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타워
printf("\"Tokyo Tower\" este un blog din dragoste pentru călătorii și cafea")
아무생각 없이 부산에 왔다
728x90

 

아무생각 없이 부산에 왔다.

 

그냥 바다가 보고 싶었다. 그것 외에는 아무런 이유도 없었다.

 

부산역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은 2배속 재생을 한 것처럼 빠르게 희영을 스쳐지나갔다.

 

희영이 부산에 온 것은 중학교 수학여행이 마지막이었다. 그때는 여행은 커녕 친구들과 버스 안에서 핸드폰 게임을 하는 게 더 즐거워서 바다는 기억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다만 기억하는건 그때 수족관에서 샀던 펭귄 엽서 한장... 아마도 집 구석에서 꼬깃꼬깃한채 남아있거나 이사하는 과정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이상하게도 기억에 남는 건 언제나 사소한 것들이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바다는 부산 앞을 지키고 있었다.

 

드넓은 바다를 바라보면 나를 괴롭히는 고민과 복잡한 인생이 얼마나 부질없고 하찮게 느껴지는지...

 

철썩하는 파도에 몸을 실었다.

 

입은 옷 그대로였지만 괜찮았다. 이대로 바다와 함께 멀고먼 세상으로 떠나고 싶었다.

 

무더운 여름에도 시원함이 강하게 밀려왔다. 마치 여름을 모르는 것 같았다.

 

축축한 몸을 이끌고 부산역으로 돌아가는 택시를 탔다. 택시 기사 아저씨는 뭐꼬 뭐꼬를 외치면서도 자리에 신문지를 몇장 깔아주셨다.

 

부산역에 내릴 때 아저씨는 걱정어린 마음으로 한마디를 남겼다. "죽으삐믄 안댄다. 살아야제"

 

아무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곤 자리에 깔린 신문지를 챙겨 역으로 들어갔다. 여전히 사람들은 2배속으로 걷고 있었다.

 

출발하는 KTX에서 숨을 들이켰다. 몸에 밴 바다 냄새를 맡으려고. 아쉽지만, 앞자리에 앉은 아이의 과자 냄새만 날뿐이었다.

 

바다를 담지 못한 채 열차는 출발했다. 이걸로 되었다.

바다를 보러 왔을 뿐이다.

728x90

'끄적끄적 >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はじめて来た東京は  (0) 2025.03.08
인생의 효자손  (0) 2025.03.08
재미있는 수학은 초코우유 같은거야  (0) 2025.03.08
인신사고  (0) 2025.03.08
스미다강 불꽃놀이  (0) 2025.03.08
Ascult Iarna în Kamakura  (0) 2025.03.08
언젠가 이 숲의 푸르름을 기억하는 누군가에게  (0) 2025.03.08
기억의 조각  (0) 2025.03.08
재미있는 수학은 초코우유 같은거야
728x90

 

선생님 이렇게 재미있는 수학이 왜 그동안 어렵고 재미없다고 생각했을까요? 대한민국 교육이 문제예요!

 

너희들 왜 수학이 그냥 재미없다고 생각하니?

그거 다 정부의 속셈이야.

 

모두가 수학에 빠져서 수학자가 된다고 생각해보렴. 다른 직업을 가질 사람도 필요하지 않겠어? 수학자는 특출난 몇명만 필요하면 돼.

 

그러니까 적당히 사는데 불편함이 없게 이런게 있다고 알려주기만 하면 되는거야. 너무 재미있지 않게, 빠져들지 않게.

 

오히려 너무 재미있게 알려줬다가 수학과에서 좌절하는 일은 막아야지.

 

그래서 이렇게 재미없게 가르쳐도 수학의 매력을 알아채는 녀석을 고르고 골라서 수학과에 보내는거지. 그런 녀석은 정말 옥석이지 않겠어?

 

급식에 맨날 초코우유나온다 생각해봐. 맛은 있겠지만 건강을 위해서는 흰우유가 바람직해.

 

재미있는 수학은 초코우유 같은거야.

 

*사실과는 다릅니다. 음모론입니다.

