직군보다 쉬운 편이다.

 

여덟째, 개발하는 환경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 동아리 친구들이나 군대 동기 등 내가 100% 어문계열임에도 불구하고 주변에 컴퓨터공학 전공이나 IT계열에 재직중인 사람들이 많았고, 어깨 너머로 바라보다 보니 개발자가 하는 일에 대해 많이 듣고 배웠다. 맨땅에서 시작하기 보다 주변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보니 안심하고 시작할 수 있다. 언제든지 물어볼 수 있는 현직자를 곁에 두고 배움을 시작하는 건 매우 큰 이점이다.

 

아홉째, 나의 성향과 어울리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평양감사도 제 싫다면 그만이듯, 아무리 좋은 일도 나랑 맞지 않는다면 그저 괴로울 뿐이다. 다행스럽게도 적성에는 맞는 거 같다. 교양수업으로 C언어를 배웠을 때 나름 좋은 성적도 거두었고, 새로운 걸 배워서 살짝 힘들긴 했지만 그걸 넘어서는 재미가 있었다. 열심히 생각해서 구현했을 때 제대로 작동할 때의 기쁨. 많이 배우면 배울수록 어려운 문제를 풀수록 그 기쁨은 커지지 않을까 기대한다.

 

물론 아직까지 본격적인 프로그래밍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두근두근하는 마음도 불안한 마음도 있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프로그래밍이라는 것이 배워서 손해볼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프로그래밍은 앞으로 내 삶에 있어 큰 무기가 될 것이다. 설사 너무 어려워 포기하고 다시 통역의 길을 밟게 되더라도, IT영역에서 쌓은 지식은 탄탄한 전문분야 하나를 만들어줄 것이다. 그리고 IT소양은 요즘 세상의 핵심 역량이다. 결코 개발자만의 무기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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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보예 지젝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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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젝이란 철학자는 유명한 철학자이지만, 한국에서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은 듯 하다. 그 이유로는 아무래도 고등학교 윤리나 도덕 교과서에 그 이름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 가장 큰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지젝이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은 있어도 그의 철학에 대해 아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 이유로는 그에게 영향을 준 헤겔 마르크스 프로이트 라캉 등의 철학자들이 읽기 쉬운 편은 아니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아무래도 슬라보예 지젝의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 헤겔과 라캉 그리고 마르크스주의 등 수많은 철학에 대한 이해를 동반해야 한다는 점이 가장 먼저 발목을 잡았다. 따라서 먼저 라캉과 헤겔이라는 두 철학자의 철학을 지젝은 어떻게 해석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지젝이 말하는 라캉을 통해 헤겔을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우선 지젝은 헤겔의 변증법을 조금 다르게 바라본다. 지젝이 말하는 변증법의 정반합에서 합은 단순히 합치는 것이 아닌, 모순을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지젝은 여기서 라캉의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를 결합한다. 라캉 철학에서 상징계란 우리의 언어체계를 말한다. 이때 기표는 기의에 닿지 못하고 계속 미끄러지게 된다고 말하는데, 결국은 기표와 기의가 일치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지젝의 말에 따르면 결핍인데, 결국 실재계를 나타내는 상징계가 그것을 온전히 표현해내지 못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상징계는 실재계가 있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다. 상징계가 실재계를 온전하게 드러낸다면 그것은 곧 실재계가 된다. 따라서 상징계는 자신의 결핍 때문에 존재할 수 있다는 아이러니한 일이 되는 것이다. 만약 상징계의 기표가 기의를 완전히 나타낼 수 있다면, 주체와 타자의 구분은 사라지고 결국 이는 주체의 소멸을 의미하게 된다. 우리는 상징계의 결핍 때문에 존재할 수 있다는 충격적인 이론은 욕망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혹자는 지젝의 이러한 헤겔을 통한 라캉의 해석이 올바르지 않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설령 그 철학자가 의도한 바가 아니라 하더라도 새로운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지젝의 철학은 큰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첫번째 매트릭스 세계는 결국 실패로 끝나게 되는데, 그 이유로 사람들은 모두가 행복한 이상사회를 견딜 수 없었고, 불안과 결핍이 있어야 비로소 사회가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을 들었다. 우리는 항상 욕망이 이루어지기를 희망하지만, 그 욕망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우리가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항상 무언가를 욕망하는 상태에 남는 것이다. 이것이 곧 결핍이다. 지젝의 헤겔을 통해 본 라캉철학은 굉장히 흥미로운 해석을 제시한다.

