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를 뜨는 걸 보기 위해 일찍 일어났건만...

이거 보일 기미가 없다...


부스스한 선배 모습
뭔가 새벽감성에 젖은 문호 느낌이 난다

근데 이런 분위기도 나름 느낌있다

심심해서 채널돌리다가 수능특강을 틀어버렸다
어때 정신이 확들지 않아?

선배픽
자작나무 수분선크림

아침에는 감성을 자극하는 노래를 또 들어줘야지

해는 다 떴다
일출은 못봤다

조식 제공이라 아침을 간단히 먹었다

옥상에 있는 전망대

모래사장이 보이는 거 말고는 방에서 보이는 뷰랑 크게 다를 건 없다


오늘도 날씨가 흐리다ㅜㅜ


경포대에 도착

비가 내려서 호다닥 내부로 들어왔다

갑자기 관동별곡이 떠오르네
강호에 병이 깊어...

제일강산이라 적혀있다

그외에도 여기저기 글이 적힌 현판이 걸려있었다

바깥으로는 경포호가 보인다

경포대라고 적힌 현판

주차한 곳으로 내려와서

경포호를 조금 바라본 다음


커피를 마시러 왔다

강릉은 커피거리가 있을 만큼 카페로 유명하다

한옥으로 지어진 카페

좌식 공간도 있었다

물론 의자에 앉아서 마실 수도 있다

순두부커피를 시켰다
강릉은 순두부로도 유명하니
유명한거 더하기 유명한거다

모찌모찌한 고구마빵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카페 바깥에 전경을 바라볼 수 있는 조그만 전망대가 있다

이제 차를 몰아서 평창을 갈 차례

비나 눈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완전 눈의 나라다

온통 새하얗다

눈이 쌓이니 걱정이 시작된다

일반 승용차인데다 스노우체인도 없다...

제설이 시작되기 전이라 도로에도 눈이 쌓이기 시작했다


이때라도 멈췄어야 했는데...
차를 타고 올라갔는데 대관령목장은 도로가 안보일정도로 눈이 쌓여서 차들이 도로 근처에다 주차를 할 정도였다
결국 포기하고 아래로 내려가는데 중간에 눈이 쌓이다보니 바퀴가 헛돌아서 기어를 낮춘다음 겨우 빠져나왔다

무모한 짓은 하지말자...
교훈을 얻었다...

밥을 먹어야지 해서 주변 식당을 알아보고 도착한 곳

추운 날엔 역시 따뜻한 거지
순대국밥을 먹으러 왔다

이쪽은 그래도 차가 다녀서 도로까지 눈이 뒤덮히진 않았다

어우 살거 같아

몸도 녹였으니 간식거리를 찾으러

슈퍼에 왔는데 국물 라볶이라니 맛있어보인다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답게 방한용품이 충실하게 구비되어 있다

하얀 옷으로 갈아입은 나무들


또다시 선배 핸드폰을 빼앗아 찍어봤다


양떼와 눈속에서 뒹굴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다
월정사로 향했다

다행히 가는 길은 아까보다 훨씬 나았다

눈에 파묻힌 차들

다리를 건너서 가야한다

넘어지지 않게 조심조심 건너자

완전 눈의 왕국이다

여기저기 눈이 쌓였다

천왕문을 지나서

사천왕이 눈을 부릅뜨고 지키고 있다


탑을 든 다문천왕과 용과 여의주를 든 광목천왕

누각을 지나면 월정사 석탑이 있다

경전을 넣고 돌리는 윤장대가 보인다

화려한 금모로 단청

문에도 그림이 그려져있다


조각으로 표현한 금강역사
한쪽은 입을 다물고 있고 한쪽은 입을 열고 있는데
각각 산스크리트어의 첫번째와 마지막 소리인 아와 훔을 말하고 있는거다

지붕에 눈이 쌓여서 하얗게 변했다

눈이 마구마구 쌓이기 때문에 계단은 특히나 더 조심해야 한다

드디어 월정사 팔각구층석탑이 보인다

이쪽 건물은 벽 사이를 유리창으로 설치했다

고려시대 화려함이 남아있는 다각다층석탑이다

당연히 위에 있는 금속 장식이나 옥계석 아래 달린 풍경은 현대에 새로 단 건줄 알았는데
이게 고스란히 살아남은 장식이라고 한다 ㄴㅇㄱ
아 그래서 일부 옥계석 아래에는 풍경이 없구나


그걸 생각하니 더더욱 국보가 어울리는 석탑이다

탑을 둘러싼 난간에는 소원이 적힌 연등이 달려있었다

눈에 파묻힌 석등

알록달록 단청

광각으로 찍어봤다


인스타 필터를 써보니 더 하얗게 나와서 느낌 있다

아미타불을 모신 수광전
옆면에는 지장전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문 손잡이 근처는 단청이 손때로 지워졌다

