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인천 → 중국 베이징 → 러시아 모스크바 →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 에스토니아 탈린 → 핀란드 헬싱키 →스웨덴 스톡홀름 → 노르웨이 오슬로 → 덴마크 코펜하겐 → 덴마크 빌룬드 → 독일 베를린 → 체코 프라하 → 오스트리아 빈 →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 → 헝가리 부다페스트 →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 루마니아 프라호바 → 루마니아 브라쇼브 → 루마니아 이아시 → 이탈리아 로마 → 바티칸 시국 → 포르투갈 리스본 → 영국 런던 → 프랑스 파리 → 스위스 베른 → 리히텐슈타인 파두츠 → 스위스 취리히 → 룩셈부르크 → 벨기에 브뤼셀 →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 스페인 마드리드 → 폴란드 바르샤바 → 한국 인천!
사진 꿀팁을 주자면 이렇게 바닥에 삐뚤빼뚤한 선이 하나 있는데 여기서 찍으면 가운데에 딱 나온다
혹시 나처럼 수평 데칼코마니에 집착하는 사람이 있다면 ㅎㅎㅎㅎ
저멀리 국기가 바람에 나부낀다
최대한 잘 보이게 찍어보려 했는데 어렵당...
자꾸 바람에 날려서...
가까이 본 깃대는 이런 느낌
이렇게 높은데 안 쓰러지는 게 신기하다
밖으로 고고
오늘 날씨가 너무 그렇다 ㅠㅠ
아까 들어온 문
문 근처에서 파룬궁을 하고 계신다
ㅎㅎㅎ 잘 찍은 거 같애 내가 봐도
한 컷 더
맞은편에 있는 건물은 국가도서관이라고 한다
한국으로 치면 국회도서관 아니면 국립중앙도서관?
구구구
열심히 식사하시는 비둘기 선생님
얼얼바(2.28)평화기념공원으로 가는 중
중간에 동상이 이렇게 세워져 있었다
신기하게 생긴 건물이 있다
찾아보니 타이베이 빈관(賓館)으로 국가 귀빈을 접대하는 장소라고 한다
정부 시설 같은 건물도 발견
대만 외교부 건물이라고 한다
기왓집 건물이 도로 사이에 덩그러니 있다
경복궁 동십자각 같은 느낌?
저멀리 타이베이 101 빌딩이 보인당
늘어서 있는 오토바이들
구급차가 지나가는데 한국 차다
가는 길에 보도가 이상해서 살펴보니 이렇게 무언가 적혀 있다
문학의 길이라고 한다
요 근처에 대만 총독부 건물이 있다고 들어서 찾았는데 도무지 안 보인다
찍을 때는 이게 총독부 건물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대만국립대학병원 건물이었다ㅠㅠ
얼얼바평화기념공원 도착!
얼얼바는 숫자 228을 중국어로 읽은 것이다
2.28사건을 추모하는 의미로 세워진 공원이다
기념관이랑 국립대만박물관이 있다
차이잉원 총통
대만 원주민 문제를 다루는 것 같다
남도민족이동과 남도민족분포도
원주민 토지 약탈의 시기적 구분
대만의대병원역 앞에 이렇게 설치되어 있다
이런 설치물이 곳곳에 보인다
기념관에 도착
들어가려는데
앗...
긍일휴업...ㅠㅠ
아쉬운 마음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렇게 큰 책도 놓여 있고
마음을 담은 리본들
희생자 명단인 모양이다
71주년 행사를 준비하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곧 있으면 2월 28일이다
세계 인류가 평화롭길 바라는 메세지를 여러 언어로 적어 놓았다
기념비로 고고
공원은 이런 느낌
기념비에 도착
묵념...
대만도 한국처럼 비슷한 시련을 겪었다
먹을 것을 찾아 땅으로 내려온 다람쥐ㅎㅎㅎ
비둘기들이 별 신경 안 쓰는게 너무 웃겨
나무 생긴 모양이 조금 특이하다
가운데 분수도 있다
다리를 건너서 밖으로
공원 안에 호수가 있다
관광하러 올 때 2.28평화기념에 방점을 두었는데 공원이라는 본연의 기능에도 충실하다
국립대만박물관 도착
뚀륵...
