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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셔의 예술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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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옛날 사람들은 예술을 주술(마술)과 구분하지 않았다. 라스코 벽화에 그려진 사냥감의 그림들은 가상이 아닌 현실이었으며 가상과 현실은 구분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벽에 사냥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과 사냥하는 것과의 논리적 연관관계를 의심하지 않았다. 즉, 벽에 사냥하는 그림을 그리면 논리적 인과에 따라 자연스럽게 사냥감이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주술은 그렇게 주변에 있는 사물을 모두 영혼화시켰다. 오늘날 과학이 영혼까지 사물화시키는 것과 정반대로 말이다. 하지만 인류는 시간이 지나면서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를 깨닫게 된다. 과학이 시작된 것이다. 그 시작과 동시에 주술은 힘을 잃었다.

중세에 이르러 가상과 현실은 구분되기 시작한다. 이카루스의 날개에서 태양에 너무 가까이 다가간 다이달로스의 아들 이카로스는 태양의 열에 날개가 녹아 바다에 추락하고 만다. 마술의 시대가 종말을 고한 것이다. 이제 중세 미술은 두가지 흐름으로 나아간다. 바로 종교와 철학이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예술을 자신의 이데아론으로 바라보았다. 이데아 세계를 모방한 현실 세계를 또 다시 모방한 것이 바로 예술이므로 예술은 이데아 즉, 진리에서 두단계 멀어진 모방(mimesis)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장인은 침대를 만들기 전에 머릿속에 그 개념과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그 개념을 모방하여 침대를 만든다. 개념은 이데아고 침대는 질료를 통해 이데아를 모방한 현실세계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화가는 침대를 그림으로 나타낸다. 모방의 모방인 셈이다. 플라톤은 모방자가 모방을 통해 자신이 무엇을 지향하는지 나타낸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이데아를 지향하는 장인이 현실세계를 지향하는 화가보다 높은 위치에 있다고 보았다.

그에 더해 플라톤은 유용성의 관점으로 예술을 바라보았다. 유용한 것이 아름답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세에 이르러 가상과 현실이 분리되면서 가상은 더 이상 현실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이제 사람들은 아무리 동굴에 사냥감을 그리고 빌어도 사냥이 잘된다는 연관관계를 믿지 않는다. 플라톤 주의자들은 주장했다. 예술(가상)이 현실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러나 철학자들은 굴하지 않고 예술의 필요성을 찾아냈다. 바로 예술을 통해 진리를 전달할 수 있을거라 기대한 것이다.

한동안 지속된 진리의 표현방식이라는 미학의 진행은 근대 칸트의 형식미학에 의하여 깨진다. 예술은 내용이 아니라 그 형식에 있다는 것이다. 똑같은 주제를 가지고 그려도 내가 그린 그림과 램브란트가 그린 그림을 비교해보면 램브란트가 그린 그림이 미적으로 우수할 수 밖에 없다. 이는 미술이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달린 형식의 예술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그런데 사진의 발명으로 미술은 위기에 처한다. 사진이 미술을 향해 종말의 공포탄을 쏜 것이다. 아무리 현실을 그대로 묘사해도 사진이 그대로 옮겨놓은 현실의 복사를 이길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미술은 종말하지 않았다. 이제 미술은 현실 대상의 재현이기를 포기한다. 추상의 표현이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풍경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모더니즘 예술의 시작이다.

모더니즘 예술에는 다양한 분류가 있다. 모더니즘의 시작인 세잔과 피카소의 입체주의 르네 마그리트의 초현실주의와 예술의 패러다임을 바꾼 다다이스트 등...