적광전 지붕 합각에는 불교를 상징하는 만자가 새겨져있다

새하얀 마당

자박자박 하얀 눈길을 걷는다

적광전과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종과 북이 있는 종고루

눈내린 절은 더 세속에서 벗어난 느낌을 준다

불유각이라 적힌 건물
부처님의 젖이라는 뜻이다

우물로 보이는 돌이 뚜껑이 덮힌 채 놓여있었다

한글로 적힌 설명이 위에 적혀있었다

기둥 사이로 북이 보인다

탑 앞에는 석조보살좌상이 있었는데 박물관으로 옮긴 후 새것을 놓았다

언제봐도 화려한 절의 단청
단청은 궁궐이나 관청이 아니면 허가를 안했는데
절만큼은 화려한 단청을 허가해주었다

여러 프로그램 안내가 적혀있다

다시 돌아가자

보수중인지 기둥과 창방에 맞추어 나무를 덧대었다

맨 위에 있는 운공의 끝부분을 빨강 파랑 노랑 흰색으로 다르게 칠했다
검은색만 빠진 오방색이다

자세히보니 운공만 아니라 살미 전체에 얹은 듯 색깔을 칠했다

부연개판은 단청을 칠했는데 막상 개판은 단청을 안 칠했다


코끼리를 타는 동자?

초서체라 못알아봤다
금강루다

절을 나와서

눈이 내린 숲길을 걷는다

다리를 지나 절을 가는 길은 왼쪽이지만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가보자

나뭇가지에도 소복하게 눈이 쌓였다

눈사람과 눈펭귄 ㅎㅎ


경사면에 작은 나무들이 삐딱하게 자라고 있다

초록초록한 부분이 하얀 눈과 대조를 이룬다

천사놀이를 한 흔적






아기가 썰매놀이를 하고 있었다



눈에 완전히 파묻혀버린 벤치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가자

차를 끌고 박물관이 있는 곳으로 왔다

산이 희미하게 보일 정도로 흐리다

월정사 석보박물관
아쉽지만 휴관일이다

만세를 하는 것 같은 나무

하지만 걱정했던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은 다행히 문을 열었다

새로생긴 따끈따끈한 박물관이다

두근두근

이곳에 조선왕조실록박물관이 있는 이유는 바로 오대산 사고가 이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는 실록을 철저히 백업을 했었는데


임진왜란을 겪고 많은 사고가 불탔지만 전주사고가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이후 반성을 토대로 산 속으로 보관장소를 옮겼다


그러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으로 넘어가게 되는데


그와중에 관동대지진으로 불타버렸다


남은 실록은 어찌어찌 한국에 돌아오게 되는데



한꺼번에 돌아오는게 아니라 조금씩 돌아오게 된다

실록을 보관하는 사고의 모습

조선왕조실록뿐만 아니라 의궤도 함께 전시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이 역사의 기록이라면
의궤는 행사나 건축 등 그림으로 그 진행과정을 기록한 책이다
저렇게 보관장소를 빨간 네모로 표시해서 알아보기 좋게 전시하고 있었다

왕릉을 조성하는 과정도 남겨놓았다

임진왜란 전에는 경복궁의 춘추관 외에 충주 성주 전주에 보관을 했지만
임진왜란 이후에는 오대산 정족산 태백산 적상산에 보관을 했다

이건 태백산사고에 보관된 의궤
상호도감의궤라고 적힌 것이 보인다
도감은 임시로 설치하는 관청이다

이건 오대산사고에 보관되었던 의궤다

실록각 현판

책을 넣는 함이다



조선왕조실록과 의궤의 보관장소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나타낸 그림

선원보각
왕실 족보를 보관하는 공간이다
이처럼 사고에는 조선왕조실록만 보관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로 치면 국가기록원 같은 곳이랄까