너도 휴관이니
타이베이역 근처여서 타이베이역으로 가기로 했다
문지기처럼 양 옆을 지키는 황소 둘
대만도 간판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예전에 홍콩 여행 같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고궁박물원에 밀려서 눈물 나오는 국립대만박물관 홧팅
저기... 빨간불인데요
배가 고파서 편의점에 들어왔다
책이랑 잡지도 팔고 있다
신문도 판다
대만 신문은 컬러다
사진만 컬러가 아니라 글씨도 원색 컬러에 엄청 화려하다
헉 쪼꼬우유!!
대박대박
ㅎㅎㅎ 유혹을 못 이기고 하나 샀당
대만도 손님 없으면 핸드폰 한당 ㅎㅎㅎ
알바문화는 한국이랑 비슷한듯
대만도 토익 토플학원이 있당
또 발견한 야마다 택배
아까 먹을 게 별로 없어서 다른 편의점에 가기로 했다
여기도 패밀리마트
앗 스키야 발견
이미 먹을 걸 사서 패스 ㅎㅎㅎ
여기도 영어학원이
앗 쥬씨 발견
자주 가는 곳은 아니지만 외국에서 보니까 반갑당
타이베이역에 도착
지하철을 타고 국부기념관에 갈 생각이다
지하철 타러 고고
국부기념관역에 도착
저기 보인당
기와긴 한데 조금 신기한 느낌
옆면
의자에 앉아 계신 쑨원 할아버지
바닥에 이렇게 타일아트가 그려져 있다
타이베이 101 빌딩이 저멀리 보인당
좀 더 가까이
정문에 도착
들어가니 이미 사람들로 왁자지껄
교대식을 하고 있었다
아슬아슬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ㅠㅠ
동상 앞에서
교대 인원이 양 옆에 올라가면 나머지는 다시 돌아온다
가만히 있어야 되기 때문에 복장을 정리해주는 사람이 따로 있다
교대식 끝
천장은 이렇게 생겼다
정면에서 한 컷
옆에 전시관이 있다
국민정부건국대강이라 적혀 있다
큼지막하게 벽에 또 적혀 있다
전시관 내부
사각사각하면 지루하기 쉬울 공간을 입체적으로 잘 꾸몄다
쑨원 초상화
돈에도 계신다
다시 중앙으로 나왔다
옆에서 본 동상
어떻게 저렇게 가만히 계속 있을 수 있지
볼 때마다 신기하다
밖으로 나왔다
허겁지겁 들어오느라 못 둘러본 건물
참 특이하게 생겼다
휘날리는 깃발
건물이 조금 낡아 보인다
세월의 흔적일까
옆에 호수도 있었다
기념관 앞 콘크리트 광장
타이베이 101도 함께
관광은 이걸로 끝
다시 지하철을 타고 타이베이역으로
귀국이 다가오니 이런 것두 한 번 찍어보고
지하철을 지나가는 경찰 아찌
자하철이 들어오면 이게 반짝하고 빛난다
반짝!
불을 멸한다 해서 멸화기 ㅋㅋㅋㅋ
이런 사소한 다른 점 찾기가 이번 여행의 또 다른 재미였다
다시 만나려면 아직 시간이 걸려서 바로 서점으로 직행
ㅎㅎㅎㅎ 이 분위기 너무 좋아
"편의점 인간"이랑 "야행"
이번 여행의 원수 간장 계란이랑도 작별인사
우리 함께 해서 더러웠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
저번에도 본 마늘 집!
옆에 배 집이랑 딸기 집도 있다
광고에 적혀진 일본어
중국어도 같이 적혀있으면 모르겠는데 일본어만 적혀있는 건 뭔가 이상하다
막상 일본어는 잘 안 통한다...