728x90

'끄적끄적 >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はじめて来た東京は  (0) 2025.03.08
인생의 효자손  (0) 2025.03.08
아무생각 없이 부산에 왔다  (0) 2025.03.08
인신사고  (0) 2025.03.08
스미다강 불꽃놀이  (0) 2025.03.08
Ascult Iarna în Kamakura  (0) 2025.03.08
언젠가 이 숲의 푸르름을 기억하는 누군가에게  (0) 2025.03.08
기억의 조각  (0) 2025.03.08
인신사고
728x90

 

오늘도 주오선은 지연이다.

 

7월 11일 주오선 인신사고 1건

7월 12일 야마노테선 인신사고 1건

7월 14일 게이힌도호쿠선 인신사고 2건

 

처음엔 무시무시했던 인신사고도 이젠 내 출근길을 방해하는 짜증나는 사건이 된다.

 

무뎌진다는 건 무서운 일이다.

 

계속되는 재해, 사건사고 뉴스...

칼부림, 진도 7의 지진, 무너진 건물...

 

지금도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눈물을 흘리고, 누군가는 하늘을 원망하고, 누군가는 세상을 잃는다.

 

그렇게 오늘도 우리는 돌다리를 건넌다. 내가 밟는 돌다리는 안전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고...

 

오징어게임 유리다리를 모두가 건넌다. 앞서 떨어진 사람들을 잠시 안타깝다고 애도하며...

 

인신사고라는 단어는 너무나 익숙해서 우리는 이제 인신사고라는 단어에서 산산조각난 팔다리를 떠올리지 않는다. 터져나오는 피로 범벅이 된 플랫폼과 창문을 떠올리지 않는다. 오로지 늦어지는 내 출근시간과 짜증남이 남을 뿐이다.

 

무뎌진다는 건 편하지만 무서운 일이다.

 

오늘도 누군가의 팔이 전철에 잘려나간다.

728x90

'끄적끄적 >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はじめて来た東京は  (0) 2025.03.08
인생의 효자손  (0) 2025.03.08
아무생각 없이 부산에 왔다  (0) 2025.03.08
재미있는 수학은 초코우유 같은거야  (0) 2025.03.08
스미다강 불꽃놀이  (0) 2025.03.08
Ascult Iarna în Kamakura  (0) 2025.03.08
언젠가 이 숲의 푸르름을 기억하는 누군가에게  (0) 2025.03.08
기억의 조각  (0) 2025.03.08
스미다강 불꽃놀이
728x90

 

어두운 밤을 가로질러 아버지의 도요타가 깊은 숲을 밝혔다.

 

내가 일곱살이 되는 생일날, 평소에 오후 여덟시만 되면 TV는 그만보고 잘 준비를 하라던 아버지가 아무말 없이 나를 차에 태웠다.

 

적막이 흐르는 차안에서 중앙인민방송이 떠들석하게 정체상황을 알리고 있었다.

 

도착한 곳은 아버지의 어선이 위치한 항구였다. 낮에 자주 놀러가서 아버지가 잡은 물고기를 신기하게 쳐다보곤 했다. 밤이라면 물고기도 잘 안보일텐데... 어린 마음에는 왜 이곳에 왔는지 궁금하기도 전에 그런 아쉬움만 가득했다.

 

밤바다는 고요하고 어두웠다. 깊은 바다를 바라보니 여차하면 바다에 빠져 영영 나오지 못할 것만 같았다.

 

아버지는 말 없이 배의 시동을 걸었다. 나는 허둥지둥 배에 올라탔다. 그렇지 않으면 아버지가 그냥 떠나버릴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조용한 밤바다가 어느새 시끄러운 엔진소리로 가득찼다.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채 배는 출발했다.

 

내가 큰 소리로 어디에 가는 건지 물었지만, 아버지는 들리지 않는 건지 대답하기 싫은 건지 아무 말도 없으셨다.

 

한참을 지나서였을까, 저멀리 휘황찬란한 상해의 모습이 보였다. 상해에서 조금 떨어진 어촌에 사는 우리는 특별한 일 없이는 상해의 대도시와 마주할 일이 없었다.

 

오늘은 무슨 고기를 잡으려나 기대하고 있었는데, 아버지께서 배의 시동을 끄셨다. 무서운 마음이 들어 아버지 손을 꼬옥 잡았다. 아버지께서는 안심하라는듯 내 손을 살며시 끌고 갑판으로 나왔다.

 

그 날따라 파도가 조용해서, 갑작스레 펑하고 터지는 소리에 나는 전쟁이 난 줄 알았다.

