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어린시절에는 하루 빨리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누구는 빨리 술 담배를 하고 싶었을지도, 누구는 지긋지긋한 공부에서 해방될 수 있어서였을지도, 누구는 멋진 애인을 사귀고 원하는 곳에 마음껏 놀러 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어른이 되고 싶었던 이유는 무관심이었다.
아이들의 세계는 동물의 세계이다. 약육강식이 난무하는 정글 말이다.
약한 아이는 철저히 배제되고, 강한 아이는 모든 것을 가진다.
아쉽지만 나는 약한 아이였다.
괴롭힘 당하기 쉬웠고, 밟아도 상관없는 그런 아이였다.
아이팟 터치 비밀번호를 마음대로 바꾸기도 했고, (그래서 그날 이후로 내 핸드폰 비밀번호는 러시아어로 되어 있다)
놀이터에서 술래가 되었을 때, 실눈을 뜨면 모두가 반칙을 하고 있었다.
물건을 빌려주어도 돌려받지 못하기도 했다.
비비탄 총에 맞기도 했고,
안경에 자물쇠를 걸려보기도,
축구 할 때는 서로 상대 팀에 데려가라며 혼자 남은 적도 있었다.
물론 좋은 기억도 있었겠지만, 다들 알지 않는가.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이 있으면, 나쁜 기억이 항상 이긴다.
차츰 학업이 중요해지면서, 약육강식의 요소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단순히 힘의 논리에서 벗어나 더 공부를 잘하는 녀석이 무시 받지 않게 된 것이다.
다행히 나는 공부를 아주 못하지도 잘하지도 않는 상태였다.
남들에게 수험은 지옥의 시간이었을지 모르지만, 나에게 수험은 해방의 시간이었다.
다들 학업에 열중해서 괴롭힐 시간조차 없으니까.
“얘가 나중에 성공해서 잘나가면 졸라 재밌겠다.”
중학교 때 들은 말이다.
아직도 그 말을 한 녀석을 잊을 수 없다. 그 녀석은 기억하지 않겠지만.
학창 시절 내가 잃어버린 것은 자기애였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그걸 다시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자존심이라는 말이 싫다.
그때 나를 괴롭게 했던 아이들은 전부 자존심이 강했거든.
'끄적끄적 > 내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셔의 예술세계 (0) | 2023.11.01 |
---|---|
살기 힘든 한국을 만드는 것은 우리다 (0) | 2023.08.10 |
생일에 대해서 (0) | 2023.05.06 |
인스타그램 시대의 인간관계 (0) | 2023.04.18 |
나르시스트와 자기객관화 (0) | 2023.04.11 |
동아리 마케팅 (0) | 2023.04.11 |
냄새와 향기의 차이 (0) | 2023.04.06 |
분업의 위대함 (0) | 2023.04.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