그 중에서도 초현실주의에 속한다 할 수 있는 모리츠 코르넬리스 에셔(Morits Collelius Escher, 1898~1872, 이후 에셔)의 작품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왜 마그리트가 아닌 에셔인가.
에셔는 서양미술사에 있어 변칙적인 화가이다. 다른 초현실주의 화가들이 비이성적이고 감성적인 현실 초월을 그렸다면 에셔는 논리적이고 이성적이지만 현실적으로 재현 불가능한 작품을 남겼다. 마그리트의 <청강실, The Listening Room>(1958)을 보면 방이 있고 방 크기 만한 사과가 그려져있다. 한눈에 보자마자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는 장면임을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에셔의 작품인 <폭포, Waterfall>(1961)을 보면 얼핏보기엔 큰 문제 없이 논리적이고 현실적으로 보이지만 떨어진 폭포는 다시 흐르고 흘러 위로 올라가 다시 폭포가 되어 떨어진다. 찬찬히 보고 나서야 순환하는 폭포물과 이상하게 연결된 기둥을 통해 현실적으로 불가능함을 인지하게 된다. 이러한 변칙적인 작풍으로 인해 에셔의 작품은 누구나 모르는 사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오히려 미술관에서보다 과학관의 눈의 착시코너에서 그의 작품을 더 자주 발견하기도 한다. 획기적인 미술사적 패러다임 전환을 이루어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알지만 그와 동시에 누구도 모르는 화가 에셔, 그 점에서 에셔를 다루기로 결심했다.

에셔의 미술은 크게 5가지 분류로 나눌 수 있다. - 1. 평면균등분할(Tessellation) 2. 거울에 비춘 상 3. 가상과 현실의 혼재 4. 불가능한 형태 5. 3차원의 파괴
여기서 평면균등분할은 또 다시 4가지 분류로 나눌 수 있다. -  1. 이율배반 2. 변형(metamorphose) 3. 비유클리드 기하학 4. 칼레이도치클루스
그럼 각각의 특성을 그가 그린 작품을 통해 알아보도록 하자.

본래 풍경화를 그리던 에셔는 두차례의 스페인 여행을 기점으로 작풍을 바꾸기 시작한다. 바로 알함브라 궁전에 그려진 모자이크 문양에 영감을 받은 것이다. 이를 기반으로 에셔는 정통적 평면균등분할(이하 테셀레이션)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그 과정에서 기하학의 도움을 받게 되는데 이는 나중에 그의 비유클리드적 테셀레이션을 창조하기까지 이른다.

그는 병진이동, 회전, 미끄러짐 반사, 반사로 나타나는 이소메트리(isometry)를 활용하여 테셀레이션을 그렸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단순한 다각형이 아닌 파충류, 새, 인간등 유기체적 형상을 활용하여 테셀레이션을 구성하였다. <도마뱀 25번, Lizard No. 25>(1939)는 그가 그린 가장 기본적인 테셀레이션이다. 빈틈없이 오로지 도마뱀의 형상으로 공간을 채웠다. 에셔는 이 기본적인 형상에 여러 변형을 주었는데 그 유형으론 대표적으로 4가지가 있다.

첫번째로 이율배반이다. 그의 작품 <낮과 밤, Day and Night>(1938)을 보자. 낮과 밤은 서로 반대되는 개념이다. 낮과 밤은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 서로를 배척하는 것이다. 하지만 에셔의 그림 가운데를 보면 낮과 밤이 중첩되어 있다. 서로 배척하는 두가지가 공존하는 것을 철학에서 이율배반이라 한다.

여기에 두번째 특징인 변형이 이루어지는데 낮에서의 논은 밤으로 가면 새가 되며 반대 또한 마찬가지의 변형이 이루어진다. 이 변형을 극도로 나타낸 작품이 바로 <말씀, Verbum>(1942)이다. 가운데 빛을 기준으로 삼각형이 가장자리로 갈수록 생물의 모양으로 바뀐다. 하지만 변형은 가운데에서 가장자리로 가면서만 생기지 않는다. 가장자리끼리 좌우로 갈수록 배경과 자리를 바꿔가며 다른 생물로 변화한다. 그야말로 변화의 극치이다. 작품명이 말씀인 것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라는 『요한복음』.   첫구절에서 비롯된다. 천지창조의 모습을 테셀레이션으로 나타낸 것이다.

