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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03 - 서울 : 청계천박물관, 한양도성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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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에서 내려서 청량리수산시장을 지나간다

복작복작한 수산시장

 

청계천박물관에 도착했지만 그 앞에 무슨 전시를 하고 있어서 잠깐 구경했다

 

꽃을 표현한 작품

 

음... 은색 사람을 뭉친 작품?

 

여러 현대작품들이 조그맣게 전시되어 있었다

 

그럼 본격적으로 박물관으로 들어가보자

 

특이하게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에서 입장하는 구조다

 

점점 확장된 서울

예전에는 청계천이 서울의 중앙이었다

 

전시관은 이런 식으로 아래로 내려가는 구조로 되어있다

 

조선시대 서울의 물줄기

 

청계천에 대한 역사 연표

예전부터 취수는 중요했기 때문에 여러모로 정비가 이루어졌다

 

청계천을 따라 지어진 다리들

 

경복궁과 창덕궁

예전에는 종묘와 창덕궁이 연결되어 있었다

 

바닥은 조선시대 서울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광통교에는 정릉의 돌들을 사용했다

 

청계천에 놓인 다리 모형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가운데에 위치한 곳이 중촌이고 이를 기준으로 남북과 상하 마을이 나뉜다

그리고 각종 물건을 파는 가게들이 있었다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였다 흩어진다는 뜻에서 이름지어진 운종가

 

옛날 중국어 교과서

 

일제강점기의 청계천

 

일본인이 많이 살던 동네는 마치가 되고 일본인이 적은 동네는 동이었다고 한다

 

경성부명세신지도

경복궁에서 용산까지를 그렸다

 

경복궁과 창덕궁 종묘

그 아래로 청계천이 흐른다

 

일본이 발행한 경성 엽서

 

혼마치가 된 명동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일본인이 훨씬 많이 살았던 남산 주변

 

1930년대는 여러 문물이 들어오면서 생활의 모습도 달라지기 시작한다

그 당시를 다룬 소설가 구보씨

구보는 호고 본명은 박태원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일본이 발행한 경성 관광지도

 

서울역에서 시작해서 한바퀴를 빙글 도는 유람버스

 

그당시 승차권

청량리부터 왕십리까지

 

광고지 중에는 한글이 적힌 것도 있다

현금으로 사시면 ?? 할인하여들입니다

 

잡지 신여성

 

일본어가 적힌 담배갑

 

화신백화점 상표

한자로 화신이라 적혀있다

 

미나카이 오복점

오복점은 일본어로 고후쿠텐으로 기모노를 파는 곳인 모양이다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서양식 건물들

 

청계천을 덮는 계획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시작되었다

 

지금은 육지가 되었지만 그당시 잠실은 섬이었다

 

황국신민예법독본과 전시채권

 

청계천 개수 계획

 

광복 후 실시한 제1회 총인구조사

 

광복 이후 해외에 살던 동포들이 귀국을 하기 시작했다

 

컴퓨터가 없으니 손으로 직접 적은 안내도

 

지금은 행정안전부가 된 내무부

 

625 유가족 증명서

연도가 단기로 되어있다

 

옛날 운전면허증

그리고 서울특별시민증이라는게 따로 있었던 모양이다

 

예전에는 일본인들이 살던 주거지역을 북한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다

 

버스를 타는 줄이 참 길다

 

청계천 주변에서 집이 없던 사람들이 판자로 집을 짓기 시작했다

 

청계천에 지어진 판자촌을 재현한 모형

 

사다리를 통해 집에서 청계천으로 내려간다

 

빨래를 하는 모습 등 다양한 생활상을 모형을 통해 볼 수 있다

 

허가 없이 급하게 지어진 만큼 불편한 점도 많았던 판자촌

 

사람들이 몰리는 곳에 시장이 형성되었다

 

그 시절 사진을 찍은 사람들

일본인 사진작가도 있었다

 

정부는 판자촌을 철거했는데 그로 인해 서울 곳곳에 달동네가 생겨났다고 한다

 

광주대단지 계획이 얼핏 보인다

 

말죽거리로 불렸던 역삼동 주변

 

청계천은 덮어지고

광주대단지사건이 터졌다

철거민을 내보내기만 급급해서 터진 문제들

 

판자촌이 사라지는 모습

 

청계천을 덮은 위에는 도로가 생겼다

 

그리고 고가도로가 생기면서 청계천은 잊혀지는 듯 했다

 

재개발 문제로 일어서는 철거민들

 

당시에 고가도로는 흔치 않은 거였겠지

 

동대문 근처는 의류로 유명했다

 

전태일 열사가 일했던 평화시장

 

