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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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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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곤 우주문어 양식사업을 통해 은하를 장악한 밀양 박씨 688대손이 샛별처럼 등장한 경주 김씨 1,237대손에게 패권을 빼앗겨 모든 사람이 김씨로 성을 바꾸어야만 하는 대우주적 SF스토리를 기대했다면 미안하다.

 

지금부터 시작할 이야기는 그저 비극적이고 더럽고 처참한 현장을 목도한 한 개인의 처절한 스토리이다. 지금 혹시 식사 중인가? 그렇다면 조용히 뒤로 가기 버튼을 누르는 걸 추천한다. 용감한 자만이 스크롤을 내리도록.

 

시작은 아무 생각 없이 열었던 주방 위 보관함에서였다. 호랑이가 사라지면 여우가 숲속 왕이라 했던가. 잔고에서 만의 자리가 사라지자 천의 자리가 존재감을 과시하며 식비를 인질로 횡포를 부리던 어느날, 남아도는 햇반을 고심하던 찰나 1+1 행사를 하던 김을 발견했고, 냅다 구매했던 것이 불행의 시작이었다. 그뒤 몇 번 먹고 말았던 김은 결국 보관함으로 직행했고 나의 김은 한동안 기억 속에 잊혀진 채 외로운 나날을 보낼 뿐이었다.

 

자취생에게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날은 버려야할 음식을 찾아 헤매는 여정이라 할 수 있다. 이 날을 놓치면 또 다시 음식물 쓰레기 게이지가 차오를 때까지 무수한 나날을 기다려야만 한다. 냉장고 오케이 냉동실 오케이... 보통은 여기서 끝나지만 판도라의 상자와 같던 주방찬장을 열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김김김김으로 가득한 찬장은 마치 한국의 성씨 중 김이 차지하는 비율마냥 가득 했고, 30봉지가 넘는 김들은 그때까지만해도 싱크대에 있는 것으로는 채우기 힘든 음식물 쓰레기 봉투 2L를 채워줄 소중한 보물처럼 보였다.

 

조개를 까고 관자를 꺼내듯, 김봉투를 까고 김을 분리하는 작업을 묵묵히 계속했고 결국 산더미 같은 김이 싱크대를 가득 채웠다. 모든 빛을 흡수하는 검은색의 향연에 정신이 아득해질 것 같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봉투에 넣으려는 찰나, 이 모든 것이 과연 2리터 봉투에 들어갈까하는 의문이 들고야 만 것이다. 천연문과인 나는 김이라는 녀석의 생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살면서 가장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고야 만다.

 

"그냥 물로 대충 휘적휘적하면 압축된 덩어리가 되어 부피가 줄어들지 않을까?"

 

그렇게 앞일은 모른채 신나게 김에 물을 부었던 나는, 점차 김이 흐드러져 싱크대 구멍을 꾸역꾸역 막는 것을 목도하고 만다. 하지만 녀석은 뭉치면 강하지만 흩어지면 약하다. 평범한 음식물 쓰레기처럼 뭉쳐서 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녀석들은 강하게 쥐는 순간 하나하나 흩어져 나를 농락하는 것이다.

 

흐물흐물해진 김 조각이 고무장갑을 뒤덮었고, 싱크대 수도꼭지에서 물을 멈추어도, 배수구에 김에 막혀 물은 빠지지 않았고, 이를 빼기 위해 김을 꺼내고자 웅켜쥐면 금붕어 건지기에서 쏙쏙 금붕어가 빠져가듯 요리조리 나를 피해가는 것이다.

파이어볼이 맞지 않는 보스를 상대하는 마리오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간헐적 다이어트라는 식사를 간헐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다이어트를 간헐적으로 해온 나에게 외면을 받아온 김이 힘을 합친 복수에 나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그렇게 청소를 마친 후에도 한동안 우리집에서는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빠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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