에셔의 테셀레이션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바로 비유클리드 기하학과 결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전에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탄생한 시대적 흐름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은 유클리드 원론의 제5공준에서 비롯되었다. "두 직선이 한 직선과 만날 때, 같은 쪽에 있는 내각의 합이 2직각(180도)보다 작으면 이 두 직선을 연장할 때 2직각보다 작은 내각을 이루는 쪽에서 반드시 만난다."인데 쉽게 설명하자면 한 직선A가 있고 직선 밖의 한 점B가 있을 때 B점을 지나는 직선 A에 평행한 직선은 하나뿐이다는 평행선 공준이다.

다른 유클리드 공리에 비해 다소 복잡해보이기 때문에 수학자들은 혹시 이 공준이 공리가 아닌 정리(공리로부터 도출된)가 아닌지 의문을 품었다. 하지만 오랜세월을 거쳐 증명불가능함이 입증되었고. 가우스는 신기하게도 이 공리를 부정한 상태에서도 수학적 체계(=공리계)에 큰문제가 없다는 무모순을 발견하게 된다. 그 후 가우스의 제자 리만이 3차원에서의 평행성 공리를 주장하게 된다. 이때까지 유클리드 기하학은 2차원 평면을 전제로한(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당연하게도 그렇게 생각했다) 이야기였다. 종이에 도형을 그렸을 때 그 도형의 성질에 대해만 이야기한 것이다.

그러나 리만은 달랐다. 도형이 아닌 종이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만약 종이가 구부러져 있다면 평행성 공리도 달라지는 것이 아닌가. 둥근 지구를 보면 경도를 나타내는 경선은 모두 평행한다. 하지만 극점에서 모두 만난다. 평행선임에도 불구하고 두 극점에서 서로 만나는 것이다. 유클리드 제5공준이 3차원 곡면에서는 적용되지 않는 것이다. 유클리드 제5공준이 적용되지 않는 기하학 이것이 바로 비유클리드 기하학이다.

여기서 비유클리드 기하학은 두가지로 분화한다. 곡면에도 두가지가 있다. 구와 같이 볼록한 곡면과 말안장과 같이 움푹한 곡면 말이다. 전자에서 삼각형의 내각은 180도가 넘는다. 반대로 후자에선 삼각형의 내각은 180도를 넘지 않는다. 전자가 구면기하학(로바체프스키기하학), 후자가 바로 쌍곡기하학이다.

다시 돌아와서 에셔는 쌍곡기하학을 테셀레이션에 활용하기로 시작했다. 쌍곡공간을 2차원에 투영한 푸앵카레 원반과 마찬가지 방법으로 테셀레이션을 그리기 시작한다. 움푹파인 면에 그린 정육각형은 그 형태가 2차원 유클리드 평면과 다를 수 밖에 없다. 그 비유클리드적 곡면을 유클리드적 평면으로 변환시켜 나타낸 것이다. 무한성을 나타내기 위해서 말이다. <서클 리미트 4 - 천사와 악마, Circle Limit IV-Devils and Angels>(1960)와 푸앵카레 원반을 비교해보면 둘 사이의 연관성을 한 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에셔는 여기에 만족하지 못했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활용하여 무한성을 표현하고자 하였지만 한계에 부딪힌 것이다. 원반의 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를 무한히 연속하려면 무한히 넓은 종이가 필요하지만 우리의 우주는 닫혀있다. 그때 에셔는 다면체를 떠올렸다. 만약 다면체에 테셀레이션을 표현하면 무한히 반복되면서도 그 자체로 닫혀있는 완벽한 무한성을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시작으로 나온 것이 바로 칼레이도치클루스다.

에셔의 두번째 특징은 거울에 비춘 상을 자주 활용했다는 것이다. 그 대표작으로 <유리구슬을 든 손, Hand with Reflecting Sphere>(1935)을 들 수 있다. 작품 속에는 유리구슬을 바라보는 에셔의 모습이 담겨있다. 이 작품은 오로지 회화로만 표현이 가능하다. 사진으로 표현하고자 한다면 필연적으로 카메라가 거울의 상에 등장하거나 시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에셔의 모습과 그 배경은 3차원이다. 하지만 상(한자)이 담긴 곳은 3차원 구의 2차원 평면이다. 하지만 이 3차원 구도 곧 2차원 그림으로 전락한다. 거울을 통해 3차원(에셔의 상) 2차원(3차원 구의 2차원 표면)으로 표현되고 에셔의 그림을 통해 다시 3차원(구)이 2차원 그림(<유리구슬을 든 손>)으로 그려지면서 구와 에셔의 상은 3차원이 아닌 2차원 그림으로 전락하고 만다.