그밖에도 헌책방과 전자제품을 파는 세운상가가 있었다

 

한때 세운상가는 잠수함도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가 돌 정도였다

 

지금은 낡은 건물이지만 이 당시에는 지어지지 얼마 안된 신축 주상복합아파트였을 것이다

 

당시 동대문을 모형으로 재현했다

 

열심히 옷감으로 옷을 만드는 모습이 보인다

 

잠시 쉬어가는 공간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청계천을 복원하자는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서울시청 근처부터 동대문디자인플라자까지

 

청계천을 복원한 이명박 전시장

대통령이 되기에 큰 공헌을 한 사업이다

 

홍보하는 자료

 

그리고 반대했던 주변 상가들

 

만화로도 홍보자료를 만들었다

 

2003년 벌써 20년이 훌쩍 지났다

 

고가도로를 철거하고 도로도 철거한다

 

그렇게 복원되는 여러 하천들

 

그 과정에서 광통교처럼 유물이 발견되기도 한다

 

여전히 서울 곳곳에는 고가도로가 남아있다

 

한때 고가도로가 있었음을 알리기 위해 세 기둥을 남겨두었다고 한다

이따가 자전거를 타고 찾아볼 생각이다

 

이제는 시민들이 산책하는 공간이 된 청계천

관광객들도 찾아오는 공간이다

 

고해상도 위성사진을 바닥에 설치했다

 

경복궁과 고려대

아쉽게도 우리집 근처는 짤렸다

 

스크린으로 예전 청계천 사진들을 틀어주었다

 

복원된지 얼마 안된 만큼 최근에 생긴 박물관

깔끔하게 잘 전시되어 있었다

 

예전의 기획전 포스터

 

이번 기획전은 성북천에 대한 내용이었다

 

기획전 입구에 위치한 작품

 

예전에는 도성에 비해 도성밖 성저십리는 사람이 잘 살지않는 곳이었다고 한다

 

결국은 이어져있는 청계천과 성북천 그리고 정릉천

 

혜화문의 원래 이름은 홍화문이었는데

창경궁 정문이 홍화문이 되면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다들 동쪽에 있는 작은 문이라는 동소문으로 불렀다고

 

문루는 사라지고 문만 남은 혜화문

 

한양도성 안을 나타낸 지도

왼쪽에 경복궁과 사직이 오른쪽에 창덕궁과 종묘가 보인다

 

그러고보니 종묘와 사직단을 제외하고 선잠단이나 선농단은 도성 밖에 있었다

 

조선에는 조상과 신을 모시는 제례 공간이 많았는데

선잠단은 그 중에서 잠이라는 이름답게 누에치기를 가르친 서릉 씨를 모시는 곳이다

 

조선시대 잠업 모습을 담은 사진

 

고려대 근처에 위치한 선농단

설렁탕이 선농단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옛날 성북동에는 군인들이 농사를 짓는 둔전이 위치해있었다고 한다

 

성북동을 만든 김한구와 홍봉한

김한구의 딸이 영조와 결혼하면서 정순왕후가 되고

홍봉한의 딸은 사도세자와 결혼하여 혜경궁 홍씨가 된다

 

조선후기 삼군영은 훈련도감 금위영 어영청을 말하는데

어영청은 동쪽 지역을 관할했다

 

성북둔은 성북천 상류에 위치해있었다

 

 

성북둔을 만든 홍봉한 초상

 

김한구의 딸 정순왕후가 오라버니에게 보낸 한글 편지

 

갑자기 빈 땅에 농사를 짓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영조는 마을 사람들에게 빨래나 메주를 만드는 일을 주었다

 

영조가 내린 일거리에 대한 지침을 적은 내용

 

랜턴 슬라이드

 

유리건판과 뭐가 다른거지 싶었는데

유리건판은 색이 반전되어 흑색은 백색으로 백색은 흑색으로 유리 위에 찍히는데 이를 네거티브라 한다

반대로 랜턴 슬라이스는 유리에 오리가 보는 색 그대로를 씌우고 옛날 영화처럼 빛을 비추어 감상하는 식이다

색이 그대로여서 포지티브라고 한다

 

여기에다 빛을 비추어 그 그림을 감상하는 거다

 

메주를 만드는 방법

 

조선사람의 서명인 수결이 보인다

 

농사일을 대신해서 복숭아 나무를 심었는데 그래서 복사꽃이 유명했다고 한다

 

언젠가 우리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게시글도 박물관에 실려 생활상으로 소개될 날이 찾아올까

 

바위에 앉아 시모임을 가지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림으로 나타나있다

 