타이베이역 빠이빠이
가족이랑 만나서 공항 갈 버스를 찾는 중
군대 광고
공항가는 1819번 정류장
항공사마다 탑승하는 터미널이 다르다
해외여행이 처음이라면 실수하기 쉬우니 조심
마지막으로 보는 타이베이 시내
잘있어 ㅠㅠ
버스에 탑승
흡연구역
독일을 덕국이라 적고 있다 ㅎㅎ
공항에 도착
저멀리 보이는 공항 경찰차
공항에 들어왔다
로비에 도착
너무 늦게 본 WELCOME
출발지는 한중일이 대부분이당
아시아나 항공을 한아항공이라 부르고 있다
출국 구역으로
면세(免稅)를 퇴세(退稅)라 적고 있다
중국어 배우려면 힘들겠당
출국 구역은 사람들로 가득
체크인카운터에 이렇게 등불이 대롱대롱 달려 있다
아시아나 카운터에 도착
20분 지연이다
비지니스는 상무
이코노미는 경제 ㅎㅎㅎ
경제가 아니라 다른 말을 쓸 줄 알았는데
출국심사를 받고 면세점 구역에 왔다
쇼핑이닷 쇼핑
강아지? 아마도...
지연...
버거킹! 한보왕이라 적혀 있다
대만공항에 있는 일본 기념품
가면 갈수록 모르겠다
대만 고디바
펑리수!
먹어봤는데 너무 맛있다
그래서 왕창 샀다 히히
위에는 돈? 같은 게 대롱대롱 달려 있다
으 복잡한 한자...
취옥백채 도자기
딱 봐도 비싸 보인다
사고전서 에코백 ㅋㅋㅋ
아이디어는 좋은데 들고 다니기 쫌 그래...
평면 착시 가방!
하나 사고 싶었는데 조금 비싸서 못 샀당
그래도 살걸...
공항에도 서점이 있다
공항에 서점이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 시간 때우기 딱 좋아서 ㅎㅎ
영화관까지 있었다
솔직히 영화관은 있을 줄 몰랐다...
일본 이치란 라멘...
아니 왜 여기있어요?
삶은 달걀 의자 ㅋㅋㅋ
귀여워
이제 비행기 타러 고고
우리가 탈 비행기
기내식이 나왔다
무난무난쓰
다왔당
인천국제공항 도착
평창의 열기가 아직 남아있다
스케이트 선수를 쫓아가는 북극곰
ㅋㅋㅋ 아이디어 봐
잘 만들었다
- 끝 -
여행후기
오랜만에 말 안 통하는 외국에 와서 이국적인 느낌이 확 와닿았다 다만 위생이나 음식이 나랑 잘 안 맞아서 힘들었다 ㅠㅠ 날씨도 내리 비가 와서 다 젖느라 관광을 하는둥 마는둥 제대로 맛집 찾아서 계획에 맞게 방문하면 좋을 것 같다 무계획으로 오면 조금 힘들다 특히 식사는 못 가보고 못 먹어본 곳이 많아서 한 번쯤은 더 올 거 같은데 그 후의 재방문은 그 때에 결정될 것 같다
장점: 가깝다, 음식이 싸다, 일본과 중국을 섞어놓은 느낌 단점: 위생, 음식의 향신료나 냄새, 비가 자주 오는 날씨, 독자적인 분위기나 특색이 없음
대만 노래 "당신이 빨리 돌아오길 바랍니다(望你早帰)"는 대만 부녀자들이 남양 제도 전장에 자리잡고 남편이 하루라도 빨리 살아 돌아오길 기원하며 부른 노래다. 전쟁 후반, 병력 보충에 어려움을 겪은 일본은 보다 많은 병력을 투입하기 위해 대만 청년을 징병하여 일본군에 참전시켰다. 일본 관방(? 보통 관방은 官房인데) 자료에 따르면 태평양전쟁 당시 2만 7,138 명의 대만 청년이 일본군이 되었으며 그 중 8만 명은 전쟁 후반에 징병되어 정규군에 편성되었다. 그 밖의 12만 명은 군대 잡역 및 보충역으로 복무하였다.
원문은 한문장... 말이 되나
표현이 조금 이상하다 人이 아니라 名를 사용하거나 官方같은 일본어에 없는 단어를 사용하는 둥
다카사고 의용대(*대만 원주민으로 구성된 일본군 부대)는 일본군에서 유일하게 개인무기를 휴대할 수 있었는데, 그건 반도(蕃刀)라고 불리는 무기였다. 그 이유는 그들이 산림 생활에 익숙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걸 영예로 여겼다. 태평양전쟁 중 미군이 "섬 건너뛰기(island-hopping)" 작전을 펼쳐 일본군은 물자의 이동이 봉쇄되었다. 그로 인해 남양 제도 산림 속에 있던 일본군은 물자 부족으로 탄약과 식량 모두 부족한 상황에 처했다. 이 상황에 산림생활에 익숙한 다카사고 의용대가 반도를 들고 숲 속을 헤치고 일본군을 구출했다. 이 일로 많은 일본인이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원주민에게 감사를 표했다.
