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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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빵만한 만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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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고 레인보우 브릿지를 건너면 소원이 이루어진대"

 

소영의 그 말에 의심보다도 무슨 소원이 좋을까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으래? 그럼 우리도 눈 감고 건너볼까?"

 

"이 바보야 그냥 한 말이야. 정말 눈을 감고 건널 수 있을거라 생각한거야?"

 

"음... 레인보우브릿지를 지나가는 모노레일에서 눈을 감는 것도 괜찮으려나?"

 

"그러면 왠지 신이 화낼 거 같지 않아? 인생을 그렇게 대충 퉁치면 안돼!! 라면서"

 

"그래도 만약 소원을 빈다면 어떤 소원을 빌거야?"

 

"나는 대빵만한 만두"

 

"그게 뭐야 좀 더 소원다운 소원을 빌어야지"

 

"어차피, 너무 큰 소원을 빌면 신한테 버거울지도 몰라. 모노레일에서 눈을 감는다면 이 정도가 적당해"

 

"그럼 나는 대빵만한 타코야끼*로"

 

"뜨거워서 못 먹을걸"

 

"그건 만두도 마찬가지야"

 

우리는 레인보우 브릿지에서 열심히 눈을 감고 있었다. 도쿄 앞바다에 커다란 만두와 타코야끼가 나타나길 빌면서...

 

*정확한 표기는 "다코야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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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는 오다이바를 걸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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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는 오다이바를 걸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당산역으로 향하던 지영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그 한마디였다.

 

“네? 오다이바요?”

 

보통 이런 식으로 되물어온다면 “일본 도쿄에 있는 오다이바요”라고 설명할법도 하지만, 그는 당연하다는듯이 “네, 오다이바요.”라며 담담히 답할 뿐이었다.

 

“아뇨, 오다이바는 가본 적이 없는데요 왜요? 이상한거면 사절할게요.”

 

지영의 의심가득한 눈초리에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대답했다.

 

“노을 지는 오다이바에 소중한 걸 놓고 왔거든요. 오다이바의 노을을 기억하는 사람을 찾고 있어요.”

 

대꾸할 필요성을 못느낀 지영은 고개만 끄덕이곤 서둘러 당산역으로 향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기 전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지영이 뒤돌아보았을 때, 그는 여전히 사람들을 붙잡곤, 오다이바의 노을을 찾고 있었다.

 

“별의별 이상한 사람이 있네...”라고 생각하며 서둘러 플랫폼으로 향했다. 이번 열차를 놓치면 문산행 경의중앙선까지 놓칠 수 있다.

 

아슬아슬하게 2호선 열차에 몸을 실은 지영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마터면 지하철을 놓칠 뻔했다. 궁금해서 한 번만 더 물어봤더라면, 확실하게 다음 열차행이었다.

 

그렇게 당산을 떠난 열차가 한강을 지날 때, 지영은 차창너머로 수줍은 하늘을 발견했다. 하늘에서 내리는 붉은 빛이 한강을 전염시키고 있었다. 오늘따라 지영에게는 묘한 붉음이었다.

 

그가 찾고 있었던 건 무엇이었을까? 지영은 그가 잃어버렸을 오다이바에서의 추억을 상상했다.

 

연인과 같이 걷던 오다이바 해변... 넘처버린 파도에 젖어버린 양말...

 

어느 것도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을 만한 추억은 아닌지라 지영의 궁금증은 깊어만 갔다.

 

어쩌면 그가 잃어버린 건 노을 그 자체였을까.

 

...내일은 당산역에 가볼까?

 

금요일 오후, 오다이바보다 조금 느리게 한강에서 태양이 붉은 빛을 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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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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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하지 않아? 결국 작가가 그린 그림은 작가의 손이 아니라 여기 미술관에 오게 되는거... 그리고 그걸 영광으로 생각해 다들..."

 

"그러게... 어쩌면 미술관은 주인 곁을 떠난 작품들이 모이는 공동묘지 같은 곳이 아닐까? 그래서 미술관인거지, 미술 '관'."

