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타워
printf("\"Tokyo Tower\" este un blog din dragoste pentru călătorii și cafea")
어른이 되고 싶었던 이유
728x90

누구나 어린시절에는 하루 빨리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누구는 빨리 술 담배를 하고 싶었을지도, 누구는 지긋지긋한 공부에서 해방될 수 있어서였을지도, 누구는 멋진 애인을 사귀고 원하는 곳에 마음껏 놀러 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어른이 되고 싶었던 이유는 무관심이었다.

 

아이들의 세계는 동물의 세계이다. 약육강식이 난무하는 정글 말이다.

약한 아이는 철저히 배제되고, 강한 아이는 모든 것을 가진다.

아쉽지만 나는 약한 아이였다.

괴롭힘 당하기 쉬웠고, 밟아도 상관없는 그런 아이였다.

 

아이팟 터치 비밀번호를 마음대로 바꾸기도 했고, (그래서 그날 이후로 내 핸드폰 비밀번호는 러시아어로 되어 있다)

놀이터에서 술래가 되었을 때, 실눈을 뜨면 모두가 반칙을 하고 있었다.

물건을 빌려주어도 돌려받지 못하기도 했다.

비비탄 총에 맞기도 했고,

안경에 자물쇠를 걸려보기도,

축구 할 때는 서로 상대 팀에 데려가라며 혼자 남은 적도 있었다.

 

물론 좋은 기억도 있었겠지만, 다들 알지 않는가.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이 있으면, 나쁜 기억이 항상 이긴다.

 

차츰 학업이 중요해지면서, 약육강식의 요소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단순히 힘의 논리에서 벗어나 더 공부를 잘하는 녀석이 무시 받지 않게 된 것이다.

다행히 나는 공부를 아주 못하지도 잘하지도 않는 상태였다.

남들에게 수험은 지옥의 시간이었을지 모르지만, 나에게 수험은 해방의 시간이었다.

다들 학업에 열중해서 괴롭힐 시간조차 없으니까.

 

“얘가 나중에 성공해서 잘나가면 졸라 재밌겠다.”

중학교 때 들은 말이다.

아직도 그 말을 한 녀석을 잊을 수 없다. 그 녀석은 기억하지 않겠지만.

 

학창 시절 내가 잃어버린 것은 자기애였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그걸 다시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자존심이라는 말이 싫다.

그때 나를 괴롭게 했던 아이들은 전부 자존심이 강했거든.

728x90

'끄적끄적 > 내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셔의 예술세계  (0) 2023.11.01
살기 힘든 한국을 만드는 것은 우리다  (0) 2023.08.10
생일에 대해서  (0) 2023.05.06
인스타그램 시대의 인간관계  (0) 2023.04.18
나르시스트와 자기객관화  (0) 2023.04.11
동아리 마케팅  (0) 2023.04.11
냄새와 향기의 차이  (0) 2023.04.06
분업의 위대함  (0) 2023.04.04
나르시스트와 자기객관화
728x90

자기객관화라하여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르시스트는 정해진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 모습이 아니라면 나를 사랑할 수 없다.

심지어 그 모습은 왜곡되기까지 한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자신을 사랑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서울대에 들어가야 나를 사랑하는 것과 같다.

서울대에 들어가지 않아도 나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건강한 자기애란 이런 것이다.

자기객관화를 토대로도 나를 사랑할 수 있다.

 

조건을 따지는 자기애는 피곤하다.

상황이 변해도 그러한 나를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자기애이다.

728x90

'끄적끄적 > 내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살기 힘든 한국을 만드는 것은 우리다  (0) 2023.08.10
생일에 대해서  (0) 2023.05.06
인스타그램 시대의 인간관계  (0) 2023.04.18
어른이 되고 싶었던 이유  (0) 2023.04.15
동아리 마케팅  (0) 2023.04.11
냄새와 향기의 차이  (0) 2023.04.06
분업의 위대함  (0) 2023.04.04
꿈은 마약이다  (0) 2023.04.04
동아리 마케팅
728x90

*본 포스팅에서 마케팅은 엄밀한 의미에서의 마케팅과 차이가 있습니다. 폭 넓게 단체를 알리고 인식을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마케팅하면 아무래도 회사에서 진행하는 광고와 홍보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회사가 아닌 동아리도 마케팅이 필요하다.

물론, 동아리는 비영리단체이기 때문에 특별한 행사가 아닌 이상 물건을 팔지 않는다.

 

그렇기에 동아리의 마케팅은 마케팅 부서라기보다 인사 부서에 가깝다. 사람들이 동아리를 인지하고 들어오고 싶게 만드는 의미에서의 마케팅인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동아리의 마케팅은 철저히 실패하고 있다.

금전적인 요소가 없기 때문에 절박하지 않다.

애초에 많은 동아리 회장이 억지로 임명되고 선발된다.