보관하는 공간 이외에도 한양에서 온 사관이 머무르는 건물과 관리인이 머무는 건물도 있었다

기록물을 관리하는 기록도 남긴 기록에 미친 나라

포쇄한 기록도 남겼다
주기적으로 책에 습기가 차지 않게 바람에 말리는 작업을 포쇄라고 한다

봉인했다는 것도 기록으로 남겼다

사고를 관리하는 참봉을 임명하는 문서
참봉은 종9품 직급으로 오늘날로 치면 9급 공무원 같은거다

그림에 그려진 오대산 사고

실록을 담은 상자

책을 바람에 말리는 포쇄작업에 대한 영상


책을 책장에 그냥 꽂지 않고 여기저기 감싸고 함에 넣은 다음에 봉인까지 한다

마지막에는 포쇄를 제대로 했음을 기록으로 남겨서
하나는 사고에 두고 하나는 한양의 춘추관에 두었다

사고를 지키는 인력은 지역에서 충당했는데 승려도 교대로 근무하며 실록을 지켰다

그래서인지 각 사고는 이렇게 절과 붙어있었다


실록은 일기처럼 날짜별로 기록했는데 이를 편년체라고 부른다

오대산사고본 성종실록
권57-63으로 적힌게 보이는데 권을 모아서 책이 되는 구조다

경성제국대학도서인과 동경제국대학도서인이 찍혀있는게 보인다

붕당정치의 변질을 경고한 내용이 실린 선조실록

나선정벌에 대한 내용이 실린 효종실록

가장 많은 건 서울대 규장각에 위치한 정족산사고본이다
적상산사고본의 대부분은 625 때 북한에 털렸다

조선왕조실록은 중간에 정치적 문제로 수정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럴 경우에도 원본을 반드시 남기고 새로 편찬한 실록을 수정실록이나 개수실록 등으로 적었다

다만 사관의 메모인 사초는 실록을 만든 후 철저히 내용을 지웠는데
사초를 물로 씻어 내용을 지우고 종이는 재활용했다

다만 몇몇 사초는 이렇게 살아남아 전해진다
특히 춘추관에 보관하는 사초가 아닌 사관이 집에서 보관하던 가장사초는 개인적인 감정이 담긴 경우가 많아
생생한 역사적 사실이나 사관의 생각이 담기기 때문에 더 귀중하게 여겨진다

조선왕조실록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그린 영상

초안을 토대로 최종본을 만드는 것처럼 초초 중초 정초로 3번 작성한다

사초와 마찬가지로 초초와 중초도 세초를 하여 내용을 지웠다
다만 광해군일기만큼은 중초도 전해진다

봉안 사실을 기록으로 남긴 봉안형지안

손으로 쓴 필사본과 활자로 찍어내 활자본이 있다

손으로 적었던 태조실록

금속활자로 찍어낸 선조실록

실록을 찍어내던 활자

실록을 활자인쇄하는 방법

사관에 임명하는 교지

오로지 기록만 하는 전임사관과 관청에서 일하면서 그곳의 일을 기록하여 보고하는 겸임사관으로 나뉘었다

사초는 굉장히 엄격하게 다루었다
그도그럴것이 무오사화를 보면 사초를 잘못 다루었다가 여러사람 목이 날라갔다


놀랍게도 당시 여성 사관을 두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다
왕비와 여성들의 일을 기록하기에는 여성사관이 적합하다는 이유였지만 안타깝게도 시행되지는 않았다

임진왜란 이후 물자가 부족해서 원래라면 수정을 하게 되면 깨끗하게 새로 만들어야 하지만
교정을 본 흔적이 남은채로 보관되었다

교정 흔적이 남은 성종실록 오대산사고본

여러 교정기호들

붉은 글씨로 교정을 본 흔적이 잘 드러난다


행사 매뉴얼을 그림으로 남긴 의궤

경운궁 화재 후 중건 과정을 그림으로 남긴 의궤
경운궁은 지금의 덕수궁이다

국새와 어보 제작 과정을 남긴 의궤

거북모양 국새
나중에는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황제를 상징하는 용모양 국새를 만든다

왕에게는 여러 이름을 가지게 되는데 주로 죽고나서 종묘에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는 이름이 묘호가 되고 왕릉의 이름은 능호가 된다
그래서 세종대왕의 세종은 묘호고 영릉은 능호이다
죽고나서 붙는 이름이기에 국왕이 살아있는데 묘호를 부른다는 건 말이 안되는데다가 모욕이다
많은 고증에서 틀리는 내용

의궤를 그리면 화원이 채색을 한다

의궤에 들어가는 그림은 이렇게 목판을 만들고 찍는 식으로 만들어진다

춤을 추는 장면이 그려진 목판

아무래도 글로만 설명하면 이해하기 어려우니 의궤에는 그림도 함께 들어간다
도설은 도구나 춤을 묘사한거고 반차도는 전반적인 배치와 순서를 그린 것이다

아까 목판이 찍힌 페이지


화원이 그린 그림을 토대로 목판을 짜고 이를 다시 종이에 찍는다

행사를 준비할 때는 임시 관청인 도감이 만들어지고 도감의 실무부서가 모은 자료를 토대로 의궤를 만든다
장례를 준비할 때는 국장도감이 무덤을 만들 때는 산릉도감이 만들어지고
이로써 만들어지는 의궤가 국장도감의궤, 산릉도감의궤가 된다