 

그 순간 하늘에서 별이 떨어졌다. 별이 떨어진다며 방방 뛰는 나를 감싸고 아버지께서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버지 얼굴을 슬쩍 쳐다봤지만, 어둠 속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별들이 아버지를 데려가지 않도록 아버지 품에 꼬옥 안겨 놓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 날 밤 꿈 속에서 수많은 별이 떨어졌다. 나중에 되어서야 그것이 불꽃놀이란걸 알았다.

 

그 날 이후 아버지는 어선을 팔았고, 나는 영문도 모른채 일본에 계신 친척의 양자로 들어갔다.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 알기에는 나는 너무 어렸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는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건너건너 들을 수 있었다. 유년의 기억은 이미 바쁜 학교생활에 흩어졌고, 그렇게 아버지는 별이 되어 사라졌다.

 

대학생이 되어 기말고사를 앞둔 어느날, 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스미다강 불꽃놀이를 보러가는 길이었다.

 

복잡한 인파를 헤치고 강에 다다랐을 때, 펑하는 소리가 났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별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순간 그 날 보았던 아버지의 어깨가 떠올랐다. 파도가 치지 않는 그 날, 아버지의 어깨만이 파도를 치고 있었다.

 

눈물이 흘렀다. 환호성 속에 숨어 도망치듯 회장을 빠져나와 눈물에 얼굴을 파묻었다.

 

하나둘 터지는 불꽃소리가 가슴을 쿵쿵 내려쳤다.

 

모두가 불꽃을 향해 걸을 때, 나는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그 날의 난 일곱살 미아였다. 울며 아버지를 찾아 헤매던.

 

별이 강에 하나둘 떨어지던 그 날, 아버지는 내게 눈물이 되어 떨어졌다.

728x90
Ascult Iarna în Kamakura
728x90

 

"가마쿠라, 여긴 참 신기한 동네야"

 

유이가 하교할 때마다 지나치는 관광객을 보며 항상 하던 말이었다.

 

"가마쿠라하면 고즈넉한 분위기일 줄 알았는데, 막상 관광객은 이렇게도 많아. 그런데도 그 환상이 사라지지 않는 건 뭐람"

 

"Nu știu, 유이 너도 어찌보면 turist 아니야? turist pe termen lung"

 

"하긴 아직 여기에 온지 5년도 안되었으니, 틀린 말은 아니네"

 

유이도 나도 가마쿠라가 낯설다. 비록 태어난 곳은 다르지만, 우리는 루마니아에서 살다 왔다는 공통점이 있었고, 그래서인지 가끔 루마니아어를 섞어쓰곤 했다.

 

나로써는 답답할 때 모국어로 소통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고, 유이는 남들 모르게 비밀의 언어를 쓸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내가 자란 곳은 루마니아의 북쪽에 위치한 이아시라는 곳이었다. 바다랑 다소 떨어진 곳이었기 때문에,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넘실거리는 파도에 푹 빠져서, 학교가 끝나면 매일같이 노을이 지는 바다를 찾곤 했다.

 

반대로 유이는 초등학교 때 무역회사에 일하시는 아버지를 따라 부쿠레슈티로 이주했고, 현지 일본인학교를 다니면서 조금씩 루마니아어를 배웠다. 그 덕분에 이렇게 모국어를 섞어 써도 유이는 척하고 알아듣는다.

 

하지만, 같은 나라라고 해도 동네 풍경은 외국이라 해도 좋을 만큼 다르다. 6년 전 어머니 친구 결혼식에 따라 갔을 때 본 부쿠레슈티는 너무나 삭막해서 이곳이 학교에서 배운 소련이라는 곳인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런 말을 유이에게 하면, 유이는 손을 내저으며 웃었다. "아니아니 București가 조금 삭막하긴 해도 소련은 아니지!! Republica Socialistă 무너진게 언젠데!"

 

그렇게 가마쿠라에서의 나날이 계속될 줄 알았다. 아니 언젠가 이 마을을 떠날 날이 각자 찾아오겠지만, 적어도 그건 대학생 정도의 이야기일거라 생각했다.

 

고교 입시 이야기가 한창일 때, 유이가 갑작스레 이별을 고했다.

 

"블라, 나 이 도시를 떠날거야. 그러니까 La revedere야"

 

블라라는 건, 나를 부르는 유이만의 애칭 아닌 애칭이었다. 블라디미르라는 이름이 너무 권위있게 느껴진다나. 일본 친구들이 애칭을 부르는게 조금 부러웠던 모양이다.

