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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지진을 준비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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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카이 지진에 대한 공포가 전국을 지배하는 요즘이다. 평소에 지진에 어떻게 대비하면 좋을지 생각해보자.

 

지진 위험이 있다면 욕조에 물을 받자

지진이 일어나면 라이프라인(수도, 가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생활에 있어서 식수가 아니더라도 물은 중요한 자원이니 미리 채워둔다.

 

두꺼운 슬리퍼를 근처에 두자

지진이 일어나면 바닥은 깨진 조각과 파편으로 위험하다. 두꺼운 슬리퍼를 항상 곁에 두어 안전하게 걸을 수 있도록 하자.

 

헬멧을 구비하자

지진이 일어나면 위에서 떨어지는 물건을 조심해야 한다. 헬멧을 구비해서 머리를 보호하고, 평소에는 현관 근처에 둔다. 어둠을 대비해서 헬멧용 랜턴을 함께 구비하면 좋다. 헬멧이 없으면 방석이나 배개를 활용하자.

 

집의 건축년도와 해발고도를 조사하자

바닷가 근처라면 쓰나미를 주의해야한다. 집의 해발고도를 알아두면 쓰나미 주의보에서 알려주는 높이로 예측이 가능하다. 쓰나미는 지형에 따라 높이가 달라지니, 항상 최악을 염두하고 제일 높은 곳으로 도망가야 한다.

 

집 근처 피난시설과 고지대를 파악하자

쓰나미 주의보가 발령나면, 그 즉시 도망가야한다. 지금 쓰나미가 온다고 생각하고 도망가기 위해서는 사전에 고지대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평지라면 철근 콘크리트 건물의 최대한 높은 층으로 대비한다. 일본은 3층 이상이면 철근 콘크리트니 높으면서 제일 튼튼한 건물로 빠르게 도망가자. 바닷가와 멀고 가깝고와 상관없이 높은 곳이 최고다. 2~4층은 위험하다.

 

슈퍼에서는 조금만 사더라도 쇼핑바구니를 들자

진열대에 물건이 많은 슈퍼에서 지진이 일어나면 순식간에 상품들이 나를 위협하게 된다. 바구니로 신속하게 머리를 보호하자. 살게 별로 없더라도 입구에서 바구니를 손에 들자.

 

전철에서는 반드시 손잡이를 잡자

달리는 전철이나 버스에서 손잡이를 잡지 않는 사람이 많다. 지진이 일어나게 되면 순식간에 넘어져서 다치게 된다. 평소에 손잡이를 쥐는 습관을 가지자. 에스컬레이터도 마찬가지다. 안전벨트는 당연하고.

 

가방에는 비상식량을 넣고 다니자

외출을 할 때 편의점에서 캬라멜이나 초콜릿과 같이 고열량이면서도 무게가 나가지 않는 식량을 가방에 넣자. 지진이 일어나면 전철이 멈출 때가 많아 걸어서 이동해야할 일이 생긴다. 오래 걸으면 칼로리 소모가 심하니 반드시 식량을 챙기자.

 

가방에 비닐과 휴지를 챙기자

위급상황에 다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비닐과 휴지, 손수건, 물티슈 등을 챙기자. 다칠 때를 대비해서 반창고도 항상 들고 다니자.

 

깨지는 물건은 되도록 사지 말자

시계, 액자 등 깨지는 소재의 물건을 가급적 사지 않는다. 도자기 머그컵보다 스테인리스 컵을 산다. 특히 잠자리 근처에는 깨지는 물건을 절대로 두지 않는다. (캔들처럼 화재로 번지기 쉬운 물건도 피하자.) 항상 이불을 덮고 자서 물건이 떨어지더라도 몸에 위험이 생기지 않도록 한다.

 

항상, 특히나 잘 때는 커튼을 치자

창문은 깨지게 된다면 유리 조각이 바닥에 떨어져서 위험하다. 커튼을 쳐서 유리 조각이 바닥에 퍼지지 않도록 한다. 햇빛이 들어오는 커튼과 암막커튼 이렇게 이중으로 커튼을 달아서 언제나 커튼이 창문을 막을 수 있도록 하자.

 

호루라기를 구비하자

재난 시 다치게 되거나, 오래 굶게 되면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수 있다. 체력을 보존하기 위해서라도 쉽게 소리를 낼 수 있는 호루라기를 구비해서 쉽게 구조를 요청하고 위치를 알릴 수 있도록 하자. 스마트폰이 있다면 벨소리 설정이나 음악에서 소리를 낼 수 있도록 방법을 알아두자.

 

외출 시 위치를 파악하자

외출 시에는 자신이 위치한 지역명 또는 역명을 인지하여 위급시에 자신의 위치를 알릴 수 있도록 하자. 건물명과 건물 특징을 기억하고 있으면 좋다. 실내에서는 비상구 위치를 의식하자.

 

재난에 최적화된 물건이 있음을 인지하자

재난 시에는 가볍고 양손이 자유로운 물건이 좋다. 손전등보다는 헤드랜턴이, 손가방이나 에코백보다는 배낭이, 우산보다는 우비가 좋다. 재난가방을 꾸릴 때 참고하자. 물론 물건이 너무 많아져서 이동이 곤란해지는 것도 위험하니 밸런스를 생각하자.