 

종수는 조용히 작품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내가 작품이라면 미술관에 있고 싶을까? 언젠가 동물원처럼 미술관도 작품을 생각해서 풀어줘야한다는 발칙한 생각마저 들었다.

 

미술관을 떠난 작품은 어디로 가고 싶을까? 종수는 미술관에 갇힌 작품들이 꿈꾸는 곳을 서로 이야기하는 상상을 했다. 저 그림은 정물화니까 집 밖을 벗어나 넓은 세계를 만나고 싶을지도 몰라. 무제인 저 그림은 이름을 가지고 싶겠지. 작가 미상인 저 친구는 나는 내 주인을 안다며 입이 근질거릴지도...

 

그런 생각을 하니 풋하고 웃음이 절로 났다.

 

민주는 그저 그런 종수 모습을 의아해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릴 뿐이었다.

 

그렇게 조용했던 미술관이 작품들의 목소리로 북적거리는 공간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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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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뽁뽁이는 손으로 힘껏 밀면 터지지않지만, 손바닥에 힘을 주고 특정부분부터 밀기 시작하면 하나씩 터지기 시작한다. 도미노처럼, 무너지는 인생에도 순서가 있다.

진영이가 태어난 것은 IMF가 한창이던 1997년 12월 추운 겨울날이었다. 어려운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진영이의 부모님이 아슬아슬한 희망퇴직의 기로에 가까스로 살아남은 덕분에, 진영이는 97년에 태어났다는 말에 어르신들이 던지는 안타까움이 잘 공감되지 않았다.

하지만 삶에 있어 운의 총량이 정해져있다는 말처럼 진영이에게 불운이 물밀듯이 몰려온 것은 어쩌면 부모님의 운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중학교 때까지 멀쩡하던 진영의 가족에 금이 가기 시작한 건 2014년의 어느날이었다. 막 학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진영이는 갑자기 걸려온 전화에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수화기를 들었다. 이제와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의 벨소리는 어딘가 불길하게 우는 듯이 들렸던 것만 같다.
급작스러운 사고 연락에 진영이는 정신이 멍해졌다. 무슨 전화냐며 다그치는 여동생의 목소리는 물에 들어간 것마냥 멍하게 울려퍼젔고, 진영은 그만 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이후 어떻게 병원에 도착했는지 진영은 기억할 수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을 잔인하게 지려밟고 진영이와 여동생을 맞이한 건, 한때 살아있었다는 느낌조차 찾을 수 없는 차디찬 주검뿐이었다.

당시 한국을 뒤집어 놓았던 세월호 사건을 진영이는 기억하지 못한다. 아니 기억할 수 없었다. 그렇게 진영이와 여동생은 준비되지 않은 채 세상에 놓여졌다. 2014년의 겨울은 둘에게만 유독 차가웠다. 아파트 월세와 관리비는 속절없이 밀려갔고, 둘은 하루빨리 어른이 되어야만 했다. 어른이 무엇인지 고민할 틈조차 주어지지 않고 그저 어른이 되어버렸다. 바쁜 현대인이 식사를 가볍게 때우기 위해 패스트푸드를 이용하지만, 그 누구도 패스트푸드를 제대로된 식사로 여기지는 않는다. 진영과 여동생은 패스트어덜트였다. 어린 나이에 돈을 벌고, 월세를 충당함으로써 누구보다 빠르게 어른이 되었지만, 그 누구도 둘을 어른으로 봐주지 않았다. 그저 나이가 어렸기 때문이다. 진영이가 보호자가 없는 서러움을 느낀 것은 아이들로 가득한 학교에서였다.