 

영화 매트릭스의 개봉이 1999년임에 비해, 슬라보예 지젝의 첫번째 저작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이 1989년에 나왔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매트릭스에 나온 철학들이 데카르트부터 라캉, 불교철학까지 다양하고 이러한 철학적 사유는 당연히 매트릭스 개봉 이전부터 존재해왔다. 하지만 매트릭스라는 미디어 매체를 통해 대중들을 철학적 사유의 길로 인도했다. 우리 근처에 각종 미디어가 출현한지 오랜 시간이 지났다. 따라서 철학에서도 미디어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디어를 통해 철학을 한 사람들은 얼마나 되는가? 이 점에서 영화와 농담을 통해 대중들을 끌어모으는 지젝의 행보는 철학자로서는 독보적이라 할 수 있다. 혹자는 지젝을 MTV 철학자로 폄하하기도 하지만, 지젝이 적정기술과 같이 적정인문학도 필요하다 말했듯, 나 또한 인문학을 대중들에게 가까이 전달하는 것은 바람직한 길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지젝에 동의하는 바이다. 지젝만큼 유튜브에 나와 이야기하고 독특한 말투와 몸짓으로 대중을 휘어잡는 철학자가 얼마나 있는가 말이다. 특히나 그가 이야기하는 모순에 대한 농담과 말들은 설령 그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더라도 우리 마음 속에 무언가 말하고자 하는 느낌을 준다. 따라서 점점 그의 말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다만 그의 철학이 헤겔과 라캉 철학을 뿌리로 두고 있는 만큼, 그의 말이 대단히 매력적이지만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 다소 아쉬울 뿐이다.

 

지젝은 현대사회의 이데올로기 즉 시스템에 대해서도 의견을 남겼다. 현대시대 공산주의가 붕괴되고 난 이후 세계에서 포스트모던주의자는 탈이데올로기를 주장했지만, 지젝은 그것조차 이데올로기라고 지적한다. 이데올로기를 벗어났다고 믿는 그 자체가 이데올로기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자본주의의 종말을 이야기했듯이, 그 또한 자본주의의 끝을 이야기한다. 이는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이야기했던 “역사의 종말”과는 반대되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흔히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하나의 세트이며, 이 두 체제가 당연히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지젝은 이러한 믿음은 근거가 없으며, 자본주의 스스로의 한계로 인해 결국은 종말을 맞을 것이라 말한다. 실제로 현재 사회에서 공산주의 이후 자본주의로 전향한 국가 중에서 완벽한 민주주의를 이행하는 나라가 많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젝은 마르크스의 자본론에서 이야기하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이 오늘날에도 해결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동안 자본주의는 수정을 거듭해왔다. 뉴딜정책과 수정자본주의, 신자유주의까지. 하지만 지젝은 자본주의를 조금 손보는 정도로는 그 근원적인 해결이 불가능하다 지적한다.

 

여기서 지젝이 제시한 것은 공산주의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 레닌주의나 스탈린주의와 같이 실패한 공산주의를 다시 하자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말하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공산주의다. 하지만 지젝이 말하는 새로운 공산주의란 어떤 것인지, 왜 다른 체제가 아닌 공산주의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그는 이에 대해 자신은 문제제기에 의의를 두고 있다고 말하지만, 철학자로서 그가 어떤 체제를 생각하고 있는지 들을 수 없다는 것은 굉장히 공허하면서도 아쉬운 부분이다.

 

지젝은 새로운 방향성을 우리에게 던졌다. 라캉과 헤겔에 대한 새로운 해석, 그리고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아닌 새로운 체제의 가능성을 말이다. 그리고 누구보다 대중에게 가까운 철학자라 할 수 있다. 또한 스스로 좌파 철학자이자 마르크스 주의자라 말하지만 정치적 올바름과 언더도그마를 누구보다 경계한다는 점 또한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그 새로운 체제가 왜 마르크스 주의여야 하고 어떤 체제인지에 대해 말하지 않은 점, 그리고 대중적으로 다가오지만 그의 철학이 상당히 이해하기 어려운 편이라는 점은 한계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 이현우 “로쟈와 함께 읽는 지젝” 자음과모음, 2011.
  • 토니 마이어스 “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미워하는가” 앨피, 2005.
  • 최영송 “슬라보예 지젝,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 커뮤니케이션북스, 2016.