 

화장실은 갈 수 있을 때 가자

재난이 일어나면 제일 곤란한 것이 화장실이다. 평소에 화장실이 보이면 갔다오는 습관을 두자.

 

현금을 들고 다니자

대규모 재난 상황에서는 시스템이 마비되어 신용카드나 간편결제를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반드시 어느 정도 현금을 들고 다니도록 하자.

 

청소하는 습관을 가지자

정리가 안된 방에서 지진이 일어나면 각 물건들이 어지럽게 흩어져서 피난이 어렵게 된다. 주방에서 쓴 칼과 가위는 그 즉시 씻어서 수납하자.

 

신분증 또는 여권은 항상 들고 다니자

집앞 편의점을 갈 때에도 반드시 들고 가자. 지갑과 핸드폰도 마찬가지다. 잠깐 밖에 나가더라도 언제 지진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생각하자. 또한, 중요한 서류 등은 스캔하여 핸드폰이나 클라우드 서비스에 보관하자.

 

밤을 새지 말자

피곤할 때 지진이 오게 되면 빠르게 행동하기 어렵다. 평소에 생활을 패턴화하며, 최대한 피곤이 쌓이지 않도록 생활하자.

 

비상시 사용하는 물건의 사용법을 익히자

공중전화, 스크린도어 개폐 장치, 소화기와 소화전, AED 사용법을 익히자.

 

현관 근처에 쇠지레를 놔두자

지진이 나면 현관문이 열리지 않을 수 있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 긴급 시 현관을 강제 개방할 수 있는 쇠지레를 사서 놔두자.

 

드라이 샴푸를 사자

재난시에는 물이 끊기기 때문에 머리 감기가 어려워진다.

 

중요한 물건이나 전등 스위치에 야광 스티커를 부착하자

지진은 어두운 밤에 일어날 수 있으며, 지진이 일어나서 정전이 될 수도 있다.

어두운 밤에 재빠르게 행동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그렇기에 어둠 속에도 행동할 수 있게 유도하는 야광 스티커를 주변에 부착하는 것을 추천한다.

움직임 감지 전등을 설치하는 것도 매우 좋다.

 

 

일본에 살다보면 싫어도 의식할 수밖에 없는게 지진이다. 내가 다치지 않더라도 전철이 멈추거나 기본적인 인프라에 문제가 생기는 등, 얼마든지 곤란한 점이 생길 수 있다. 지진에서 몸을 지키고 빠르게 대피할 수 있도록 평소에 의식하며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진은 집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집에서 아무리 준비를 해도, 외출할 때 지진이 일어나면 소용이 없다. 언제든지 지진을 의식하고 위험을 감지하여 피해야 한다.

 

예방만이 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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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가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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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도시 비엔날레의 주제는 땅 즉, 그라운드다. 하지만 나는 이 "땅"이라는 단어가 물리적으로 흙 등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공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건축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땅이지만, 때로 건물은 물 위에 어쩌면 하늘에 떠서 위치하기도 한다. 따라서 기반으로서의 그라운드가 이번의 주제라 생각한다.

 

건축물을 짓기 앞서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하는 것은 어디에 지을 것인가이다. 어디에 짓는지에 따라 고려해야할 요소는 달라진다. 산이라면 경사에 맞추어 지을 것인지 산을 깎고 지을 것인지 새로운 선택사항이 등장한다. 여기에 더해지는 것은 방향이다. 똑같은 지형이라 하더라도 지상에 지을 것인지 지하에 지을 것인지 달라질 것이다. 부지가 선정되었다면 고려할 것은 무엇을 지을 것인지이다. 학교, 미술관, 경기장 등 건물의 목적에 따라 바람직한 공간의 형태가 달라진다. 학교의 경우 각 학급 공간과 복도가 필요할 것이고, 경기장이라면 관중석과 경기가 이루어지는 메인 공간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이렇게 두 가지 요소를 조합하여 이제 생각하는 것이 바로 어떻게 지을 것인가이다. 여기에 구조와 형태를 결정하게 되는데, 여기에 건축의 독특한 특징이 발현된다. 일반 미술품이라면 심미성을 제일로 생각하지만, 건축은 그럴 수 없다. 우선적으로 구조적으로 기능하는지, 공학적으로 설계에 문제가 없는지를 고려해야 한다. 아무리 멋진 건물이더라도 하중을 버틸 구조가 없다거나 공간이 복잡하여 실제로 사용하기 무리가 있다면 미술로써는 만점이겠지만 건축물로써는 빵점이라 할 수 있다.

 

오랜 기간 이런 흐름으로 건축과 공간 설계가 이루어졌지만 최근 들어 새로운 요소가 등장하였다. 서울은 현대에 들어 급속한 개발과 발전으로 인하여 도시로 몰려드는 인구를 수용해야 했고 성냥갑과 같은 아파트를 만들어 이를 유지해왔다. 시대가 흐르면서 아파트도 세련된 디자인으로 탈바꿈하고 녹지 공간도 늘어났지만 아파트가 주민들을 위한 폐쇄적인 공간임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보안을 위해 오토록을 도입하고 로비를 두거나 담장으로 주변과 공간을 분리해왔다.