의욕이 생길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아리에 대한 애정 하나로 우리 동아리를 알리고자 한다면 아래와 같은 부분을 신경쓰도록 하자.

 

대상을 고려하라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이를 지키지 않는 동아리가 너무나도 많다.

담당자의 편의를 추구하느라, 아니면 지원자의 시선을 고려하지 못하여, 지원자에게 불편을 끼친다.

혹시 지원서를 한글 파일로 받고 있지는 않은가?

게시글에 지원서 링크를 QR코드로만 올리고 있지는 않은가?

(핸드폰으로 보고 있는데 화면 내부의 QR코드를 여는 것은 특정 기종에게 어렵거나 번거로운 일이다)

인스타댓글로 올린 지원서 링크, 클릭 가능한지 확인했는가?

 

다른 동아리를 모니터링하라

앞서 말한 지원자의 시선에서 바라본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뽑는 입장이 되면 자연스레 지원하는 사람의 시선과 멀어진다. 그렇기에 다른 동아리를 모니터링해야 한다.

우리와 비슷한 성격을 가진 동아리는 어떻게 모집을 하는지 살펴보고 내가 지원한다 생각하고 지원서를 보자.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부족한 부분과 대단한 부분이 보일 것이다. 부족한 부분은 보완하고 대단한 부분은 도입하는 식으로 발전을 꾀하자.

 

구글에 평판을 검색하라

요즘은 블로그에 활동 후기를 작성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후기에는 좋은 평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다만, 주의할 것은 후기를 적은 자를 색출해서 내리기 보다는, 안좋은 평에 대한 부분을 개선하여 이러한 부분을 지원자에게 전달하여야 한다. 홍보자료나 공식 블로그에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였음을 제시하여 불안함을 해소시켜주면 좋다.

또한, 후기에는 단체 내부 정보나 회원들의 개인 정보가 담겨있을 수 있다. 그렇기에 인사 시즌이 아니더라도 꼭 검색하여 모니터링하여야 한다.

 

사진과 자료를 조심해라

교내커뮤니티에 동아리 홍보 사진을 올린다고 하자. 어떤 동아리는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스크롤 캡처해서 그대로 올린다. 이렇게 되면, 지원자는 사진에 적힌 내용을 읽기 위해서는 확대를 해야하는 번거로운 작업이 생기고 만다.

이 경우, 사진을 잘게 잘라내어 핵심적인 내용만 여러 장 올리면 된다. 사진의 개수는 작으면 작을수록 좋다.

화질도 신경쓰자. 자료에 담긴 화질이 나쁘거나, 샘플 텍스트가 그대로 담기지는 않았는지 주의하자.

작년 자료를 활용할 경우, 연도나 회장 이름 등 갱신되지 않은 부분은 없는지 철저히 확인하자.

특히 사진 속에 회원들의 개인정보가 담겨있지 않은지 주의하자. 개인정보를 소홀히 관리하는 동아리에 들어가고 싶은 사람은 없다.

 

문의에 대한 답변은 빠짐없이 빠르게 달아라

문의 루트나 메일, 인스타그램 DM에 대한 답변은 하루를 넘어가지 않게 해라. 특히 커뮤니티 댓글과 같이 내가 답변을 달았는지 여부가 보이는 경우, 반드시 답변을 빠르게 달아라.

간혹, 답변을 늦게 봐서 무시하는 경우가 있는데, 절대 해서는 아니될 일이다.

만일 내가 지원자이고 이전 지원자들의 질의응답이 있을 때, 어떤 동아리는 전부 답변을 성실히 달았고, 어떤 동아리는 띄엄띄엄 답변을 달았다고 해보자. 어느 동아리가 마음에 갈까?

지원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면 당연한 일이다.

애초에 담당자로써 무시를 하는 것은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이다.

되도록 문의를 한 지원자가 문의를 받기 전에 자게 만들지 마라. 그 날 안에 답변을 달아주는 것이 좋다.

이러한 부분에서 일처리가 보인다. 연락도 안되고 대충 일하는 동아리에 들어가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타를 조심해라

간혹 모집 공고에 오타를 내는 경우가 있다. 띄어쓰기가 제각각인 경우도 있다.

사소한 부분에서 일처리가 보인다. 검토를 하지 않고 공고를 올리는 동아리는 제대로 운영이 될 가능성이 낮다.

단순 오타를 넘어서서 비문도 체크하고, 해당 문장이 지원자에게 어색하게 느껴지지는 않는지, 부적절한 표현은 없는지 읽고 또 읽어서 수정해야 한다.

특히 자주 있는 실수가 이전 동아리 모집 공고를 복사 붙여넣기 하면서 기수나 년도에 이전 것이 들어간 경우이다.

최악의 실수이다. 이 정도 실수를 하는 동아리라면, 내가 낸 회비가 제대로 사용될지 걱정된다.