옛날 시를 감각적인 엽서로 만들었다

 

마침표를 붉은색으로 적었다

복사꽃이 예쁘게 핀 모습

창피하지만 복사꽃이 복숭아나무 꽃인지 처음 알았다

 

현대어로 번역한 시조

 

깔끔해서 둘러보는데 편했던 이번 기획전

 

채제공은 성북동을 여행하면서 기행문을 적었다

 

개발이 시작된 성북천 지역

 

일제시대 때 지도

혜화문이 동소문이라 적혀있다

현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이 있는 곳에 제국대학 앞 의학부와 대학병원이라 적혀있다

 

개발이 시작되면서 청계천처럼 성북천도 복개가 이루어졌다

 

복개 후 생겨난 아파트들

 

그당시 사진들

 

구보 박태원 작가가 살던 곳이 성북천 지역이었다고 한다

 

복숭아가 그려진 결혼식 방명록

아마 성북천의 복숭아나무를 떠올려서 그린거려나

 

빛바랜 사진을 보면 나도 덩달아 추억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다

살아본 적도 없어면서...

 

박물관 구경을 다 하고 밖으로 나왔다

 

박물관 앞은 판자촌을 재현했다

 

신기하게 생긴 빌딩

 

청계천 교각을 남겨두었다

 

총 세개의 교각이 보존되어 있다

 

동대문으로 건너왔다

 

왼쪽과 오른쪽의 돌의 크기가 미묘하게 다르다

 

원래는 도성으로 이어져있지만 지금은 도로 때문에 섬처럼 고립되어 있다

 

이렇게 이산가족처럼 떨어져있다

 

한양도성을 따라 올라가면

 

한양도성박물관이 있다

오늘은 그동안 못가본 박물관을 둘러보는 날이다

 

특이하게 철조 구조물이 건물을 둘러싸고 있다

 

한자로 흥인지문이라 적혀있다

동대문의 또다른 이름이다

도성 대문에는 인의예지가 한글자씩 숨어있다

 

한양을 그린 수선전도

 

조선이 건국되면서 한양도성의 역사도 시작되었다

태조실록에 나온 성곽에 대한 언급

 

한양도성의 역사를 적은 연표

 

서울 모형으로 도성의 크기를 나타내고 있었다

 

도성에 자리하는 여러 문들

컬러가 아닌건 현재 소실된 문이다

 

크게 여러 지역으로 나뉜다

 

시대에 따라 짓는 방식도 달라진다

 

여섯 구간으로 나눈 한양도성 순성길

 

성돌에는 글자가 새겨진 것이 있는데 이를 각자상석이라 부른다

 

도성을 쌓는 과정을 다룬 기획전

 

삼군영인 훈련도감과 어영청 그리고 금위영이 한양도성의 관리를 담당했다

이번 전시는 훈국 즉 훈련도감을 다룬다

 

도감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원래는 임시관청이었지만 조선시대 흔히 그렇든 상설화된다

비변사가 대표적인 케이스

 

수능 때 달달 외운 속대전

경국대전은 세조부터 성종 속대전은 영조 대전통편은 정조 대전회통이 고종

 

규모가 커지면서 돈이 필요하게 되었는데

그렇다보니 부업으로 인쇄와 출판활동에도 손을 뻣었다고 한다

 

병부주머니

군사를 동원해야할 때 나무판을 쪼개서 한쪽은 왕이 가지고

나머지 한쪽을 담당자가 가져서 진짜로 왕이 군사를 움직인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런게 없으면 군대를 속여서 역모를 일으킬 수 있다

 

훈련도감과 어영청 금위영이 서로 한양도성을 나누어 수비했다

훈련도감은 담당 관할을 또 전후중좌우로 나누어 수비했다고 한다

 

 

도성은 수비도 있지만 무너진 부분을 수리하거나 개축하는 일도 생긴다

 

무너질 것 같으면 보고를 하고 수리공사를 한다

 

도성을 짓는데 사용하는 도구

먹을 이용해 선을 그었다

 

공사구간이 짧으면 구간 단가를 높이고 구간이 길면 단가를 낮추는 식으로 급료를 지급했다고 한다

 

동대문 근처에는 동대문운동장기념관과 동대문역사관도 있다

 

태조 어진

 

원래 어진은 궁궐의 선원전에 모셔두는 것인데

한국전쟁 때 부산으로 어진들이 피신을 갔다가 화재가 나서 대부분이 소실되고 만다

그래서 태조어진은 사진을 참고로 복원한 어진이다

 