 

이러한 상황에 반기를 들고 새롭게 등장한 건축의 물결은 단절이 아닌 개방이다. 더 이상 도시가 누군가의 소유물로 쪼개지는 것이 아닌, 하나의 거대한 흐름으로 호흡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저층을 개방된 공간으로 설치하여 도시의 연속성을 살린다. 그리고 민간 건물의 정원 및 옥상을 시민들에게 개방하여 도시의 하늘과 자연을 모두의 것으로 만든다. 또한 세대의 프라이버시를 지킴과 동시에 공용공간을 확립하여 도시민 간에 소통을 마련한다.

 

또 하나의 요소는 자연이다. 단순히 녹지를 마련하는 것을 넘어 자연이 가장 자연스럽게 존재하도록, 그리고 그 위에 그동안 인간으로 인해 침범 받은 생태가 되살아나도록 하는 노력이 새로이 등장했다.

 

새로운 도시 개발의 기치 아래 세계의 도시가 바뀌고 있다. 서울도 앞으로 그동안의 단절과 삭막함을 벗고 새로운 도시로 탈바꿈할 수 있을까? 건축을 한다는 건 주변을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주변은 우리를 만든다. 우리는 공간을 벗어날 수 없다. 그렇기에 더 나은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의 노력이 서울을 더 나은 공간으로 바꾸어가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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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못 마셔요의 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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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마셔요”와 “술 마셔요”

 

안과 못의 차이는 가능과 불가능의 차이다.

하지만, 여러 상황에서 가능이라는 부분이 갈린다.

 

사람은 벽을 통과하는 것은 가능하다.

수조 분의 1의 확률이어서 우리는 편의상 불가능이라 생각하고 이야기한다.

 

그렇기에 사실 술을 못 마신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술을 마신다기보다는

내가 술을 마시면 아주 큰일이 난다는 의미로 술을 마신다에 가깝다.

 

여기에 술의 경우 심리적인 부분도 더해진다.

 

술을 안 마신다고하면 상대방의 호의나 제안을 매몰차게 거절하는 인상이 든다.

그렇기에 이유가 있는 것으로 꾸며서 못 마신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이 세상에는 술을 마시지 않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물을 마시지 않는 것도 아닌데…

 

그래서 이유를 만들어내야한다.

그들에게 아무 이유 없이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술을 못마시면 사회생활 못한다고 말하는 당신,

나를 기분나쁘게 하는 걸 보니 당신은 사회생활 못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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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이 가득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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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삶에 정답이 있을까.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정답이 너무나 넘쳐난다.

 

교육부터가 그렇다.

맞고 틀리고가 정확한 객관식 문제 더미에서 우리는 살아왔다.

그렇게 배운 우리는 다시 삶에도 정오표를 가져온다.

 

서울대 국사학과가 고려대 한국사학과보다 정답이고,

삼성이 동원보다 정답인 사회…

 

우수한 인재라는 명목하에 얼마나 많은 계단을 만들어 왔던가.

 

취업을 준비하면서 뼈저리게 느낀 점이 있다.

상위권 대학일수록 각종 지원 프로그램이 풍부해서,

보다 다양한 경험을 쌓고 취업을 하기 수월하다.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이야기다)

 

결국 고등학교 성적표가 인생의 성적표로 이어지는 것이다.

기회의 평등은 첫단추를 잘못끼운 순간 우리를 돌아보지 않는다.

 

그렇게 취업이 정답인 사회에

대기업이 정답인 사회에

교육에도 정답이 생긴다.

 

정답을 배우고 컸지만,

갈수록 정답의 폭은 줄어들고 있다.

경기는 어려워지고 고용은 줄고 있다.

질 높은 직장은 찾기가 어렵고,

집은 평생 모아도 사기 어려울 정도이다.

 

인생의 정답으로 가는 다리가 끊긴 이 상황에서

모두가 허망한 채 다리 너머만 바라보고 있다.

 

이제라도 바뀌어야 한다.

 

정답이 존재하면 오답도 존재하고 만다.

불행한 사람이 양산된다.

오답 딱지를 받은 사람이 넘치는 사회는 건강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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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왜 물고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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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물고기를 물살이라고 부르자는 이야기가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언어의 사회성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억지로 언어를 순화하는 것에는 거부감을 느끼지만, 담론 그 자체는 굉장히 흥미로웠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다른 동물과 다르게 물고기 자체는 살아있는 것도 물”고기”라고 부르게 되었을까? 돼지를 돼지고기로 부르지는 않지 않은가. 이에 대해 나만의 가설을 세워보았다.