 

"Dece? 아직 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잖아. 당연히 현내 고교에 진학할 줄 알았는데..."

 

"고등학교 가서도 부활동(동아리) 계속 하려고. 전국 콩쿠르에 나가려면 사이타마에 있는 학교가 아니면 힘들어"

 

유이는 중학교 내내 취주악부에 소속되어 있었다. 가끔 부활동을 빼먹고 나랑 같이 바다에 놀러가서 진심이 아닌 줄 알았는데...

 

"음대를 노리는거야?"

 

"그건 잘 모르겠어. 그냥 취주악이 하고 싶어서"

 

"누가 가마쿠라 출신 아니랄까봐. 취주악계의 안자이 선생님을 만나길 빌게"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역시 외국 경험이 있는 친구는 이별도 시원해서 좋아"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아직 다른 친구들한테는 말 못했구나"

 

"어떻게 말해... 카나는 엄청 울게 불보듯 뻔한데..."

 

"하긴... 한동안 울고불고 늘어지도록 붙잡겠지만 잘 버텨봐. 너가 선택한 거잖아"

 

가끔 유이는 부활동을 빼먹은 날, 나를 데리고 바다에 와서 색소폰을 불곤 했다.

 

"그럴거면 빠지지나 말지. 굳이 땡땡이를 치고 색소폰을 불겠다고?"

 

"여기선 바다가 청중이잖아. 꽉막힌 교실에서 부르는 거보다 훨씬 재미있어"

 

리드를 넣기 전, 유이가 당당히 말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멜로디였다. 유이에게 물어보니 비발디 사계 중 겨울이라고 했다. 지금은 가을인데 겨울이라니...

 

"뭐 어때 여름도 아니고, 가을 정도면 겨울의 친구같은 거잖아. 우리처럼!"

 

유이가 가마쿠라를 떠난 이후 나는 가마쿠라 바닷가에서 종종 이어폰으로 비발디 겨울 연주를 듣곤 한다.

 

그리곤 이 풍경과 참 어울리지 않는 곡이라 생각한다. 그럴 때면 유이가 했던 말을 떠올린다.

 

"가마쿠라, 여긴 참 신기한 동네야"

 

조용하면서 시끄러운 동네, 마치 가마쿠라와 겨울 같다.

 

곡은 클라이맥스를 넘어 잔잔해졌고, 그에 따라 넘실거리는 파도도 조금 잔잔해진 것 같다.

 

어쩌면 파도는 청중이 아니라 지휘자가 아닐까?

 

오늘도 겨울을 들었다. 그때는 다가올 겨울이었는데, 이제는 지나간 겨울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겨울은 유이와의 이별이었다.

 

멜로디는 남았고, 유이는 떠났다. 악보 속 8분 음표가 조용히 하늘을 날고 있었다.

728x90
언젠가 이 숲의 푸르름을 기억하는 누군가에게
728x90

 

언젠가 이 숲의 푸르름을 기억하는 누군가에게

 

안녕하십니까. 환경부 산림청 산림자원관리과 소속 6급 진민석입니다. 지금은 2024년 5월 23일 목요일이군요.

 

어쩌면 제가 지금 말한 자기소개조차 제대로 전달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좋습니다. 설령 당신이 제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쩌면 이 편지에 적힌 문자를 해독하지 못한다고 해도요.

 

이 편지를 누군가가 읽고 있다는 건 어떠한 방식으로든 인류가 지구에서 살아남았다는 증거니까요.

 

우리는 지금 분기점에 서 있습니다. 얼마전 강원특별자치도 태백시에 위치한 산림을 연구하는 중에 이상한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모든 소나무에서 갈라진 흔적이 있었고, 놀랍게도 그 갈라진 흔적에서 새빨간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누군가가 장난을 친줄 알았지요. 하지만 이내 그게 아니란 걸 알게되었습니다. 온나라 공문을 통해 이 것이 태백시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라 전국에서 발생하였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현상을 처음 발견했다는 사실 하나로 정부 브리핑을 준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급히 산림청과 각 대학의 환경학과 및 생명공학과 교수들이 태백을 방문해, 표본을 수집하고 연구를 진행하였습니다. 그리고 밝혀진 사실은 이것이 전염되는 질병이라는 것입니다. 아일랜드를 기근으로 몰아넣은 감자역병처럼 말입니다.

