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생각 없이 부산에 왔다.
그냥 바다가 보고 싶었다. 그것 외에는 아무런 이유도 없었다.
부산역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은 2배속 재생을 한 것처럼 빠르게 희영을 스쳐지나갔다.
희영이 부산에 온 것은 중학교 수학여행이 마지막이었다. 그때는 여행은 커녕 친구들과 버스 안에서 핸드폰 게임을 하는 게 더 즐거워서 바다는 기억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다만 기억하는건 그때 수족관에서 샀던 펭귄 엽서 한장... 아마도 집 구석에서 꼬깃꼬깃한채 남아있거나 이사하는 과정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이상하게도 기억에 남는 건 언제나 사소한 것들이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바다는 부산 앞을 지키고 있었다.
드넓은 바다를 바라보면 나를 괴롭히는 고민과 복잡한 인생이 얼마나 부질없고 하찮게 느껴지는지...
철썩하는 파도에 몸을 실었다.
입은 옷 그대로였지만 괜찮았다. 이대로 바다와 함께 멀고먼 세상으로 떠나고 싶었다.
무더운 여름에도 시원함이 강하게 밀려왔다. 마치 여름을 모르는 것 같았다.
축축한 몸을 이끌고 부산역으로 돌아가는 택시를 탔다. 택시 기사 아저씨는 뭐꼬 뭐꼬를 외치면서도 자리에 신문지를 몇장 깔아주셨다.
부산역에 내릴 때 아저씨는 걱정어린 마음으로 한마디를 남겼다. "죽으삐믄 안댄다. 살아야제"
아무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곤 자리에 깔린 신문지를 챙겨 역으로 들어갔다. 여전히 사람들은 2배속으로 걷고 있었다.
출발하는 KTX에서 숨을 들이켰다. 몸에 밴 바다 냄새를 맡으려고. 아쉽지만, 앞자리에 앉은 아이의 과자 냄새만 날뿐이었다.
바다를 담지 못한 채 열차는 출발했다. 이걸로 되었다.
바다를 보러 왔을 뿐이다.
'끄적끄적 >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はじめて来た東京は (0) | 2025.03.08 |
---|---|
인생의 효자손 (0) | 2025.03.08 |
재미있는 수학은 초코우유 같은거야 (0) | 2025.03.08 |
인신사고 (0) | 2025.03.08 |
스미다강 불꽃놀이 (0) | 2025.03.08 |
Ascult Iarna în Kamakura (0) | 2025.03.08 |
언젠가 이 숲의 푸르름을 기억하는 누군가에게 (0) | 2025.03.08 |
기억의 조각 (0) | 2025.03.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