 

첫째, 고기의 모습이 실제와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돼지고기의 경우 고기의 형태는 가공되어, 그 형태에서 돼지를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반면 물고기는 통째로 굽거나 조리하는 경우가 많아서, 다른 고기에 비해 살아있을 때의 모습 그대로 조리되어 음식이 된다. 이러한 모습에서 고기와 생물의 언어를 분리할 필요성을 못느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둘째, 죽은 모습으로밖에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동물의 경우 육지에서 발견되기 때문에 살아있는 모습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하지만 물고기의 경우 물 속에 살기 때문에 살아있는 모습을 관찰하기 쉽지 않다. 따라서 대부분의 사람은 물고기를 죽은 모습에서 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신기한 것은 다른 외국어에서도 비슷하다는 점이다.

영어의 fish와 일본어의 魚 모두 살아있는 생선과 동시에 요리를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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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것에 의미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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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는 만들어진 것이다.

인간은 태어난 이상 그 의미를 찾고자 한다.

그러나 과학적으로 그 의미가 존재하는가?

 

의미를 내려놓자.

삶은 목적이 없다.

그냥 그 과정에 있다.

 

삶은 내가 어떻게 살든 삶이다.

 

내가 범죄를 저질러서 감옥에 가든,

로또에 당첨되어 돈을 벌든, 삶이라는 것에는 달라짐이 없다.

삶의 양상이 달라질 뿐이다.

 

삶의 의미를 찾는다고 하지만,

사실은 삶의 의미를 붙이는 거다.

 

삶은 그 자체로 삶이다. 거기에 무엇을 붙여도 삶이다.

그러니 삶의 의미를 찾지 못했다고 좌절하지 말라.

애초에 없는 것을 어떻게 찾느냐는 말이다.

찾았다고 생각해도 의심하고 유연성을 가져라.

 

삶의 의미를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의미를 이룰 수 없거나, 너무나도 힘든 과정이 있을 때 우리는 지치고 만다.

무기력함을 느끼고 삶에 무력감을 느낀다.

무언가를 찾아서 목표로 하는 삶은 과정을 그저 정거장으로 만든다.

삶의 과정은 오로지 목표를 위한 중간 과정에 불과하다고 여기고 만다.

근데 아이러니한 것은 그 과정이야 말로 삶인 것이다.

 

마지막에 삶이 완성된다면, 그 짧은 순간만이 삶이라면, 그동안 해온 것이 너무 비효율적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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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셔의 예술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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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옛날 사람들은 예술을 주술(마술)과 구분하지 않았다. 라스코 벽화에 그려진 사냥감의 그림들은 가상이 아닌 현실이었으며 가상과 현실은 구분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벽에 사냥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과 사냥하는 것과의 논리적 연관관계를 의심하지 않았다. 즉, 벽에 사냥하는 그림을 그리면 논리적 인과에 따라 자연스럽게 사냥감이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주술은 그렇게 주변에 있는 사물을 모두 영혼화시켰다. 오늘날 과학이 영혼까지 사물화시키는 것과 정반대로 말이다. 하지만 인류는 시간이 지나면서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를 깨닫게 된다. 과학이 시작된 것이다. 그 시작과 동시에 주술은 힘을 잃었다.

중세에 이르러 가상과 현실은 구분되기 시작한다. 이카루스의 날개에서 태양에 너무 가까이 다가간 다이달로스의 아들 이카로스는 태양의 열에 날개가 녹아 바다에 추락하고 만다. 마술의 시대가 종말을 고한 것이다. 이제 중세 미술은 두가지 흐름으로 나아간다. 바로 종교와 철학이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예술을 자신의 이데아론으로 바라보았다. 이데아 세계를 모방한 현실 세계를 또 다시 모방한 것이 바로 예술이므로 예술은 이데아 즉, 진리에서 두단계 멀어진 모방(mimesis)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장인은 침대를 만들기 전에 머릿속에 그 개념과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그 개념을 모방하여 침대를 만든다. 개념은 이데아고 침대는 질료를 통해 이데아를 모방한 현실세계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화가는 침대를 그림으로 나타낸다. 모방의 모방인 셈이다. 플라톤은 모방자가 모방을 통해 자신이 무엇을 지향하는지 나타낸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이데아를 지향하는 장인이 현실세계를 지향하는 화가보다 높은 위치에 있다고 보았다.

그에 더해 플라톤은 유용성의 관점으로 예술을 바라보았다. 유용한 것이 아름답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세에 이르러 가상과 현실이 분리되면서 가상은 더 이상 현실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이제 사람들은 아무리 동굴에 사냥감을 그리고 빌어도 사냥이 잘된다는 연관관계를 믿지 않는다. 플라톤 주의자들은 주장했다. 예술(가상)이 현실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러나 철학자들은 굴하지 않고 예술의 필요성을 찾아냈다. 바로 예술을 통해 진리를 전달할 수 있을거라 기대한 것이다.

한동안 지속된 진리의 표현방식이라는 미학의 진행은 근대 칸트의 형식미학에 의하여 깨진다. 예술은 내용이 아니라 그 형식에 있다는 것이다. 똑같은 주제를 가지고 그려도 내가 그린 그림과 램브란트가 그린 그림을 비교해보면 램브란트가 그린 그림이 미적으로 우수할 수 밖에 없다. 이는 미술이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달린 형식의 예술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그런데 사진의 발명으로 미술은 위기에 처한다. 사진이 미술을 향해 종말의 공포탄을 쏜 것이다. 아무리 현실을 그대로 묘사해도 사진이 그대로 옮겨놓은 현실의 복사를 이길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미술은 종말하지 않았다. 이제 미술은 현실 대상의 재현이기를 포기한다. 추상의 표현이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풍경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모더니즘 예술의 시작이다.