 

논문

  • 최진석 “슬라보예 지젝과 공산주의의 (불)가능성” 마르크스주의 연구 제11권 제3호, 2014.
  • 김원호 “S. 지젝의 비평담론 연구” 경북대학교 대학원, 2007.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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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본에 가기 주저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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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는 우리에게 날개이기도 하지만 족쇄가 되기도 합니다. 무언가 조사할 때 외국어를 할 줄 알면 그 정보량은 배로 늘어나지요. 이때 외국어는 날개입니다. 하지만 외국어로 발표를 하는 상황은 어떻습니까? 모국어만큼 유창하고 적확한 표현을 사용한 발표가 가능할까요? 많은 경우 그렇지 못합니다. 이 경우 외국어는 족쇄가 됩니다. 모국어로 전달할 수 있는 내용을 100퍼센트 전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처음으로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를 학습한 것이 2011년, 중학교 2학년 때이니 올해로 일본어를 배운지 12년이 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저에게 일본어는 극복하지 못한 산이기만 합니다.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 무지개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소년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손에 닿을 것만 같았던 무지개는 소년이 아무리 다가가도 잡을 수 없었습니다. 언어란 무지개와 같은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조차 한국어를 완벽히 습득했다 말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외국인이라면 오죽할까요?

사실 일본에서 일본어를 참 잘한다고 칭찬을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건 제가 외국인이라는 전제하에 나온 칭찬입니다. 제가 일본인이라면 참 말못한다는 평가를 받았을테지요. 어쩌면 외국인이라는 둘레 속에서 제 일본어 실력에 만족하면서 살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도무지 제게는 저 멀리 네이티브의 유창성과 표현력이 탐이 나고 탐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멀리 있는 무지개를 쫓고자 하는 마음은 때로는 제 일본어 실력에 날개를 달아주는 향상심이기도 했지만 오랜 기간 제 언어 실력에 회의감을 가지게 하고 무력감을 안겨주는 족쇄이기도 했습니다.

외국어 실력에 대한 무력감은 여느 다른 학문과 결을 달리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학문은 원어민이 없습니다. 태어나자마자 미적분을 하는 사람은 없지요. 모두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산수를 하고 중고등학교 때 미적분을 배웁니다. 하지만 외국어 실력은 모국어 화자라는 강력한 비교대상이 존재합니다. 그들의 존재는 우리에게 자주 무력감을 안겨줍니다. 외국어 학습이 어려운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자꾸 무너지는 젠가를 쌓는 일이 어렵듯이 말입니다.

제 인생의 절반이 넘는 시간을 일본어와 함께 했지만 아직도 저에게 일본어는 어렵기만 합니다. 아직도 3페이지가 넘어가는 일본어 학술지를 읽지 못하고 번역기에 기대고 맙니다. 일본어로 진행되는 회의는 한국어로 진행되는 회의보다 몇 배나 많은 에너지를 소모합니다. 그런데 주변 모든 것이 일본어로 가득한 상황을 제가 감히 살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모르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사전을 검색하고 검색이 여의치 않으면 그저 아는 척하며 넘어가야 하는 삶... 물 속에 들어가면 목소리가 번져서 잘 들리지 않듯이, 집중하지 않으면 그저 둥둥 떠다니는 말을 집중해서 들어야 하는 삶...

그저 무섭기만 합니다. 아직도 자신이 없기만 합니다. 나약한 목소리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아니 저는 나약합니다. 그래서 모든 해외생활을 하는 분들이 대단하게만 느껴집니다.

대학생활이 점점 막을 내리는 것이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결정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일본어를 하지 못하는 그 순간이야말로 당당히 일본에 가서 살아보겠다 말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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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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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예상치 못한 감염병이 대한민국은 물론 세계를 덮쳤다. 코로나19로 전세계 모든 경제가 정지되었고, 각 정부는 한동안 대처 방안을 마련하지 못해 난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코로나 상황이 이어지자 사람들은 하나 둘 적응하기 시작했다. 교실에서 이루어지던 수업에서 온라인강의가 부상했고, 회사로 출근하던 사람들은 집에서 화상회의를 통해 업무를 보았다. 감염 위험으로 공간의 구속을 가져온 코로나는 역설적으로 공간의 제약을 해결하는 열쇠가 되었다. 우리는 이제 비행기를 타고 해외에, 버스를 타고 회사에 가는 대신 집에서 인터넷을 통해 서로와 연결된다. 또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여러가지 취미활동도 인터넷을 통해 유행을 탔다. 달고나커피와 홈트레이닝 등… 이처럼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우리의 일상은 전과 다른 생활로 변모했다. 이러한 변화가 이제 표준으로 자리하고 있다. 새로운 표준, 바로 뉴노멀(new-normal)이다.