 

내부자만 알 수 있는 표현을 쓰지 마라

간혹, 내부자만 사용하는 은어를 알게 모르게 쓰는 경우가 있다. 되도록 은어 사용을 삼가고, 필요하다면 설명을 반드시 해야 한다.

이걸 누가 그래라는 생각이 들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동아리 원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라서 그냥 쓰고 마는 것이다.

어떠한 말이 내부자 은어인지 살펴보려면, 우선 약어를 조심해라. 내부자는 자연스럽게 줄여쓰는 말이 처음 듣는 사람에게는 낯설게 다가온다.

 

감사해라

우리 동아리가 잘나서 지원자가 온다는 생각을 버려라. 한 분 한 분 감사한 마음을 잊지 말아라.

우리 동아리에 맞지 않다고 느껴져도 귀하게 대접해야 한다.

특히 면접이 끝나면 먼길 와주어서 고맙다는 말, 지원해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자. 메일로도 보내면 더욱 좋다.

이런 사소한 부분이 활동 의욕을 가른다.

콧대 높은 곳은 재수가 없다. 재수 없는 사람끼리 활동해도 즐겁지 않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동아리 마케팅에 있어서 사소한 디테일이 중요하다.

 

또한, 이 글은 동아리 홍보 담당자에게도 유용하지만, 동아리에 가입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도 도움이 된다. 사소한 부분에 신경쓰는 동아리는 회계처리나 활동계획이 제대로 되어 있을 확률이 높다.

728x90

'끄적끄적 > 내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일에 대해서  (0) 2023.05.06
인스타그램 시대의 인간관계  (0) 2023.04.18
어른이 되고 싶었던 이유  (0) 2023.04.15
나르시스트와 자기객관화  (0) 2023.04.11
냄새와 향기의 차이  (0) 2023.04.06
분업의 위대함  (0) 2023.04.04
꿈은 마약이다  (0) 2023.04.04
건축의 다양성과 기술의 연관성  (0) 2023.03.05
냄새와 향기의 차이
728x90

냄새와 향기는 무엇이 다를까?

단순히 생각하면 냄새는 나쁜 것이고, 향기는 좋은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앞에 맛있는 치킨이 있다고 해보자.

이 음식 앞에 섰을 때 후각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좋은 냄새인가 좋은 향기인가.

좋은 냄새일 것이다. 그런데도 냄새가 나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살은 어떠한가?

살향기와 살냄새

살냄새가 더 자연스럽다.

*문학적으로는 살내음이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더 많다

 

여기서 한 가지 가설을 새워보자.

냄새는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것이고, 향기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는 어떨까?

실제로 향수나 인공적으로 만든 식품에는 향이 사용된다.

바나나향 우유, 시트러스향

 

이처럼 냄새와 향기는 단순히 좋고 나쁘고를 넘어서는 기준이 있다고 생각한다.

728x90

'끄적끄적 > 내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스타그램 시대의 인간관계  (0) 2023.04.18
어른이 되고 싶었던 이유  (0) 2023.04.15
나르시스트와 자기객관화  (0) 2023.04.11
동아리 마케팅  (0) 2023.04.11
분업의 위대함  (0) 2023.04.04
꿈은 마약이다  (0) 2023.04.04
건축의 다양성과 기술의 연관성  (0) 2023.03.05
왜 갑자기 프로그래밍인가?  (0) 2023.03.05
분업의 위대함
728x90

문명의 발전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여러가지 요인이 있다.

우선 직립보행으로 우리는 도구를 쓸 수 있게 되었고,

다음으로 불을 발견하여 우리가 익혀서 섭취한 에너지는, 무식하게 긴 소화 과정을 생략할 수 있었다.

그래서 많은 에너지가 뇌로 전달되어, 우리는 보다 지능적인 활동이 가능해졌다.

더 뒤로 가면, 유기물의 탄생과 빅뱅까지 갈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명이 시작되고 나서, 우리의 발전은 분업에 비롯되었다 할 수 있다.

 

모두가 생존에 몰입하면, 생존 이외의 과학 연구와 예술에 시간 투자를 할 수 없다.

 

누군가는 생존을 위한 생산 활동에 여념하기 때문에 우리는 문명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러니 누군가가 위대한 위업을 이루었을 때는, 때로는 고개 돌려 그가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한, 이름모를 수많은 사람들을 떠올리자.

 

누구는 그가 먹을 쌀과 밀을 재배하고,

누구는 그가 버린 쓰레기를 치운다.

또 다른 누구는 그가 아플 때 치료해주고,

또 다른 누구는 그의 옆집에 불이 났을 때 빠르게 출동해서 불을 꺼준다.

 

이 세상은 혼자서는 발전하지 않는다.