서울을 그린 지도

경복궁 앞에 육조가 있고 양옆에 종묘와 사직이 자리하고 있다

임금이 바라보는 방향에서 왼쪽이 종묘 오른쪽이 사직이라 해서 이를 좌묘우사라고 부른다

 

조선이 개창하면서 수도천도와 함께 도성 건설도 시작되었다

 

이외에도 여러 천도 후보지가 있었지만 결국은 서울로 결정되었다

중간에 계룡으로 결정나서 궁궐 공사까지 갔지만 우여곡절 끝에 서울이 되었다

 

한양도 그림

사대문과 사소문이 전부 그려져있다

숙정문만 이름이 없고 문루도 없다

 

청계천은 그냥 개천이라 적혀있고 광통교가 그려져있다

 

서울에는 한양도성 말고도 두개의 성이 있다. 북한산성은 유명하지만 상대적으로 탕춘대성은 알려져있지 않다

 

도성을 쌓을 때는 지방할당제를 도입했다

 

전국에서 사람들을 모아 도성을 지었다

제주도는 배타고 오는 것도 고역이니 빠졌다

 

도성을 지을 때 여러 문제가 발생할텐데 각 상황에 따른 처벌 규정도 있었다

 

농경사회다보니 농사를 쉬는 때 공사를 진행한다

 

도성 근처 채석이 금지되면서 멀리에 있는 곳에서 돌을 가져오게 되었다

그러다가 사상자가 많이 나면서 결국 도성 근처도 허용했다고 한다

 

집을 지을 때 땅을 다지는 작업이 꼭 필요한데 도성도 마찬가지다

 

도성을 짓는 과정

 

이렇게 기초를 만들고 돌로 땅을 다진다

 

문루를 포함해 성문을 쌓는 방법을 동영상으로 자세히 설명해준다

고건축 참고자료로 써도 될듯

 

도성은 짓고 끝나는게 아니라 사용해야 한다

성벽 안과 밖으로 순찰을 돌고 이상여부가 있으면 보고하게 되어있었다

 

이제는 사라진 돈의문

그 자리에는 돈의문박물관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도성 안을 한성부라 부른다

그리고 도성밖 십리를 성저십리라 부른다

 

도성수비 지침이라 할 수 있는 어제수성윤음

어제는 임금이 지었다는 말이고

수성은 말그대로 성을 수비하는 것

윤음은 임금이 백성에게 전하는 말이다

대충 얘들아 성은 이렇게 지켜야돼 하는 내용

 

지금보다 훨씬 적은 인구수로 이렇게 긴 성벽을 쌓았다

 

오늘날 서울역까지 이어진 긴 길은 사실 조선시대에는 육조거리까지만 있었고

나머지는 대한제국시기에 형성되었다

 

이 부분은 아까 훈국 전시 내용이랑 비슷하다

 

옛날 경찰봉이라 할 수 있는 육모방망이

암행어사 출두요 할 때 부하들이 드는 방망이가 이거다

모서리가 여섯개라 육모방망이라는 참 직관적인 이름

 

성문은 밤이 되면 닫히고 아침에 열린다

 

병부처럼 쪼개져있는 부험

성문 출입증같은 건데 반은 성문에 보관하고 반은 궁궐에서 가지고 있다가

비상시에 궁궐에서 반쪽을 성문에 보내면 문이 열린다

 

목적에 따라 임금이 지나가는 문도 달랐다

 

도성 안을 도는 순성놀이

나들이라 하기에는 너무 빡센거 아닌가요...

 

청계천은 홍수를 막기 위해 때때로 준천 사업이 이루어지는데 그걸 기념한 그림

 

상여에 다는 장식들

옛날에는 도성 안에 무덤을 만들 수 없어서 도성에서 사람이 죽으면 상여를 지고 도성 밖으로 나가야했다

 

무섭게 생겼다...

 

기우제를 지낼 때는 평소와 반대로 숙정문을 열고 숭례문을 닫았다고 한다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한양도성은 수난을 겪었다

특히 남산 쪽은 신사를 세우면서 훼손이 많이 이루어졌다

 

정동에 위치했던 프랑스 공사관

 

한국경성이라 적힌 일제시대 지도

부록으로 부산일본거류지와 대구시가전도가 있다고 적혀있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을 적은 아놀드 헨리 새비지 랜도어

꼬마의 도움을 받아 성벽을 넘은 일화가 적혀있다

 

전차선로를 공사중인 흥인지문 사진

 

아마도 일제시대 지도

탑골공원이 일본어로 파고다공원이라 적혀있다

 

각 성문이 찍힌 옛날 사진들

 

동대문 사진

 

남산에서 바라본 숭례문과 경복궁

 

성벽을 넘은 일화가 담긴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

 

전차가 다닐 시절에는 성문 사이로 전차가 지나갔다고 한다

 

일제의 입김이 커지면서 성벽도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성벽처리위원회라는 기구까지 생겼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때 발행된 경성전차안내도

 

그리고 성벽과 성문은 수난의 역사가 시작된다

 

일제시대 광화문일대

 

그리고 남산 부근

경성신사라고 적힌 글씨가 보인다

 

보병연대가 주둔한 용산지역

조선군사령부와 총감관저도 보인다

 

동대문 부근 성벽을 허물고 지어진 경성운동장

 

남산에는 신사를 지어버렸다

후...