 

하지만 이러한 뉴노멀은 코로나 때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산업혁명 시기 농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은 도시로, 공장으로 발을 돌렸고, 마부들은 자동차의 발명으로 직업을 잃었다. 최근엔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발명으로 생산성이 크게 증대되었고 이 둘은 우리의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물과 같은 존재로 자리잡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문명은 발전을 거듭했고 우리는 그에 발맞추어 생활을 바꾸었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같이 급격한 변화를 요하는 일이 없었기에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다. 이제 문명의 발전이란 강은 더 빠른 속도로 흐르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강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흘러간다면 이는 종이배로 파도를 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이제 대비를 할 필요가 있다. 종이배가 아닌 커다란 배를 준비해 변화의 흐름에 유연하게 대처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만 하는가. 그 전에 이 뉴노멀의 특징에 대해 우선 살펴볼 필요가 있다. 뉴노멀 시대의 가장 큰 특징은 제약이 사라짐에 있다. 기존에 불가능했던 것들이 점점 가능해지고 있다. 전화의 발명으로 우리는 멀리 떨어진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고, 비행기의 발명으로 단시간에 외국으로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공간과 시간은 이제 우리의 적이 아니다. 우리는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어 소통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를 읽은 기업들은 현재 승승장구하고 있다. 화상회의 플랫폼 웹엑스와 줌은 도약을 거듭했고, 유례없는 배달과 택배 서비스의 호황이 찾아왔다. 반대로 기존의 대면 중심 영업은 직격탄을 맞았다. 음식점들은 하나 둘 배달서비스를 시작했으며, 헬스장 영업정지로 인해 유튜버의 길을 걸은 사람도 생겼다. 코로나는 점점 우리의 삶을 죄어오고 있다. 이젠 강한 자가 아닌 빠른 자가 살아남는 시대가 된 것이다.

 

뉴노멀의 또 다른 특징은 소통에 있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사람은 사람을 원하게 유전자적으로 설계되어져 있다. 그렇다면 물리적인 접촉이 금지된 지금 사람들은 어떻게 소통하는가. 비대면 소통이 그 대안으로 부상했다. 단순히 목소리만 주고 받는 클럽하우스라는 어플리케이션이 유행을 탔으며, 기존 회식을 온라인 술자리로 대신하는 움직임도 늘고 있다. 오히려 물리적 한계를 넘어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좋아하는 아이돌 가수를 TV에서 바라보는 것을 넘어 인스타그램을 통해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쌍방향 소통의 등장이다. 코로나로 인한 피로감과 우울감이 우리를 덮쳤지만, 우리는 소통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 끈을 꼭 쥐고 절대로 놓으려 하지 않는다. 그만큼 인간에게 소통은 중요한 의미를 띠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그 답을 알 것만 같다. 바로 속도와 소통이다. 빠른 상황대처능력과 의사소통능력 이 두가지가 앞으로의 시대를 열어가는 열쇠가 될 것이다. 이는 제4차 산업혁명의 흐름과 물결을 같이 한다. 제4차 산업혁명으로 앞길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측에 실패하더라도 유연하게 시대의 흐름을 읽고 그에 맞추는 능력이 필요한 것이다. 또한 아무리 기계와 인공지능이 발전한다 하더라도 인간 간의 의사소통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 빛을 발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기술의 발달로 인해 생겨날 인간의 소통문제를 걱정한다. 하지만 기술은 인간의 적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기술은 그 답을 찾아왔다. 기술의 한계를 기술이 해결하고 있다. 코로나 상황에서 생긴 의사소통의 제약을 기술이 해결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반기술주의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옳지 않다. 시대의 흐름은 거스를 수 없다. 폭포의 흐르는 물을 거꾸로 돌릴 수 없듯이 말이다. 산업혁명 시기 러다이트 운동이 실패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더 이상 단순히 무언가를 잘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정리하자면 우리는 미래를 예측하고 빠르게 대응하고 더 나은 소통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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