728x90

'끄적끄적 > 내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른이 되고 싶었던 이유  (0) 2023.04.15
나르시스트와 자기객관화  (0) 2023.04.11
동아리 마케팅  (0) 2023.04.11
냄새와 향기의 차이  (0) 2023.04.06
꿈은 마약이다  (0) 2023.04.04
건축의 다양성과 기술의 연관성  (0) 2023.03.05
왜 갑자기 프로그래밍인가?  (0) 2023.03.05
슬라보예 지젝에 대해서  (0) 2023.03.02
꿈은 마약이다
728x90

어쩌면 꿈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그런 꿈…

 

예술은 언제나 꿈을 이야기한다.

이루고 싶은 꿈. 나는 포기하지 않아. 누가 반대해도 나는 이룰거야 하는 가사들이 가시처럼 가슴에 박힌다.

 

꿈을 꾸어야 인생인 것처럼 모두가 이야기한다.

그런데 막상 주위를 둘러보면 주변은 조각난 꿈들로 가득하다.

 

어른이 되면서 점차 평범하고 안정된 삶을 꿈꾸게 된다.

학창 시절에는 꿈이라는 단어를 붙이기도 싫어했던 그런 삶.

 

만원 전철에 몸을 싣고, 창문에 비친 죽어버린 눈동자를 애써 외면한다.

 

꿈은 마약이다.

사람의 모든 것을 집어 삼켜, 그 모든 것을 꿈이니까 한마디로 설득하려고 한다.

 

그리고 꿈에서 멀어진 사람에게 영원히 손가락질한다.

꿈에서 도망간 비겁한 자라고.

728x90

'끄적끄적 > 내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르시스트와 자기객관화  (0) 2023.04.11
동아리 마케팅  (0) 2023.04.11
냄새와 향기의 차이  (0) 2023.04.06
분업의 위대함  (0) 2023.04.04
건축의 다양성과 기술의 연관성  (0) 2023.03.05
왜 갑자기 프로그래밍인가?  (0) 2023.03.05
슬라보예 지젝에 대해서  (0) 2023.03.02
프랑스혁명과 빈체제  (0) 2020.10.21
건축의 다양성과 기술의 연관성
728x90

부산의 다양한 얼굴은 기술의 발전에서 비롯된 것이다.

 

부산은 재미있는 곳이다. 다른 도시에 비해 걷다보면 다양한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우리에게 인사를 건넨다. 그래서 마을을 걷는 동안 내 카메라는 쉴 새 없이 그 모습을 셔터에 담는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러한 다양성은 근대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그 이유는 바로 기술의 한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양식이 발현할 수 있을 정도의 기술이 부족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지역에 따라 방 구조 등이 달라지곤 한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첫째, 이러한 양식이 기후와 같은 외부 환경에 의해 좌지우지된 것이지 개성의 발현이 아니라는 점이고 둘째, 방 구조와 배치의 차이였을 뿐 본질적인 기와집 그리고 초가집이라는 건축 구조에서는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는 주심포 양식과 다포 양식 그리고 다양한 단청에도 해당하는 것이다. 결국 기술의 한계로 인해 경사진 지붕구조와 기와 또는 초가 양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세부적인 양식에서만 디자인을 달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근대 이후 철근콘크리트가 등장하면서 일변하게 된다. 서양식 건축이 들어오면서 목조와 기와로 이루어진 전통 건축은 사라지게 된다. 짓는데 손도 많이 들어가고 보수도 필요한 전통건축이 서양건축에 밀려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르겠다.

 

철근콘크리트 구조 덕분에 우리는 더이상 지붕에 경사를 두지 않아도 된다. 방수페인트를 칠하고 배수로를 만드는 것으로 귀찮게 기와를 하나하나 까는 일에서 해방되었다. 그리고 기둥식 구조에서 벽식 구조로 바뀌면서 자유롭게 방 구조를 만들고 외부 벽에 다양한 장식을 통해 개성을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 재료는 또 어떠한가? 목조에서 해방된 우리는 이제 벽돌부터 콘크리트, 유리 등 다양한 재료를 통해 건물을 지을 수 있게 되었고, 기존에는 목조라는 재료의 한계로 구현하지 못하였던 곡선 구조도 마음껏 만들 수 있게 되었다.

 

흔히들 기술의 발전이 결국은 획일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인식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 하지만 건축 기술의 발달이 가져온 것은 우리 주거문화와 건축디자인의 다양성이었다. 기술의 발전이 우리의 한계를 뛰어넘어 개성과 다양성을 발휘할 수 있게 도와준 것이다.

 

현재 우리가 보는 삭막한 도시 풍경이 기술의 발전으로 가져온 획일화의 모습으로 생각되기 쉽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서야 기와집과 초가집이 희소성으로 인해 개성 넘치는 건물로 인식된 것이지, 오히려 근대 이전에는 한옥만 가득한 획일화된 모습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아니된다. 다양성이 반드시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파리와 바르셀로나의 통제된 건축 디자인이 보기에는 아름답지만 그 이면에는 획일화된 디자인과 개성의 통제가 있었음을 기억해야할 것이다.