모더니즘 예술에는 다양한 분류가 있다. 모더니즘의 시작인 세잔과 피카소의 입체주의 르네 마그리트의 초현실주의와 예술의 패러다임을 바꾼 다다이스트 등...

그 중에서도 초현실주의에 속한다 할 수 있는 모리츠 코르넬리스 에셔(Morits Collelius Escher, 1898~1872, 이후 에셔)의 작품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왜 마그리트가 아닌 에셔인가.
에셔는 서양미술사에 있어 변칙적인 화가이다. 다른 초현실주의 화가들이 비이성적이고 감성적인 현실 초월을 그렸다면 에셔는 논리적이고 이성적이지만 현실적으로 재현 불가능한 작품을 남겼다. 마그리트의 <청강실, The Listening Room>(1958)을 보면 방이 있고 방 크기 만한 사과가 그려져있다. 한눈에 보자마자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는 장면임을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에셔의 작품인 <폭포, Waterfall>(1961)을 보면 얼핏보기엔 큰 문제 없이 논리적이고 현실적으로 보이지만 떨어진 폭포는 다시 흐르고 흘러 위로 올라가 다시 폭포가 되어 떨어진다. 찬찬히 보고 나서야 순환하는 폭포물과 이상하게 연결된 기둥을 통해 현실적으로 불가능함을 인지하게 된다. 이러한 변칙적인 작풍으로 인해 에셔의 작품은 누구나 모르는 사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오히려 미술관에서보다 과학관의 눈의 착시코너에서 그의 작품을 더 자주 발견하기도 한다. 획기적인 미술사적 패러다임 전환을 이루어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알지만 그와 동시에 누구도 모르는 화가 에셔, 그 점에서 에셔를 다루기로 결심했다.

에셔의 미술은 크게 5가지 분류로 나눌 수 있다. - 1. 평면균등분할(Tessellation) 2. 거울에 비춘 상 3. 가상과 현실의 혼재 4. 불가능한 형태 5. 3차원의 파괴
여기서 평면균등분할은 또 다시 4가지 분류로 나눌 수 있다. -  1. 이율배반 2. 변형(metamorphose) 3. 비유클리드 기하학 4. 칼레이도치클루스
그럼 각각의 특성을 그가 그린 작품을 통해 알아보도록 하자.

본래 풍경화를 그리던 에셔는 두차례의 스페인 여행을 기점으로 작풍을 바꾸기 시작한다. 바로 알함브라 궁전에 그려진 모자이크 문양에 영감을 받은 것이다. 이를 기반으로 에셔는 정통적 평면균등분할(이하 테셀레이션)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그 과정에서 기하학의 도움을 받게 되는데 이는 나중에 그의 비유클리드적 테셀레이션을 창조하기까지 이른다.

그는 병진이동, 회전, 미끄러짐 반사, 반사로 나타나는 이소메트리(isometry)를 활용하여 테셀레이션을 그렸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단순한 다각형이 아닌 파충류, 새, 인간등 유기체적 형상을 활용하여 테셀레이션을 구성하였다. <도마뱀 25번, Lizard No. 25>(1939)는 그가 그린 가장 기본적인 테셀레이션이다. 빈틈없이 오로지 도마뱀의 형상으로 공간을 채웠다. 에셔는 이 기본적인 형상에 여러 변형을 주었는데 그 유형으론 대표적으로 4가지가 있다.

첫번째로 이율배반이다. 그의 작품 <낮과 밤, Day and Night>(1938)을 보자. 낮과 밤은 서로 반대되는 개념이다. 낮과 밤은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 서로를 배척하는 것이다. 하지만 에셔의 그림 가운데를 보면 낮과 밤이 중첩되어 있다. 서로 배척하는 두가지가 공존하는 것을 철학에서 이율배반이라 한다.

여기에 두번째 특징인 변형이 이루어지는데 낮에서의 논은 밤으로 가면 새가 되며 반대 또한 마찬가지의 변형이 이루어진다. 이 변형을 극도로 나타낸 작품이 바로 <말씀, Verbum>(1942)이다. 가운데 빛을 기준으로 삼각형이 가장자리로 갈수록 생물의 모양으로 바뀐다. 하지만 변형은 가운데에서 가장자리로 가면서만 생기지 않는다. 가장자리끼리 좌우로 갈수록 배경과 자리를 바꿔가며 다른 생물로 변화한다. 그야말로 변화의 극치이다. 작품명이 말씀인 것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라는 『요한복음』.   첫구절에서 비롯된다. 천지창조의 모습을 테셀레이션으로 나타낸 것이다.