 

한국에서 시작된 소나무 전염병은 전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습니다. 연구결과, 이 역병균은 소나무 뿐 아니라 대부분의 목본 식물에 전염된다는 걸 알게되었습니다. 그 순간 한국은 고립되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한국에 들어갈 수도 나올 수도 없었습니다. 이 역병이 옮는 순간, 세계에서 나무라는 건 공룡처럼 역사의 흔적으로 변하게 될테니까요.

 

앞서 분기점이라는 말씀을 드렸던 것처럼, 우리는 역사의 순간에 서있습니다. 아마도 이 역병은 세계로 퍼져나갈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미 다른 나라에서도 몇몇 개체가 전염되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나무라는 게 존재했음을 미래에 알리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기도하다보면 언젠가 역병을 이기는 새로운 종이 탄생할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무력했는지. 우리는 가끔 착각하곤 합니다. 광산을 채굴하고, 농사를 짓고, 공장을 세우면서 마치 우리가 이 지구의 주인인 것처럼 행사하지만, 결국 우리도 보잘것 없는 생명체에 불과합니다.

 

이제 사라진 나무로 땅은 황폐해지고 숨 쉬기 어려워지겠지요. 기후가 변하고 지구는 지금을 기회삼아 인간이라는 기생종을 역사의 흔적으로 남기고자할 것입니다.

 

아직 살아남았다면 우리가 아닌 나무를 기억해주십시오. 이 땅에 나무라는 푸르고 거대한 생명이 존재했다는 것을.

 

아직 여기에 적힌 문자를 읽을 수 있다면, 이상한 부분이 많았을지도 모릅니다. “산림”, “나무”가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 푸르름이 가득한 세계를 남기고 싶어 우리는 많은 사진을 찍었습니다. 오랜 기간 보존이 가능하도록 약품을 사용해 보존처리를 했습니다. 부디 이 푸르름이 후대에도 전달되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마음에 사진 몇장을 남깁니다. 그리고 마음 같아서는 이 역병이 해결되어 다시 푸르름을 되찾아 제가 방금 한 말에 코웃음 칠 수 있었으면 합니다.

 

No.2948 나무 (장기보존)

2024.05.20.14:22:11

SM-N245K

강원특별자치도 태백시 인목면 산23-4

산림청 태백산 관리사무소 소장 인

728x90
기억의 조각
728x90

 

기억의 조각이 해변의 조개껍데기처럼 여기저기 흩어져있었다.

 

진혁이 에노시마에 온 것은 입대하기 전 마지막 여행으로 왔던 것이 마지막이었다.

 

다시 찾은 에노시마는 조금은 그대로였고, 조금은 바뀌었을테지만 진혁은 그 바뀐 부분을 눈치챌 수 없었다.

 

그야, 기억이 깨진 유리조각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더 이상 그 조각을 모아 온전한 기억을 만드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변함 없는 건 그 때도 해가 뉘엿뉘엿 질 때 방문했다는 점이고, 달라진 건 그때와 달리 에스컬레이터를 타지 않았다는 점이다.

 

왜 에스컬레이터를 타지 않았는지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단순히 돈이 아까웠을지도 모르고, 그때는 헤어짐의 여행이었지만 지금은 재회의 여행이기 때문에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이곳을 느껴보겠다는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어둠이 찾아온 에노시마는 햇빛과 함께 인적도 사라져갔다. 특별 요금을 더해 들어온 전망대는 노을을 찾아온 관광객과 커플들로 조금 북적였지만, 10분도 지나지 않아 전망대는 진혁과 달, 둘만의 공간이 되었다.

 

5년이 지난 지금, 무엇이 변했는지 알 수 없었던 에노시마와 달리, 달만큼은 변함 없이 진혁을 비추고 있었다. 2층에 올라가니 진혁과 바다를 가로막는 유리창이 사라졌고, 거친 파도소리가 진혁의 귀를 간지럽게 만들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수평선을 가로지르는 새들을 보며, 진혁은 자유로움과 동시에 너무나도 자유롭기에 방황하는 새들을 생각했다. 누구나 태어나면서 자유를 추구하지만, 그런 강박 자체가 우리를 자유롭지 않게 만드는 건 아닐까. 세상 많은 것이 무언가를 목표로 할수록 오히려 목표에서 멀어지고 만다.