728x90

'끄적끄적 > 내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아리 마케팅  (0) 2023.04.11
냄새와 향기의 차이  (0) 2023.04.06
분업의 위대함  (0) 2023.04.04
꿈은 마약이다  (0) 2023.04.04
왜 갑자기 프로그래밍인가?  (0) 2023.03.05
슬라보예 지젝에 대해서  (0) 2023.03.02
프랑스혁명과 빈체제  (0) 2020.10.21
내가 일본에 가기 주저하는 이유  (0) 2020.10.13
왜 갑자기 프로그래밍인가?
728x90
고도로 발달한 과학은 마법과 구별할 수 없다.

개미는 아무리 발버둥쳐도 이 세상을 구성하는 법칙인 물리학을 알지 못한다. 개미에게 세상은 마법이다.
하지만 인간은 알 수 있다. 인간에게 세상은 잘 짜여진 시스템이다.
나는 내가 매일 쓰는 컴퓨터가 어떻게 구성되고 돌아가는지 알고싶다. 아니 모르는 게 너무 분하다. 그래서 알아야겠다.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참지 못하는 사람이다.
나는 이제 마술쇼를 구경하는 관객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올해 크게 진로를 바꾸게 되었다. 본래 꿈꾸던 일본어 통역사를 포기하고, IT에 몸을 담아보고자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였다. 갑작스럽게 프로그래밍이라는 지금까지 겪어본 적도 없는 길을 선택한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오늘은 그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첫째, 살아남기 위해서다. 요즘 IT기술의 발전이 심상치 않다. AlphaGo를 시작으로 chatGPT와 그림을 그려주는 AI까지. 올해 유독 AI에 대한 깜짝 놀랄 일이 많았다. 앞으로 이런 일은 점점 더 많아질 것이다. 지금까지 예술 통역 이런 일은 절대로 AI가 대체할 수 없다고 호언장담하던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대체할 수 없다는 영역이 점점 더 줄어드는 것 같다. 앞으로 많은 직업이 IT의 영향을 직격탄으로 맞을 것이다. 내가 선택하는 직업이 IT의 영향을 받을지를 고려하는 것은 중요하다. 산업혁명 시기 마부를 꿈꾸는 것만큼 특정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위험할 수 있다는 걸 요즘 세상이 보여준다.

많은 통역일을 하는 선생님께서 통역은 절대로 대체되지 않을 것이라 말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통역일을 하는 선생님께서 AI와 IT기술에 대해 얼마나 아는지 궁금하다. AI에 대해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AI의 일에 대해 말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다. 예술가가 아무리 예술 분야는 절대로 대체되지 않을거다라고 말해도 그 사람이 AI 전문가가 아니라면 무턱대고 그 말을 믿기에는 부족함이 많다. 바둑이 경우의 수가 많다며 AI가 이기지 못할 거라 했던 2016년 AlphaGo 대국 때의 바둑 전문가들을 생각해보라.

 

둘째, 그렇다면 살아남을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IT다. 사물 인터넷이라는 말을 보면 알겠지만, 예전에 IT와 연관이 없던 모든 분야가 IT의 영역 안에 들어왔다. 금융의 영역이던 은행은 IT기술이라는 날개를 달아 핀테크로 변모했고, 자동차는 자율주행을 꿈꾸게 되었다. 폴란드어를 하는 사람은 폴란드와 일을 하는 기업에만 필요하지만, 영어를 하는 사람은 어느 기업에서든 환영받는다. IT는 차세대 영어다. 영어를 쓰지 않는 곳이 없듯, IT 또한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어쩌면 영어보다 더.

 

셋째, 불편한 점을 스스로 개선할 수 있다. IT기술을 다루는 사람은 이제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이다. 소비자는 그저 시장에 나와있는 제품을 소비할 뿐이다. 본인이 원하는 제품이 있다면, 기업에서 그러한 제품을 만들어주길 기다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생산자는 다르다. 생산자는 본인이 원하는 것을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다. 냉장고에 있는 식품의 유통기한을 입력하면 해당 날짜에 알람을 보내도록 설정하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 살다보면 여러 불편한 점이 생기고, 이 중에서는 IT기술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많다. 이러한 기술을 다룰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 삶을 더 편리하게 만들 수 있다. 기업이 불편한 점을 알아차리고 해결책을 주기 전에 말이다.

 

넷째, 장소의 제약이 사라진다. IT업계는 컴퓨터로 일을 한다. 컴퓨터와 네트워크만 있다면 내가 파리에 있든 도쿄에 있든 상관없이 업무가 가능하다. 재택 근무와 디지털 노마드가 가능하다. 코로나19 바이러스와 같은 감염병 상황에서도 언제든지 유연하게 업무 조정이 가능하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로써는 장소의 제약이 없다는 것이 엄청난 매력이지 않을 수 없다. 에펠탑을 배경으로 카페에 노트북을 켜고 일을 한다니 얼마나 멋진가.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럴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IT업계를 벗어나면 이러한 선택조차 불가능하다. 소방관과 경찰관이 직장을 놔두고 파리에서 근무가 가능할까? 파리 소방서와 경찰서가 아니라면 힘들 것이다. IT업계는 다른 어느 업계보다도 장소의 제약에서 자유롭다.