에셔의 테셀레이션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바로 비유클리드 기하학과 결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전에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탄생한 시대적 흐름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은 유클리드 원론의 제5공준에서 비롯되었다. "두 직선이 한 직선과 만날 때, 같은 쪽에 있는 내각의 합이 2직각(180도)보다 작으면 이 두 직선을 연장할 때 2직각보다 작은 내각을 이루는 쪽에서 반드시 만난다."인데 쉽게 설명하자면 한 직선A가 있고 직선 밖의 한 점B가 있을 때 B점을 지나는 직선 A에 평행한 직선은 하나뿐이다는 평행선 공준이다.

다른 유클리드 공리에 비해 다소 복잡해보이기 때문에 수학자들은 혹시 이 공준이 공리가 아닌 정리(공리로부터 도출된)가 아닌지 의문을 품었다. 하지만 오랜세월을 거쳐 증명불가능함이 입증되었고. 가우스는 신기하게도 이 공리를 부정한 상태에서도 수학적 체계(=공리계)에 큰문제가 없다는 무모순을 발견하게 된다. 그 후 가우스의 제자 리만이 3차원에서의 평행성 공리를 주장하게 된다. 이때까지 유클리드 기하학은 2차원 평면을 전제로한(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당연하게도 그렇게 생각했다) 이야기였다. 종이에 도형을 그렸을 때 그 도형의 성질에 대해만 이야기한 것이다.

그러나 리만은 달랐다. 도형이 아닌 종이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만약 종이가 구부러져 있다면 평행성 공리도 달라지는 것이 아닌가. 둥근 지구를 보면 경도를 나타내는 경선은 모두 평행한다. 하지만 극점에서 모두 만난다. 평행선임에도 불구하고 두 극점에서 서로 만나는 것이다. 유클리드 제5공준이 3차원 곡면에서는 적용되지 않는 것이다. 유클리드 제5공준이 적용되지 않는 기하학 이것이 바로 비유클리드 기하학이다.

여기서 비유클리드 기하학은 두가지로 분화한다. 곡면에도 두가지가 있다. 구와 같이 볼록한 곡면과 말안장과 같이 움푹한 곡면 말이다. 전자에서 삼각형의 내각은 180도가 넘는다. 반대로 후자에선 삼각형의 내각은 180도를 넘지 않는다. 전자가 구면기하학(로바체프스키기하학), 후자가 바로 쌍곡기하학이다.

다시 돌아와서 에셔는 쌍곡기하학을 테셀레이션에 활용하기로 시작했다. 쌍곡공간을 2차원에 투영한 푸앵카레 원반과 마찬가지 방법으로 테셀레이션을 그리기 시작한다. 움푹파인 면에 그린 정육각형은 그 형태가 2차원 유클리드 평면과 다를 수 밖에 없다. 그 비유클리드적 곡면을 유클리드적 평면으로 변환시켜 나타낸 것이다. 무한성을 나타내기 위해서 말이다. <서클 리미트 4 - 천사와 악마, Circle Limit IV-Devils and Angels>(1960)와 푸앵카레 원반을 비교해보면 둘 사이의 연관성을 한 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에셔는 여기에 만족하지 못했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활용하여 무한성을 표현하고자 하였지만 한계에 부딪힌 것이다. 원반의 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를 무한히 연속하려면 무한히 넓은 종이가 필요하지만 우리의 우주는 닫혀있다. 그때 에셔는 다면체를 떠올렸다. 만약 다면체에 테셀레이션을 표현하면 무한히 반복되면서도 그 자체로 닫혀있는 완벽한 무한성을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시작으로 나온 것이 바로 칼레이도치클루스다.

에셔의 두번째 특징은 거울에 비춘 상을 자주 활용했다는 것이다. 그 대표작으로 <유리구슬을 든 손, Hand with Reflecting Sphere>(1935)을 들 수 있다. 작품 속에는 유리구슬을 바라보는 에셔의 모습이 담겨있다. 이 작품은 오로지 회화로만 표현이 가능하다. 사진으로 표현하고자 한다면 필연적으로 카메라가 거울의 상에 등장하거나 시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에셔의 모습과 그 배경은 3차원이다. 하지만 상(한자)이 담긴 곳은 3차원 구의 2차원 평면이다. 하지만 이 3차원 구도 곧 2차원 그림으로 전락한다. 거울을 통해 3차원(에셔의 상) 2차원(3차원 구의 2차원 표면)으로 표현되고 에셔의 그림을 통해 다시 3차원(구)이 2차원 그림(<유리구슬을 든 손>)으로 그려지면서 구와 에셔의 상은 3차원이 아닌 2차원 그림으로 전락하고 만다.

거울은 3차원 상을 2차원 유클리드 평면에 나타낸다. 지극히 회화의 과정과 유사하다. 에셔가 거울에 비춘 상을 주로 활용한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 일 것이다. 거울의 상은 3차원 상을 2차원에 모방한 것이기 때문에 결국은 현실이 아닌 가상이다.
이제 거울 속 상이 현실과 이어지기 시작한다. 중세 이후로 분리된 가상과 현실이 다시 합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도마뱀, Reptiles>(1943)을 보면 테셀레이션 속 도마뱀이 현실로 나와 돌아다니고 다시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

<화랑, Print Gallery>(1956)에서는 관객이 보는 그림이 액자를 벗어나 관객이 있는 장소가 된다. 내가 보고 있는 가상이 곧 현실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엔 함정이 있다. 가상과 현실의 통합 또한 여전히 그림 속이기 대문에 가상 속 가상과 현실의 혼재인 것이다.