존호를 올리는 의식을 기록한 의궤
존호는 군주에게 붙는 수식어인데 시호와 묘호 같은게 다 포함되는 큰 개념이다

의궤의 구성
여러 내용이 담긴다

행사 날짜와 담당자 명단 임금의 지시등이 실리고
그리고 여러 공문서와 행사 비품 등이 들어간다

컬러로 채색이 들어간 의궤 반차도

왕이 보는 용과 관청이 쓰는 용도 그리고 보관용등 의궤는 용도별로 여러권 만든다

왕이 보는 의궤는 좀더 고급지고 깔끔하다

의궤도 실록처럼 필사본과 활자본이 있다

이건 필사본 의궤

이건 활자본 의궤

이렇게 각 도감별 의궤를 멀티미디어로 볼 수 있었다


국장도감의궤의 반차도







가례도감의궤의 반차도
가례도감은 왕실의 혼례를 준비하는 임시관청이다









책례도감의궤의 반차도
책례도감은 왕실 책봉 절차를 주관하는 임시관청이다







명헌태후의 71세를 경축하는 궁중연회 내용이 신축진찬의궤에 담겼다

대한제국 때 만들어진 의궤다보니 태극기도 보인다

태조 어진
원본은 한국전쟁 때 절반이 불타버렸기 때문에
사진을 보고 복구한 그림이다

어진이 아닌 이상 그림에서 임금은 그려지지 않는다
그냥 어좌만 그려진다

태조의 어진은 경복궁 선원전 뿐만 아니라 각 지방에도 어용전을 지어서 보관했는데
임진왜란 때 다 사라지고 경기전 어진만 살아남았다

어진을 모사하는 과정도 의궤로 남겼다

의궤에 그려진 왕실 기물들

영희전영건도감의궤

태조의 어진이 봉안된 경기전을 그린 그림

그리고 똑같이 터조의 어진이 봉안도니 영흥 준원전 그림
영흥은 이성계의 고향으로 함경남도에 위치하고 있다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그 과정도 대례의궤로 남겼다

대한제국의 용모양 국새

자세히보면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다
옥으로 만든 국새

대한제국 황제의 깃발
전설의 동물 기린이다

깃발이 그려진 의궤

명성황후의 국장을 기록한 의궤

조선에서 대한제국이 되면서 왕이 황제가 된만큼
황제의 격에 맞게 왕을 상징하는 물건들도 바뀌게 된다

전시관의 끝
아직 못본 전시물들이 있으니 다시 발걸음을 돌린다

왕실의 모든 일은 의궤에 기록되기 때문에
의궤를 보면 그들의 삶을 알 수 있다

우여곡절 끝에 돌아온 오대산사고본

왕실의 인물이 돌아가면 시신을 수습해서 재궁이라는 관에 넣는데 발인 전까지 재궁을 빈전이라는 건물에 두게 된다
왕릉이 만들어지고 재궁이 안치되면 혼전에서 신주를 모시게 된다
혼전용과 빈전용으로 건물이 따로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궁궐에 따라서는 그때마다 특정건물을 빈전과 혼전으로 지정해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신정왕후 장례 때 만들어진 빈전혼전도감의궤

장례를 위해서만 설치되는 도감이 여럿이다
매장을 위한 빈전도감 국장도감 산릉도감이 있고
매장 후를 위한 부묘도감과 혼전도감이 있다

철종의 어진
한국전쟁 때 피신을 갔지만 부산에서 화재가 나는 바람에 반쯤 타버렸다
유일하게 구군복을 입은 어진이라 중요도가 상당하다

제사 때 사용되는 제기들

죽은 왕이나 왕비의 존호를 새긴 도장을 금보라고 한다

제기를 그림으로 그려둔 의궤

왕릉을 조성하는 과정을 그린 예릉산릉도감의궤

철종의 신주를 종묘로 옮기는 과정을 그린 부묘도감의궤

빈전도감에서의 의식을 적은 설명

이거는 산릉도감의 의식

매장 후에는 혼전도감에서 의식을 치른다

전시관 끝에는 이렇게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역사를 두려워했던 연산군의 말


센스있게 도장을 찍어 나만의 실록을 만들 수 있었다



조선왕조실록과 의궤가 돌아오기까지의 과정

바깥을 보니 여전히 눈 세상이다


지붕에 두껍게 쌓인 눈


나무에도 눈이 바나나처럼 쌓였다

다시 주차장으로

그래도 번호판이 보일 정도로 녹았다


열심히 차를 몰아서 양평 휴게소에 도착
아니 그림만봐도 일본 게임인데 한국 휴게소에 있는게 신기하네


겨우 서울에 도착


조만간 이사를 하기 때문에 에어프라이어랑 이것저것 가구를 에타에서 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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