 

다섯째, 소프트웨어는 한계가 없다. 우리는 비행기가 아니면 날 수 없다. 하지만 컴퓨터 세계 속 우리는 어떠한가. 프로그램 코드를 구현하면 우리의 아바타는 날아다닐 수 있다. 현실에서 불가능한 것이 소프트웨어의 세계 안이라면 구현할 수 있다. 집채만한 지우개도, 몇천년 전에 터진 화산의 위력도 컴퓨터로 재현할 수 있다.

 

여섯째, 직장을 잃어도 기술은 남는다. 문과 직렬에서 쌓은 커리어는 온전히 그 회사를 위한 것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은퇴를 하면 회사에서 쌓은 직무 능력이 재취업시 활용하기 어렵다. 어렵게 재취업을 하더라도 그 회사에 맞게 새로 시작해야 한다. 문과 직렬에서 법무와 회계가 아닌 이상 진입장벽이 높은 기술을 가지고 있는 직렬은 많지 않다. 하지만 프로그래밍 능력은 직장을 벗어나도 존재하며 활용 가능하다. 직장이 아닌 프리랜서라는 선택도 가능하다. 평생 직장이 사라지는 요즘 세상에서는 더더욱 중요한 사항이다.

 

일곱째, 준비과정이 명확하고 가시적이다. 문과 계열의 많은 직렬이 자기소개서와 면접전형에서 정성평가를 받게 된다. 따라서 명확하게 통과되는 커트라인이 존재하지 않는다. 경험을 수치화하더라도 모호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열심히 대외활동 성공경험 리더십 경험을 어필하지만 합격 기준을 따지자면 모호하기만 하다. 하지만 IT계열은 명확하게 요구 능력을 제시하고 본인이 요구하는 능력을 충족하는지 판단하기가 다른 직군보다 쉬운 편이다.

 

여덟째, 개발하는 환경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 동아리 친구들이나 군대 동기 등 내가 100% 어문계열임에도 불구하고 주변에 컴퓨터공학 전공이나 IT계열에 재직중인 사람들이 많았고, 어깨 너머로 바라보다 보니 개발자가 하는 일에 대해 많이 듣고 배웠다. 맨땅에서 시작하기 보다 주변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보니 안심하고 시작할 수 있다. 언제든지 물어볼 수 있는 현직자를 곁에 두고 배움을 시작하는 건 매우 큰 이점이다.

 

아홉째, 나의 성향과 어울리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평양감사도 제 싫다면 그만이듯, 아무리 좋은 일도 나랑 맞지 않는다면 그저 괴로울 뿐이다. 다행스럽게도 적성에는 맞는 거 같다. 교양수업으로 C언어를 배웠을 때 나름 좋은 성적도 거두었고, 새로운 걸 배워서 살짝 힘들긴 했지만 그걸 넘어서는 재미가 있었다. 열심히 생각해서 구현했을 때 제대로 작동할 때의 기쁨. 많이 배우면 배울수록 어려운 문제를 풀수록 그 기쁨은 커지지 않을까 기대한다.

 

물론 아직까지 본격적인 프로그래밍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두근두근하는 마음도 불안한 마음도 있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프로그래밍이라는 것이 배워서 손해볼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프로그래밍은 앞으로 내 삶에 있어 큰 무기가 될 것이다. 설사 너무 어려워 포기하고 다시 통역의 길을 밟게 되더라도, IT영역에서 쌓은 지식은 탄탄한 전문분야 하나를 만들어줄 것이다. 그리고 IT소양은 요즘 세상의 핵심 역량이다. 결코 개발자만의 무기는 아니다.