 

그래서 남산에 가면 조선신궁에 쓰였던 부재들이 남아있는 걸 볼 수 있다

 

성문은 관광지로 써먹을 수 있다 생각했는지 보존되었다

 

대경성부대관

 

인천지도도 곁다리로 붙어있다

 

컬러로 그려놓았다

 

전쟁으로 얻어터지고 먹고 살기 힘든 와중에 성벽 복구는 나중 일이 되었다

 

그래도 차츰차츰 도면을 만들어 조사하기 시작했다

 

복구가 미뤄지면서 성벽에 쓰인 돌을 가져다 집을 짓거나 하는 일까지 생겼다

학교 담장으로 사용된 성벽

 

김신조 일해이 박정희 목 따러 온 사건이 생기면서 성벽의 중요성이 커졌다

이때를 계기로 주민등록증도 생겨났다

 

천천히 복구되는 성벽

 

혜화문을 복원하기 위해 만든 설계도

 

흥인지문을 장식한 용두와 잡상

 

점차 북쪽 도성구간도 시민에게 개방되기 시작했다

 

아뇨ㅏㅇ레ㅛㅓ 잫숳굉 시롸롸 졋곻

 

그외에도 돌을 잇는 이음쇠와 돌 거북

 

박물관에는 자료열람실도 있었다

 

레고로 만든 흥인지문

 

이벤트로 L자 파일을 받았다

 

한양도성의 여장

 

그 너머로 바라본 풍경

 

위에서 바라본 동대문

 

위로 쭉 올라가면 낙산공원까지 이어진다

 

각자상석

 

오른쪽 돌에 훈국이라 적힌게 보인다

훈련도감을 뜻한다

 

각 구간의 담당자가 누구인지를 적어놓은거라고 한다

여기서 문제 생기는 순간 누구 하나 모가지 날라가는거다 ㅎㄷㄷ

 

또 어디를 둘러볼까 하다가 백남준기념관에 왔다

 

동묘앞역과 동대문 사이에 위치해있다

 

백남준 생가를 활용한 박물관이다

 

엄청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후 큰대문집이라는 이름만 남았다

어릴적 집을 찾는 과정도 영상으로 남겼다

한복을 입고 지구본을 지게에 인채 거리를 돌아다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백남준이 그린 그림과 그의 예술에 등장하는 모티프들

 

브라운관 모니터에 그의 작품이 상영되고 있었다

 

알쏭달쏭한 모니터에 흘러나오는 영상

 

그가 남긴 말들

 

상호작용하는 전시물이었다

 

골드스타라니... 세상에

 

검은건 글씨요 하얀건 종이

아니 하얀건 글씨요 검은건 모니터네

 

영어로도 번역했다

 

버튼을 돌려 백남준이 남긴 말들을 돌려볼 수 있었다

 

백남준스러운 전시물이었다

 

색동보자기가 정말 옛날 TV화면조정 노이즈 같다

 

재퐁틀 위에 이것저것을 얹은 작품

 

스미소니언 박물관을 참고해서 그의 유품을 최대한 재현하였다고 한다

 

난 태어나지 않을래요

이제는 선진국이 되었다

 

태어나는 건 자궁에서 나오는 것을 말한 걸까

 

저는 자가용을 타고 유치원에 다니게 될 거야

 

만약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삶은 언제나 가정문의 줄타기에서 아슬아슬하게 살아남은 녀석들의 말이다

 

마당에는 백남준의 작품 다다익선을 본뜬 조형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외부는 한옥이지만 내부는 그냥 현대적인 박물관이다

 

그리 크지는 않아서 금방 보고 나왔다

카페도 함께 있는 곳이다

 

학교로 돌아와서 새로 생긴 버거 집에 와봤다

 

텅텅빈 2층

 

비싸긴 하지만 맛있다

 

냠냠

 

친구를 만나서 자취방에 놀러왔다

집주인이 대선후보여서 엘리베이터 무늬가 청와대다 ㅋㅋㅋ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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