 

진혁은 지상낙원을 만들겠다며 혁명을 일으킨 독재자들 몇명을 머릿속에서 떠올렸고, 이내 지워버렸다.

 

걷잡을 수 없는 상념을 뒤로 하고, 진혁은 하나둘 조명이 들어온 정원을 지나쳐, 왔던 길을 내려왔다. 그 와중에 마음에 드는 엽서 몇장을 샀고, 5년 전과 달리 현금이 아닌 QR코드 결제로 가뿐히 계산을 마쳤다. 사람들의 외면을 받는 동전을 동정하면서 말이다.

 

후지사와 역으로 가는 노면전차에는 하교하는 학생들과 관광객이 적절한 비율로 섞여, 일상과 비일상이 서로에게 무관심한 채, 바삐 역으로 옮겨졌고, 역에는 급격한 일상의 유입으로 비일상은 곧 자취를 감추었다.

 

퇴근하는 회사원과 하교하는 학생 사이에서 진혁은 자신이 일상인지 비일상인지 정체성에 혼란이 왔다. 그리곤 이내 일상과 비일상의 어중간한 경계에서 살아야함을 직감했다. 그것이 조국을 떠난 이의 운명이리라 진혁은 생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집으로 향하는 전철이 도착했고 진혁은 그 속에 몸을 숨겼다. 전철은 누군가에겐 일상일지 모를 비일상을 지나 진혁의 일상으로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차창너머 풍경이 영화 필름을 되감는 것처럼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달리는 전철 속에서 진혁은 가마쿠라 바닷가에서 조개껍데기를 줍는 상상을 했다. 하나하나 줍는 조개껍데기가 잃어버린 기억의 조각이라 생각하며...

728x90
히가시신주쿠보다 니시신주쿠를 좋아해요
728x90

 

"히가시신주쿠보다 니시신주쿠를 좋아해요."

 

그렇게 말하던 그녀가 자취를 감춘 건 어제부터였다. 아니 어쩌면 그저께일지도 모른다.

 

카뮈 같은 말이지만, 그녀가 사라지고 난후 그는 정말 이방인이 된 것만 같았다.

 

그녀를 찾기 위해 온 니시신주쿠, 하지만 그녀의 흔적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거대한 빌딩 숲 사이에서 갈 길을 잃은 채 방황하는 사이로 샐러리맨이 바쁘게 스쳐지나갔다.

 

결국 도청이 보이는 공원 벤치에 앉아 쉬기로 했다. 그녀가 좋아했던 도청앞 중앙공원이었다. 까마귀 몇 마리가 애처로운듯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었다.

 

어쩌면 그녀는 히가시신주쿠가 더 좋아져서 이곳을 떠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니시신주쿠를 좋아한다는 그 이유 때문에 그녀를 좋아한 것은 아니었지만, 니시신주쿠보다 히가시신주쿠를 좋아하는 그녀를 상상하니 선듯 마음이 가지 않았다.

 

이유가 뭐였더라... 네온이 반짝반짝 빛나는 가부키초보다는 벤치가 있고 숲속에서 책을 읽을 수 있는 도청앞 중앙공원이 마음에 들어서...였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누구보다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이었다. 마치 가부키초 네온사인처럼 말이다.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화려한 옷을 입고, 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하는 그녀의 모습에 압도당한 기억이 생생하다.

 

그렇다면 자기와는 다른 분위기에 끌렸던 게 아닐까? 그는 어느쪽이냐하면 니시신주쿠 같은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가부키초의 화려한 분위기를 좋아한 건 아니었지만, 그녀에 끌렸던 건 분명하다.

 

어쩌면, 지금 열심히 니시신주쿠에서 그녀를 찾고 있는 건, 그녀가 니시신주쿠를 싫어하지 않았으면 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만일 그녀를 찾는다면...

 

"아직도 니시신주쿠를 좋아하시나요?"

728x90

'끄적끄적 >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미다강 불꽃놀이  (0) 2025.03.08
Ascult Iarna în Kamakura  (0) 2025.03.08
언젠가 이 숲의 푸르름을 기억하는 누군가에게  (0) 2025.03.08
기억의 조각  (0) 2025.03.08
대빵만한 만두  (0) 2025.03.08
해가 지는 오다이바를 걸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0) 2025.03.08
미술 관  (0) 2025.03.08
이상한 날개  (0) 2023.09.09
대빵만한 만두
728x90

 

"눈을 감고 레인보우 브릿지를 건너면 소원이 이루어진대"

 

소영의 그 말에 의심보다도 무슨 소원이 좋을까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으래? 그럼 우리도 눈 감고 건너볼까?"

