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오기 전에 결심한 것이 하나 있다. 바로 편지 쓰기!
친구들에게 주소를 물어봐서 대답해준 친구들에게, 시간이 날 때마다 편지를 썼다.
그 과정에서 느낀 점을 몇 가지 적어보려고 한다.
사람들은 우편함을 확인하지 않는다
조금 놀랐던 부분이다. 나는 한국에 살았을 때, 문화재 잡지나 신문을 구독했었고, 확인해야할 공과금 납부고지서가 있었기 때문에, 밖을 나갈 때나 집으로 돌아올 때 매번 확인했었다. 그리고 일본에 있는 지금도 중요한 서류들이 전부 우편으로 오기 때문에 한국에 있을 때보다 더 자주 확인을 한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우편을 잘 확인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러고보니 요즘 공과금은 전부 모바일로 오고, 잡지나 신문을 구독하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인지 편지를 보내어도 한달 두달 심지어 여섯달 지나서야 확인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우편이 점점 사람들의 생활에서 멀어지는 것 같아 조금 아쉬웠다.
그래도 편지를 보냈다고 카톡으로 연락을 따로 넣지는 않았다. 우편함을 확인했을 때 편지가 들어있을 그 예상치못한 즐거움을 빼앗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편지나 연하장은 누락이 자주 발생한다
나는 편지를 쓰면 그것이 그대로 전달될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10통 보내면 한두통 정도는 누락되었던 것 같다. 간혹 주소가 잘못되어 반송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이 그냥 누락되었다. 누군가가 가져갔을지도 모르고, 배송 과정에서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등기가 아니니까 그 이유도 알 길이 없다.
편지는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한국과 일본은 가까운데도 기본적으로 1주에서 2주 정도는 걸린다. 선편이 아니라 항공우편인데도 그렇다. 답장을 쓰는 친구들도 이건 예상치 못했는지, 하루 이틀 지나고 나서 편지가 도착했는지 물어오는 경우가 많았다.
빠른 세상 속에서 천천히 보내는 또다른 재미가 있다고 위안삼아 생각한다. 반대로 같은 나라로 보내는 편지는 대체로 하루 이틀이면 도착한다.
이사를 가면 보낼 수가 없다
이메일과 다르게, 집 주소가 바뀌면 보낼 수가 없다. 물론 우체국에 신청하면 이전 서비스를 받을 수 있지만, 생각보다 신청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실제로 이사를 가서 편지가 전달이 안된 경우가 몇몇 있었다. 게다가 주소는 개인정보이다보니 묻기 힘든데다, 이사를 갔다고 해서 그 사실을 알려주거나 바뀐 주소를 알려주는 친구는 거의 없다. 이전 주소로 보내서 편지를 받지 못한 친구도 몇 명 있었다.
해외에 살다보면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도 점점 멀어질텐데,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 둘 씩 이사를 가기 시작하면 결국 편지를 쓰는 사람이 몇 명 안 남을 것 같아서 슬프다.
편지에 답장을 쓰는 친구는 소수다
엽서에 답장을 쓰는 친구는 정말 적었다. 10통 보내도 한통도 오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답장을 받고 싶으면 엽서가 아니라 편지지로 보내는 것이 좋다. 이유를 생각해보자면, 엽서는 아무래도 적을 수 있는 여백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편지지에 비해 성의가 덜 담길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편지를 쓰지 않고 받았다고 연락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도 답장을 써주는 친구에게는 정말 고마운 마음이 든다. 평소에 친했는지 아닌지를 떠나서 그런 친구들은 다시 보게 되는 것 같다.
오글거리는 말도 편지여서 가능하다
편지를 적다보면 갈수록 인생 이야기를 자주 하게 된다. 평소라면 술 몇잔해야 나올 거 같은 이야기도 편지로는 얼마든지 쓸 수 있다. 내가 한 말의 반응이 실시간으로 돌아오지 않는 것이 때로는 장점을 발휘하는 것 같다.
편지에 대한 답장이 메신저로 오면 어색하다
위 내용에 이어지는 부분인데, 다소 상대방 반응을 신경쓰지 않고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이 실시간 메신저로 오면 답장을 하기 곤란해진다. 편지를 잘 받았다고 말해주는 것은 고맙지만, 그에 대한 내용을 메신저로 언급할 때가 있다. 그러면 그 내용에 대한 창피함과 함께 나도 모르게 차갑게 답장을 보내고 만다. 감정과 매체의 불일치라고 할까.
편지에 대한 답은 편지로 보내는게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신 확인이 없으니 답답하다
엽서는 누락되는 경우가 있어서, 상대에게 제대로 전달이 되었는지 보낸 사람은 궁금할 수밖에 없다. 근데 생각보다 편지를 받아도 받았다고 알려주는 친구들이 많지 않았다. 나중에 만났을 때에서야, 그러고보니 편지 잘받았다고 말해주는 경우가 많았다. 악의는 없겠지만 다소 서운했다.
나도 편지를 받게 된다면 꼭 받았다는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반대로 수신확인이 없어서 답답했는데, 답장이 편지로 온 적이 있었다. 서프라이즈 느낌으로 감정이 확 바뀌었다.
요즘과 같은 디지털 시대에 굳이 편지를 쓴다는 건, 새로우면서도 즐거운 경험이었다. 메시지로 하지 못한 이야기도 많이 할 수 있었고, 상대방의 반응을 그때그때 확인할 수 없기에 더욱 조심하기도 하고, 손으로 적으면서 최대한 정성을 담으려고 노력하기도 하였다.
살면서 때때로 편지도 도착하는 즐거움은 예상치 못한 깜짝선물을 받는 것과 같다. 그런 즐거움을 알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끄적끄적 > 내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금전적 성취의 아이러니함 (0) | 2025.08.23 |
---|---|
왜 사람은 안 찍으시나요? (0) | 2025.08.22 |
어설픈 인문학 신봉을 경계하며 (0) | 2025.08.21 |
고립이 고립을 부른다 (0) | 2025.08.21 |
젠더갈등이 파괴한 사회 (0) | 2025.08.21 |
인스타그램을 그만두며 (0) | 2025.01.01 |
인스타그램을 통한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감 (0) | 2025.01.01 |
일본에서 지진을 준비하는 법 (0) | 2024.12.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