<그리는 손, Drawing Hands>(1948)을 보자. 두 손이 가상과 현실을 오가며 서로를 그린다. 하지만 실제로 이 두손을 그리는 것은 두 손 중 어느 한 손도 아닌 에셔의 실제 손이다.

헤겔은 유물론(실재론)과 관념론의 기나긴 싸움 즉, 객관과 주관의 싸움은 이율배반적으로 보이지만 절대정신으로 보면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다. 에셔의 <그리는 손>과 비교해보자면 두 손은 객관과 주관이다. 서로가 서로를 그리는 이율배반적인 상황은 2차원을 벗어나 3차원의 에셔가 두 손을 그리는 실제 손을 본다면 해결된다. 마찬가지로 객관과 주관 보다 고차원적인 절대정신으로 보면 이 이율배반적인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 작품은 2차원이 아닌 3차원 세계에서 바라본다면 단순히 에셔가 그린 그림에 지나지 않듯이 말이다.

같은 작가의 작품 <뫼비우스의 띠 II, Mobius Strip II>(1963)을 보자. 뫼비우스의 띠를 개미가 기어가고 있다. 개미의 입장에서 뫼비우스의 띠는 딜레마이다. 안과 밖이 동일하니 말이다. 하지만 3차원의 우리에게 뫼비우스의 띠는 딜레마가 아니다. 한번 꼬기만 하면 현실에서 충분히 존재할 수 있고 이미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에셔는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한 번 꼬기 시작한다. 바로 현실상 존재 불가능한 형태를 담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다른 시점을 한 공간에 묶어 놓았다. 피카소와 세잔과 같은 아이디어지만 형식은 조금 달랐다. <위와 아래, Up and Down>(1947)에서는 같은 장면을 위와 아래시점으로 본 것을 위 아래 합쳐놓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었다. 여기서 더 들어가 <세개의 세계, Three Worlds>(1955)에서는 수면 위(나무), 수면(나뭇잎), 수면 아래(물고기)로 이루어진 세 가지 시점을 하나의 작품에 동시적으로 녹아냈다.

그리고 에셔는 이제 현실적으로 존재 불가능한 조형구조를 작품에 담아내기 시작했다. <폭포, Waterfall>(1961)와 <상승과 하강, Ascending and Descending>(1960)이다. 영원히 반복되는 폭포와 계단. 테셀레이션에서 지향한 바와 마찬가지의 무한성을 2차원에 투영한 3차원의 세계로 담아낸 것이다.

원근법에 대한 비판적인 접근으로 탄생한 이 그림은 신기하게도 뫼비우스의 띠와 정반대로 오로지 2차원 평면에서만 존재한다. 3차원적으로는 성립 불가능한 딜레마인 것이다. 3차원적으로 보이지만 3차원에선 존재할 수 없고 2차원에서만 존재가능한 것. 여기서 에셔는 2차원에 투영된 3차원은 허구라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3차원의 파괴를 실행한 것이다. 에셔의 <세개의 원구체, Three Spheres I>(1945)을 보면 구로 보이는 그림이 다른 각도에서 작품을 찍은 사진을 보면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특정 시점에서만 3차원으로 느껴지는 단순한 2차원 그림인 것이다. <도리스식 기둥, Doric Columns>(1945)에서 3차원적으로 보이게 만든 격자 배경 속 도리스식 기둥은 뒤틀려져 있다. 마찬가지로 2차원에 투영된 3차원은 허구임을 강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더글리스 호프스태터는 『괴델, 에셔, 바흐』라는 저서를 통해 시대와 직업이 다른 이 세 인물에게서 추론되는 상동성(=유사성)을 이야기한다.
괴델은 불완전성 정리를 통해 정합적이면서 무모순적인 체계의 존재가 불가능함을 입증했다. 체계는 우선 공리로 부터 시작한다. 공리로부터 정리들이 도출되고 정리들은 다시 각자 여러 명제들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괴델은 제1불완전성 정리로 참임에도 불구하고 증명할 수 없는 명제가 존재함을 입증했다. 이어 제2불완전성 정리로 체계(=공리계) 스스로가 자신의 무모순성(모순이 없음)을 입증할 수 없음을 알아냈다. 완전한 줄 알았던 체계가 붕괴한 것이다.