728x90
슬라보예 지젝에 대해서
728x90

지젝이란 철학자는 유명한 철학자이지만, 한국에서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은 듯 하다. 그 이유로는 아무래도 고등학교 윤리나 도덕 교과서에 그 이름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 가장 큰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지젝이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은 있어도 그의 철학에 대해 아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 이유로는 그에게 영향을 준 헤겔 마르크스 프로이트 라캉 등의 철학자들이 읽기 쉬운 편은 아니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아무래도 슬라보예 지젝의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 헤겔과 라캉 그리고 마르크스주의 등 수많은 철학에 대한 이해를 동반해야 한다는 점이 가장 먼저 발목을 잡았다. 따라서 먼저 라캉과 헤겔이라는 두 철학자의 철학을 지젝은 어떻게 해석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지젝이 말하는 라캉을 통해 헤겔을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우선 지젝은 헤겔의 변증법을 조금 다르게 바라본다. 지젝이 말하는 변증법의 정반합에서 합은 단순히 합치는 것이 아닌, 모순을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지젝은 여기서 라캉의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를 결합한다. 라캉 철학에서 상징계란 우리의 언어체계를 말한다. 이때 기표는 기의에 닿지 못하고 계속 미끄러지게 된다고 말하는데, 결국은 기표와 기의가 일치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지젝의 말에 따르면 결핍인데, 결국 실재계를 나타내는 상징계가 그것을 온전히 표현해내지 못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상징계는 실재계가 있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다. 상징계가 실재계를 온전하게 드러낸다면 그것은 곧 실재계가 된다. 따라서 상징계는 자신의 결핍 때문에 존재할 수 있다는 아이러니한 일이 되는 것이다. 만약 상징계의 기표가 기의를 완전히 나타낼 수 있다면, 주체와 타자의 구분은 사라지고 결국 이는 주체의 소멸을 의미하게 된다. 우리는 상징계의 결핍 때문에 존재할 수 있다는 충격적인 이론은 욕망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혹자는 지젝의 이러한 헤겔을 통한 라캉의 해석이 올바르지 않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설령 그 철학자가 의도한 바가 아니라 하더라도 새로운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지젝의 철학은 큰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첫번째 매트릭스 세계는 결국 실패로 끝나게 되는데, 그 이유로 사람들은 모두가 행복한 이상사회를 견딜 수 없었고, 불안과 결핍이 있어야 비로소 사회가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을 들었다. 우리는 항상 욕망이 이루어지기를 희망하지만, 그 욕망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우리가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항상 무언가를 욕망하는 상태에 남는 것이다. 이것이 곧 결핍이다. 지젝의 헤겔을 통해 본 라캉철학은 굉장히 흥미로운 해석을 제시한다.

 

영화 매트릭스의 개봉이 1999년임에 비해, 슬라보예 지젝의 첫번째 저작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이 1989년에 나왔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매트릭스에 나온 철학들이 데카르트부터 라캉, 불교철학까지 다양하고 이러한 철학적 사유는 당연히 매트릭스 개봉 이전부터 존재해왔다. 하지만 매트릭스라는 미디어 매체를 통해 대중들을 철학적 사유의 길로 인도했다. 우리 근처에 각종 미디어가 출현한지 오랜 시간이 지났다. 따라서 철학에서도 미디어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디어를 통해 철학을 한 사람들은 얼마나 되는가? 이 점에서 영화와 농담을 통해 대중들을 끌어모으는 지젝의 행보는 철학자로서는 독보적이라 할 수 있다. 혹자는 지젝을 MTV 철학자로 폄하하기도 하지만, 지젝이 적정기술과 같이 적정인문학도 필요하다 말했듯, 나 또한 인문학을 대중들에게 가까이 전달하는 것은 바람직한 길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지젝에 동의하는 바이다. 지젝만큼 유튜브에 나와 이야기하고 독특한 말투와 몸짓으로 대중을 휘어잡는 철학자가 얼마나 있는가 말이다. 특히나 그가 이야기하는 모순에 대한 농담과 말들은 설령 그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더라도 우리 마음 속에 무언가 말하고자 하는 느낌을 준다. 따라서 점점 그의 말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다만 그의 철학이 헤겔과 라캉 철학을 뿌리로 두고 있는 만큼, 그의 말이 대단히 매력적이지만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 다소 아쉬울 뿐이다.

 

지젝은 현대사회의 이데올로기 즉 시스템에 대해서도 의견을 남겼다. 현대시대 공산주의가 붕괴되고 난 이후 세계에서 포스트모던주의자는 탈이데올로기를 주장했지만, 지젝은 그것조차 이데올로기라고 지적한다. 이데올로기를 벗어났다고 믿는 그 자체가 이데올로기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자본주의의 종말을 이야기했듯이, 그 또한 자본주의의 끝을 이야기한다. 이는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이야기했던 “역사의 종말”과는 반대되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흔히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하나의 세트이며, 이 두 체제가 당연히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지젝은 이러한 믿음은 근거가 없으며, 자본주의 스스로의 한계로 인해 결국은 종말을 맞을 것이라 말한다. 실제로 현재 사회에서 공산주의 이후 자본주의로 전향한 국가 중에서 완벽한 민주주의를 이행하는 나라가 많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젝은 마르크스의 자본론에서 이야기하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이 오늘날에도 해결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동안 자본주의는 수정을 거듭해왔다. 뉴딜정책과 수정자본주의, 신자유주의까지. 하지만 지젝은 자본주의를 조금 손보는 정도로는 그 근원적인 해결이 불가능하다 지적한다.