거울은 3차원 상을 2차원 유클리드 평면에 나타낸다. 지극히 회화의 과정과 유사하다. 에셔가 거울에 비춘 상을 주로 활용한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 일 것이다. 거울의 상은 3차원 상을 2차원에 모방한 것이기 때문에 결국은 현실이 아닌 가상이다.
이제 거울 속 상이 현실과 이어지기 시작한다. 중세 이후로 분리된 가상과 현실이 다시 합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도마뱀, Reptiles>(1943)을 보면 테셀레이션 속 도마뱀이 현실로 나와 돌아다니고 다시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

<화랑, Print Gallery>(1956)에서는 관객이 보는 그림이 액자를 벗어나 관객이 있는 장소가 된다. 내가 보고 있는 가상이 곧 현실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엔 함정이 있다. 가상과 현실의 통합 또한 여전히 그림 속이기 대문에 가상 속 가상과 현실의 혼재인 것이다.

<그리는 손, Drawing Hands>(1948)을 보자. 두 손이 가상과 현실을 오가며 서로를 그린다. 하지만 실제로 이 두손을 그리는 것은 두 손 중 어느 한 손도 아닌 에셔의 실제 손이다.

헤겔은 유물론(실재론)과 관념론의 기나긴 싸움 즉, 객관과 주관의 싸움은 이율배반적으로 보이지만 절대정신으로 보면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다. 에셔의 <그리는 손>과 비교해보자면 두 손은 객관과 주관이다. 서로가 서로를 그리는 이율배반적인 상황은 2차원을 벗어나 3차원의 에셔가 두 손을 그리는 실제 손을 본다면 해결된다. 마찬가지로 객관과 주관 보다 고차원적인 절대정신으로 보면 이 이율배반적인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 작품은 2차원이 아닌 3차원 세계에서 바라본다면 단순히 에셔가 그린 그림에 지나지 않듯이 말이다.

같은 작가의 작품 <뫼비우스의 띠 II, Mobius Strip II>(1963)을 보자. 뫼비우스의 띠를 개미가 기어가고 있다. 개미의 입장에서 뫼비우스의 띠는 딜레마이다. 안과 밖이 동일하니 말이다. 하지만 3차원의 우리에게 뫼비우스의 띠는 딜레마가 아니다. 한번 꼬기만 하면 현실에서 충분히 존재할 수 있고 이미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에셔는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한 번 꼬기 시작한다. 바로 현실상 존재 불가능한 형태를 담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다른 시점을 한 공간에 묶어 놓았다. 피카소와 세잔과 같은 아이디어지만 형식은 조금 달랐다. <위와 아래, Up and Down>(1947)에서는 같은 장면을 위와 아래시점으로 본 것을 위 아래 합쳐놓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었다. 여기서 더 들어가 <세개의 세계, Three Worlds>(1955)에서는 수면 위(나무), 수면(나뭇잎), 수면 아래(물고기)로 이루어진 세 가지 시점을 하나의 작품에 동시적으로 녹아냈다.

그리고 에셔는 이제 현실적으로 존재 불가능한 조형구조를 작품에 담아내기 시작했다. <폭포, Waterfall>(1961)와 <상승과 하강, Ascending and Descending>(1960)이다. 영원히 반복되는 폭포와 계단. 테셀레이션에서 지향한 바와 마찬가지의 무한성을 2차원에 투영한 3차원의 세계로 담아낸 것이다.