여동생의 담임선생님은 친구들 앞에서 진영이네 환경을 설명했고, 따뜻하게 대해주라는 훈계를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친구들의 시선이 진영의 여동생은 너무나도 싫었다. 설령 그것이 따뜻하게 바라보거나 안타깝게 여기는 시선이었다 해도 말이다. 부모가 없다는 사실은 그 둘을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전교1등을 해도 꼴지를 해도 언제나 수식어가 붙었다. 그런 가정환경에도, 그런 가정환경이니까... 진영이는 떼어낼 수 없는 연민과 손가락질에서 영원히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죽음의 문턱에서 그를 다시 불러세운 건 여동생이었다. 아니 여동생이라기보다는 여동생의 존재가 타당할 것이다. 진영이는 아무리 괴로워도 똑같은 굴레를 여동생에게 안겨주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살았다. 그런데 진영이는 미처 생각지 못한 사실이 있다. 여동생에게는 동생이 없다는 사실 말이다.

불행의 사신은 언제나 얼굴을 바꾸며 찾아온다. 허망하게도 진영이를 살게한 여동생이 먼저 세상을 등졌다. 알바를 끝마치고 돌아오는 진영의 그림자는 그날따라 유독 짙었다. 불행을 알린 것은 냄새였다. 진한 가스 냄새를 맡은 진영은 직감으로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알아차렸다.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손에 쥔 채 집 비밀번호를 눌렀다. 손가락에 맻힌 땀 때문인지 몇번이고 틀린 끝에 문이 열렸고, 불안은 끔찍한 확신으로 바뀌었다. 어떤 번호를 눌러야할지 진영은 현관문이 열리기 전부터 싫어도 알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 죽는데도 의지가 필요함을 진영은 알게 되었다. 살아갈 희망이던 여동생을 잃었지만 진영은 죽을 수 없었다. 죽을 힘조차 없었다.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실 때 온 몸에서 피가 빠져나갔듯 진영의 몸에서 희망이 빠져나갔다. 여동생을 죽인 건 삶이었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여동생은 숨도 쉬지 못한 채 죽었다. 사인은 질식사였다. 어쩌면 여동생을 죽인 건 삶이 아니라 이미 돌아가신 부모님이라는 건방진 생각마저 들었다.

오랫동안 진영이는 하고 싶은 것이 없었다. 진영이가 꿈이 없다는 말에 어른들은 다른 아이가 꿈이 없다고 할 때보다 더 안타까워했다. 다른 아이가 꿈이 없는 건 아직 꿈을 찾지 못한 것이었지만, 진영이가 꿈이 없다는 건 그럴 수밖에 없다는 수긍뿐이었다.
진영에게 딱 한가지 꿈이 있다고 한다면 그건 2014년 그 날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모두가 미래를 바라보며 꿈을 꿀 때 진영만은 과거를 바라보며 꿈을 꾸었다. 그것도 희망찬 꿈이 아닌 지독한 악몽을 말이다. 차라리 IMF에 부모님이 퇴직을 당하셨다면 여동생이 아직 살아있었을까? 무수한 인과관계에 진영은 환멸마저 느꼈다.

진영에게는 연쇄적으로 무너지는 도미노를 막을 힘도 일으켜 세울 힘도 없었다. 언젠가 도미노에 나마저 깔릴 수 있겠다는 공포도 없이 그저 무력했다. 오히려 도미노 덕분에 가만히 있어도 죽을 수 있다면 행복하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문뜩 중학교 때 배운 문학 작품 한 편이 떠올랐다. 백화점 옥상 위에서 날개를 울부짖으며 날자고 외치는 주인공을 국어 선생님께선 희망찬 목소리로 해석하기도 한다고 알려주었다. 진영은 갑자기 날개가 솓은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이 든 순간 주저없이 옥상을 향했다. 날개가 있으니 날 수 있을거야. 지금 이 날개는 어쩌면 희망일지도 모른다. 살아갈 희망일 수도 아니면 죽고자하는 의지일 수도... 어느쪽인지는 날아보면 알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느쪽이어도 좋았다. 그리고 진영은 날았다. 날개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내려쬐는 태양빛에 이카로스의 날개가 녹았고 진영은 서서히 추락했다. 어쩌면 날개는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진영의 마음 속에 날개는 분명히 있었다. 필시 태양빛이 강해서 녹았을 것이라 떨어지는 순간 진영은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얼마 지나지 않아 강제로 사라졌다. 웅성이는 소리와 함께 진영은 눈을 감았다.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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