명제 Q는 증명 불가능하다는 명제 Q가 있다 가정할 때(각주1), 명제 Q가 참이면 Q는 증명 불가능하므로 전제(명제 Q가 무모순임을 증명가능하다)와 모순되어 Q는 거짓이 된다. 하지만 Q가 거짓일 경우 Q라는 명제는 증명가능하다. 이때 Q라는 명제는 「Q라는 명제는 증명불가능하다」이므로 서로 모순되어 Q는 참이 된다. Q가 참이면 Q는 거짓이 되고 Q가 거짓이면 다시 Q가 참이 되는 아이러니한 순환의 무한적 반복. 이 순환의 무한적 반복을 호프스태터는 에셔의 <폭포>, <상승과 하강>처럼 무한히 반복되는 폭포물, 계단 그리고 바흐의 <무한히 상승하는 카논, Canon perpetuus super thema regium>에서도 떠올린 것이다.

에셔는 알함브라 궁전을 통해 영감을 받고 기하학과 예술을 접목시켜 더 높은 예술을 가능케 했다.

사진의 발명은 여러 예술가를 위기에 빠뜨렸지만 덕분에 예술은 더 높은 단계로 도약할 수 있었다. 이제 사진과 기술의 발전은 가속하여 컴퓨터그래픽을 통해 현실에 존재 불가능한 것까지 묘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인공지능이 예술의 영역까지 침범하고 있다. 이제 또 어떻게 위기에 몰린 예술의 패러다임을 바꿀 에셔와 같은 화가가 나올지 기대되는 바이다. 그건 어쩌면 당신일지도 모른다.

각주1) 지구가 3차원 구이듯 지구의 표면 지각은 2차원이다. 종이 지도를 보면 2차원평면이지 않은가. 이처럼 구의 표면은 2차원이다
각주2) 메타수학을 수학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괴델은 괴델수를 만들어 메타수학을 수학적 명제로 전환시켰다. 명제를 수리적으로 바꾸어 검증하기 시작한 것이다. [Dem(n,x)와 Sub(n,m,x)]

참고문헌
진중권. “미학오디세이 1-2.” Humanist, 2018.
양순영. “에셔(Morits Collelius Escher)의 판화를 통해서 본 비유클리드 공간.” 강릉대학교 교육대학원, 2006.
정은희. “M.C. 에셔에 있어서 공간의 문제.” 홍익대학교 대학원,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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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힘든 한국을 만드는 것은 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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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보도에서 한국에 대한 비관적인 뉴스가 흘러나온다. 그 이유로 여러가지가 있는데, 물론 부동산과 같은 문제도 있겠지만 지나치게 경쟁주의적이고 비교하고 격차를 만드는 사회에 대한 피로감에 대한 이야기도 많았다.

 

하지만, 한국이라는 사회는 결국 우리라는 개별 구성원의 집합이다. 좋든싫든 우리가 이 한국이라는 사회를 만들어나간다. 그렇기에 한국이 가진 좋지 못한 부분을 외칠 때는 우리의 모습도 한 번만 되돌아보자. 보기 싫었던 부분이 보이게 된다.

그렇게 한국이 남들과 비교가 심해서 싫다는 사람이, 막상 앞에 있는 사람을 호구조사하고, 부동산 가격을 물어본다. 살기 힘든 한국을 만드는 것은 우리다.

 

더 이상 본인은 선량하고 나쁜 건 국가라는 생각은 버리자. 더 나은 한국을 만드는 것은, 그렇게 선긋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인정하고 바꾸고자 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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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지 축하는 사라지고 선물만 남았다.
 
내 생일을 진정으로 축하해서 그것을 선물로 나타내는 경우는 얼마나 될까?
대부분 받은 만큼 돌려줘야한다는 의무감이 크다.
 
관계가 돈으로 정해진다. 누구는 5만원 선물, 누구는 3만원 짜리 선물…
 
어느순간 선물은 거래가 되어버렸다.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 무난한 선물을 준다. 그렇기에 보편적인 기준에서 선물이 정해진다. 그 과정에 그 사람의 개성은 소멸된다.
 
얼마나 많은 뿌링클과 아메리카노를 받았는지.
 
나는 뿌링클과 아메리카노를 좋아하지 않는다. 받아도 곤란할 뿐이다.
 
2년전부터 나의 생일을 알리지 않기로 했다. 카톡에서 생일을 숨기고 스토리도 올리지 않았다.
 
쓸쓸한 생일은 다소 슬펐지만, 선물의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마음껏 타인의 생일을 축하할 수 있었고, 그 과정에 선물은 없어도 되었다.
 
생일에 타인이 필요하다는 것은 어찌보면 만들어진 현상이다. 타인의 존재가 나의 생일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오로지 그것만이 생일의 존재 의의라고 한다면, 생일은 의미가 없다.
 
남의 칭찬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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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친구라는 환상이 있었다.
 
어느순간부터
점점 친구가 지인으로 변해간다.
 
혁명을 일으킬 친구도 없다.
내 속마음을 털어놓을 친구도
인생의 중대사를 함께 할 친구도
 
오로지 가볍게 대체가능한 사람들의 집합이 되었다.
 
그렇게 동지는 사라졌다.
 
더 이상 친구의 소식은 소중하지 않다. 그저 청량리와 회기 사이의 시간 때우기 수단이 되었다.
 
나만을 위한 소식도 아니고, 그렇기에 답장을 하기도 부담스럽다.
 
뜨뭄뜨뭄한 관계 속에 우리는 오늘도 고통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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