원근법에 대한 비판적인 접근으로 탄생한 이 그림은 신기하게도 뫼비우스의 띠와 정반대로 오로지 2차원 평면에서만 존재한다. 3차원적으로는 성립 불가능한 딜레마인 것이다. 3차원적으로 보이지만 3차원에선 존재할 수 없고 2차원에서만 존재가능한 것. 여기서 에셔는 2차원에 투영된 3차원은 허구라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3차원의 파괴를 실행한 것이다. 에셔의 <세개의 원구체, Three Spheres I>(1945)을 보면 구로 보이는 그림이 다른 각도에서 작품을 찍은 사진을 보면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특정 시점에서만 3차원으로 느껴지는 단순한 2차원 그림인 것이다. <도리스식 기둥, Doric Columns>(1945)에서 3차원적으로 보이게 만든 격자 배경 속 도리스식 기둥은 뒤틀려져 있다. 마찬가지로 2차원에 투영된 3차원은 허구임을 강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더글리스 호프스태터는 『괴델, 에셔, 바흐』라는 저서를 통해 시대와 직업이 다른 이 세 인물에게서 추론되는 상동성(=유사성)을 이야기한다.
괴델은 불완전성 정리를 통해 정합적이면서 무모순적인 체계의 존재가 불가능함을 입증했다. 체계는 우선 공리로 부터 시작한다. 공리로부터 정리들이 도출되고 정리들은 다시 각자 여러 명제들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괴델은 제1불완전성 정리로 참임에도 불구하고 증명할 수 없는 명제가 존재함을 입증했다. 이어 제2불완전성 정리로 체계(=공리계) 스스로가 자신의 무모순성(모순이 없음)을 입증할 수 없음을 알아냈다. 완전한 줄 알았던 체계가 붕괴한 것이다.

명제 Q는 증명 불가능하다는 명제 Q가 있다 가정할 때(각주1), 명제 Q가 참이면 Q는 증명 불가능하므로 전제(명제 Q가 무모순임을 증명가능하다)와 모순되어 Q는 거짓이 된다. 하지만 Q가 거짓일 경우 Q라는 명제는 증명가능하다. 이때 Q라는 명제는 「Q라는 명제는 증명불가능하다」이므로 서로 모순되어 Q는 참이 된다. Q가 참이면 Q는 거짓이 되고 Q가 거짓이면 다시 Q가 참이 되는 아이러니한 순환의 무한적 반복. 이 순환의 무한적 반복을 호프스태터는 에셔의 <폭포>, <상승과 하강>처럼 무한히 반복되는 폭포물, 계단 그리고 바흐의 <무한히 상승하는 카논, Canon perpetuus super thema regium>에서도 떠올린 것이다.

에셔는 알함브라 궁전을 통해 영감을 받고 기하학과 예술을 접목시켜 더 높은 예술을 가능케 했다.

사진의 발명은 여러 예술가를 위기에 빠뜨렸지만 덕분에 예술은 더 높은 단계로 도약할 수 있었다. 이제 사진과 기술의 발전은 가속하여 컴퓨터그래픽을 통해 현실에 존재 불가능한 것까지 묘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인공지능이 예술의 영역까지 침범하고 있다. 이제 또 어떻게 위기에 몰린 예술의 패러다임을 바꿀 에셔와 같은 화가가 나올지 기대되는 바이다. 그건 어쩌면 당신일지도 모른다.

각주1) 지구가 3차원 구이듯 지구의 표면 지각은 2차원이다. 종이 지도를 보면 2차원평면이지 않은가. 이처럼 구의 표면은 2차원이다
각주2) 메타수학을 수학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괴델은 괴델수를 만들어 메타수학을 수학적 명제로 전환시켰다. 명제를 수리적으로 바꾸어 검증하기 시작한 것이다. [Dem(n,x)와 Sub(n,m,x)]

참고문헌
진중권. “미학오디세이 1-2.” Humanist, 2018.
양순영. “에셔(Morits Collelius Escher)의 판화를 통해서 본 비유클리드 공간.” 강릉대학교 교육대학원, 2006.
정은희. “M.C. 에셔에 있어서 공간의 문제.” 홍익대학교 대학원,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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