1942년 일본정부가 대만에 지원병 제도를 실시하여, 많은 대만 청년이 대동아전쟁에 투입되었다. 하지만 전후 일본은 국적변경을 이유로 적절한 보상 및 채무의 반환 책임을 회피하였다. 1945년 국민당 정부도 많은 대만 청년을 국공내전에 투입하여 많은 수가 중국 대륙에서 사망하였다. 또한 일부는 포로가 되어 중국 공산군에 편입되었다. 그 중 몇몇은 한국전쟁에 참전하였다. 다른 대만 국적 중공군은 오랜 세월 중국 대륙에 지내다 1989년이 되어서야 대만에 돌아왔다. "가오슝시 전쟁평화기념공원 주제관"이 세워진 이래 많은 사람들이 대만이 전쟁에 휘말린 역사를 알아갔으며 이러한 역사적 비극을 다시는 되풀이해선 아니 된다고 경종을 울렸다. 또한 이 상설전시로 사람들은 혼동의 시기에 있었던 많은 일을 체감했고 덕분에 타국에서 희생된 영령들을 위로하고 평화의 근본을 알 수 있었다.
전쟁에 휘말린 대만의 슬픈 역사 ㅠㅠ
참 남일 같지만 않다
기념관을 나와 포대로 향하는 중
전방 도로가 협소하니 차량은 들어올 수 없다 뭐 이런 뜻인 거 같다
올라가는 길에 본 표지판
옆에서 낙석이 떨어질 수 있으니 조심해서 옆에 오래 있지 말고 자기 안전을 지켜라 이런 의미인 거 같다
1879년 준공한 가오슝시 지정사적 다거우 영국영사관 관저는 당시 영국 육군의 왕립 공병(Royal engineer)이 설계, 건축을 도맡아 독립된 빨간 벽돌 구조 건물로 완성되었으며, 이후 영사관으로 사용되었다. 다거우 영국영사관 사무실(경찰서와 감옥을 포함)은 사오촨터우(哨船頭) 바닷가에 자리잡았고 두 건물은 오래된 등산로로 연결되었다. 1858년 텐진조약 및 1860년 베이징조약이 체결되자, 대만은 점차 무역항 개항 압박을 받았다. 다거우(당시 가오슝)는 그 중 한 곳으로 영국 측은 대만과의 무역에서 경제적인 이익을 더욱 확보하기 위해 영사관을 설치하였다. 그리고 영사관을 통해 이민에 대한 수속, 상업 관리, 영사재판권 및 지방과의 협상 등의 업무를 수행하였다. 그리고 본 건물 다거우 영사관 관저는 영사가 거주하며 사절과 빈객을 접대하는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1895년 일본에 의한 대만통치가 시작되면서 영사관 관저는 가오슝 해양관측소로 용도가 바뀌었다. 또한 1945년 대만이 국민정부의 유지를 잇게 되면서 기상국 관측소로 사용된 적도 있다. 이후 1977년 태풍 셀마(1977년 04호)에 의해 건물에 피해를 입었지만, 해당 건물이 다거우항 개항 이후 무역 경제 및 역사가 발전하는 동안 자리를 지켜온 대단한 문화적 의의를 가진다고 판단하여, 보수를 거친 후 1987년 정식으로 고적에 지정되었다. 다거우 영국영사관 관저는 역사적 자료가 충분치 않아서 긴 세월 동안 영국영사관으로 여겨졌지만, 학계에서 영국 국립공문서관 사료를 면밀히 연구한 결과 영사관 사무실은 사오촨터우 바닷가에 지어졌으며 본 건물은 영사관이 아닌 영사관 관저임이 밝혀졌다. 가오슝시정부문화국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입각하여 2009년 본 건물의 정식 명칭을 "다거우 영국영사관 관저"로 변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