 

"이 바보야 그냥 한 말이야. 정말 눈을 감고 건널 수 있을거라 생각한거야?"

 

"음... 레인보우브릿지를 지나가는 모노레일에서 눈을 감는 것도 괜찮으려나?"

 

"그러면 왠지 신이 화낼 거 같지 않아? 인생을 그렇게 대충 퉁치면 안돼!! 라면서"

 

"그래도 만약 소원을 빈다면 어떤 소원을 빌거야?"

 

"나는 대빵만한 만두"

 

"그게 뭐야 좀 더 소원다운 소원을 빌어야지"

 

"어차피, 너무 큰 소원을 빌면 신한테 버거울지도 몰라. 모노레일에서 눈을 감는다면 이 정도가 적당해"

 

"그럼 나는 대빵만한 타코야끼*로"

 

"뜨거워서 못 먹을걸"

 

"그건 만두도 마찬가지야"

 

우리는 레인보우 브릿지에서 열심히 눈을 감고 있었다. 도쿄 앞바다에 커다란 만두와 타코야끼가 나타나길 빌면서...

 

*정확한 표기는 "다코야키"

728x90
해가 지는 오다이바를 걸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728x90

 

“해가 지는 오다이바를 걸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당산역으로 향하던 지영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그 한마디였다.

 

“네? 오다이바요?”

 

보통 이런 식으로 되물어온다면 “일본 도쿄에 있는 오다이바요”라고 설명할법도 하지만, 그는 당연하다는듯이 “네, 오다이바요.”라며 담담히 답할 뿐이었다.

 

“아뇨, 오다이바는 가본 적이 없는데요 왜요? 이상한거면 사절할게요.”

 

지영의 의심가득한 눈초리에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대답했다.

 

“노을 지는 오다이바에 소중한 걸 놓고 왔거든요. 오다이바의 노을을 기억하는 사람을 찾고 있어요.”

 

대꾸할 필요성을 못느낀 지영은 고개만 끄덕이곤 서둘러 당산역으로 향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기 전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지영이 뒤돌아보았을 때, 그는 여전히 사람들을 붙잡곤, 오다이바의 노을을 찾고 있었다.

 

“별의별 이상한 사람이 있네...”라고 생각하며 서둘러 플랫폼으로 향했다. 이번 열차를 놓치면 문산행 경의중앙선까지 놓칠 수 있다.

 

아슬아슬하게 2호선 열차에 몸을 실은 지영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마터면 지하철을 놓칠 뻔했다. 궁금해서 한 번만 더 물어봤더라면, 확실하게 다음 열차행이었다.

 

그렇게 당산을 떠난 열차가 한강을 지날 때, 지영은 차창너머로 수줍은 하늘을 발견했다. 하늘에서 내리는 붉은 빛이 한강을 전염시키고 있었다. 오늘따라 지영에게는 묘한 붉음이었다.

 

그가 찾고 있었던 건 무엇이었을까? 지영은 그가 잃어버렸을 오다이바에서의 추억을 상상했다.

 

연인과 같이 걷던 오다이바 해변... 넘처버린 파도에 젖어버린 양말...

 

어느 것도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을 만한 추억은 아닌지라 지영의 궁금증은 깊어만 갔다.

 

어쩌면 그가 잃어버린 건 노을 그 자체였을까.

 

...내일은 당산역에 가볼까?

 

금요일 오후, 오다이바보다 조금 느리게 한강에서 태양이 붉은 빛을 토하고 있었다.

728x90

'끄적끄적 >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미다강 불꽃놀이  (0) 2025.03.08
Ascult Iarna în Kamakura  (0) 2025.03.08
언젠가 이 숲의 푸르름을 기억하는 누군가에게  (0) 2025.03.08
기억의 조각  (0) 2025.03.08
히가시신주쿠보다 니시신주쿠를 좋아해요  (0) 2025.03.08
대빵만한 만두  (0) 2025.03.08
미술 관  (0) 2025.03.08
이상한 날개  (0) 2023.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