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자기 전에 몸이 근질근질 가려울 때가 있는데 죽기 전에도 똑같아. 대신 몸이 아니라 마음이 가려운거지 그때는."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남겼던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마지막에 남겼던 말은 아니겠지만, 기억에 강렬하게 남아서 나에게 있어서는 할아버지의 마지막 말과 다를 바 없다.
"그럼 할아버지는 지금 마음이 가려우세요?"
궁금한 마음에 그렇게 물어봤지만, 할아버지는 먼 곳만 바라볼 뿐 말씀이 없으셨다.
아마도 한 두군데 쯤은 가려운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다만 이제는 어찌할 수 없기에, 말이 나오지 못했던 것이라 생각한다.
장례식을 마치고 검은 넥타이를 제각각으로 매고온 친구들을 보았을 때 분위기에 맞지 않게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내 표정을 본 친구들이 의아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누구하나도 그걸 입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고마운 일이다.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대접하면서 슬쩍 할아버지의 마지막 말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있잖아, 만약에 지금 죽는다면 뭐 때문에 가려울 거 같냐." 현수가 민희의 잔을 채우면서 말했다.
"나는 딱 하나 있다. 수능 때 나 시험장 못 들어가서 결국 재수했잖아. 진짜 그때는 눈물나서 죽는 줄 알았다."
"그때 죽는다고 발버둥치는거 얼마나 말렸는지 모른다. 그거 기억은 나냐? 너는 진짜 우리한테 고마워해야해."
"아이고 고맙습니다 고마워요."
"이게 생명의 은인한테 떽!" 현수가 숫가락으로 민희의 머리를 가볍게 때렸다.
"근데 지금이 아니라 나중에 우리가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서도 그 기억 때문에 가려울까?" 수진이 둘이 딱 붙은 편육 조각을 젓가락으로 힘겹게 떨어내며 물었다.
"글쎄다. 세월에 희석되더라도 가려움은 남지 않을까?"
"살다보니 후회만 끝도없이 쌓이는 거 같다... 가려움은 있고 효자손은 없다냐?"
"세월이 효자손이지 뭐."
"야 나한테 세월은 효자손은 커녕 가려운데 더 건들이기만 하는 거 같다. 아주 불효자야 불효자."
"으이구 언제까지 보부상마냥 옛날 기억 바리바리 들고 다닐래. 기억도 분리수거하는거야. 적당히 쓸만한 거만 남기고 다 버려."
현수가 편육 조각을 하나하나 떼어내며 말했다.
그 말을 듣고는 기억의 라벨을 생각했다.
2년 전에 들었던 프로그래밍 교양 수업에서 교수님께서 무언가 만들 때는 반드시 이름을 붙여야한다고 했다.
이거는 btn_click 이거는 btn_cancle...
기억에도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이거는 행복한 기억, 이거는 슬픈 기억... 이거는 버릴 기억, 이거는 재활용할 기억...
어쩌면 프로그래밍 때보다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
오늘 기억에는 어떤 이름을 붙여야 하나... 하나 확실한 건 일반 쓰레기는 아니라는 점이다. 조용히 재활용 스티커를 기억에 붙였다.
까만 옷을 입은 친구들이 장례식장 앞에서 뿔뿔이 흩어졌다. 몇몇은 가던 걸음을 멈추고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그때마다 손을 내저으며 어서 가라고 외쳤다.
언젠가 죽기 직전에 떠오를 기억이 왠지 이때일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신은 없지만, 다시 떠오른다면 그걸로도 간지러운 마음이 덜할 것 같다.
가끔, 마음이 간지러울 때마다 오늘 기억을 꺼내 긁어야겠다. 인생의 효자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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