 

여기서 지젝이 제시한 것은 공산주의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 레닌주의나 스탈린주의와 같이 실패한 공산주의를 다시 하자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말하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공산주의다. 하지만 지젝이 말하는 새로운 공산주의란 어떤 것인지, 왜 다른 체제가 아닌 공산주의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그는 이에 대해 자신은 문제제기에 의의를 두고 있다고 말하지만, 철학자로서 그가 어떤 체제를 생각하고 있는지 들을 수 없다는 것은 굉장히 공허하면서도 아쉬운 부분이다.

 

지젝은 새로운 방향성을 우리에게 던졌다. 라캉과 헤겔에 대한 새로운 해석, 그리고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아닌 새로운 체제의 가능성을 말이다. 그리고 누구보다 대중에게 가까운 철학자라 할 수 있다. 또한 스스로 좌파 철학자이자 마르크스 주의자라 말하지만 정치적 올바름과 언더도그마를 누구보다 경계한다는 점 또한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그 새로운 체제가 왜 마르크스 주의여야 하고 어떤 체제인지에 대해 말하지 않은 점, 그리고 대중적으로 다가오지만 그의 철학이 상당히 이해하기 어려운 편이라는 점은 한계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 이현우 “로쟈와 함께 읽는 지젝” 자음과모음, 2011.
  • 토니 마이어스 “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미워하는가” 앨피, 2005.
  • 최영송 “슬라보예 지젝,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 커뮤니케이션북스, 2016.

 

논문

  • 최진석 “슬라보예 지젝과 공산주의의 (불)가능성” 마르크스주의 연구 제11권 제3호, 2014.
  • 김원호 “S. 지젝의 비평담론 연구” 경북대학교 대학원, 2007.

 

웹사이트

728x90
프랑스혁명과 빈체제
728x90

프랑스혁명만큼 역사적으로 세계적으로 영향을 남긴 사건도 드물것이다. 물론 프랑스혁명이 당시 조선에 미친 영향은 없거나 있다하더라도 아주 미약할 것이다. 하지만 현대 대한민국 사회에 프랑스혁명이 미친 영향은 무시할 수 없으며, 이는 한국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프랑스혁명으로 만들어진 자유 평등 우애의 이념은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 한 획을 그었으며 현대 정치 사회의 근간을 이룬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프랑스혁명을 이해하는 것은 기본적인 소양이라 할 수 있다.

 

프랑스혁명의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당시 프랑스의 구제도적 모순 즉 앙시앵레짐에 있다. 아직 프랑스에는 신분제가 남아 있었으며, 그 신분은 총 셋으로 나뉜다. 제 1신분은 성직자, 제 2신분은 귀족이며 이 두 신분은 특권계급이다. 그리고 나머지 제 3신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 다시 귀족은 시대적 흐름에 따라 두 종류로 분화되는데 기존 대검귀족(출생으로 정해진 혈통귀족)과 새롭게 대두한 법복귀족(부르주아출신)이다. 18세기 후반 영주들은 지대 등 공납을 올리고 이미 소멸한 공납까지 징수하고자 했다. (조선시대 삼정의 문란 당시 횡횡했던 황구첨정과 백골징포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이러한 과도한 징세는 농민들의 큰 부담이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봉건적 반동’이다. 봉건적인 잔재로 인해 고통받은 건 농민들뿐 아니라 부르주아지도 마찬가지였다. 상업과 금융업에 종사하는 시민계급은 신분적으로 귀족의 하위에 속했으며 길드등의 잔재로 자유로운 무역이 어려웠으며 그로 인해 자본주의 발전에 방해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제 3신분은 점차 귀족계급에 대한 불만감을 품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 불을 지핀 것이 당시 왕실의 재정문제이다. 흔히 예상하는 바와 달리 혁명의 시작은 귀족들로부터 시작되었다. 고질적인 왕실의 재정문제는 루이 16세에 이르러 걷잡을 수 없이 비대해졌으며 각종 개혁안을 구상했지만 이해관계로 인해 번번히 실패하였다. (튀르고 개혁안, 네케르 개혁안, 칼론느 개혁안) 귀족 계급은 왕실의 재정위기를 기회로 절대왕권을 억누르고 귀족정치의 실현을 꿈꾸었다. 그렇기 때문에 칼론느가 소집한 명사회에서 그의 개혁안을 거부하고 고등법원을 통해 삼부회 소집을 요구하였다. 재정적으로 파탄이 난 루이 16세는 더이상 거부할 수 없는 상태였고 결국 삼부회가 소집된다.

 

삼부회의 소집으로 억압받던 제 3신분은 희망을 품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희망은 곧 좌절되고 만다. 각 신분은 300명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 신분별로 투표가 행해지기 때문에 제 1신분, 제 2신분의 투표를 제 3신분이 이길 수 없는 것이다. 이에 제 3신분은 머릿수를 기준으로 한 표결을 요구했다. 그와 동시에 국민의회를 선포하고 두 신분에게 참여를 종용하였다. 국민의회의 시작이다.

 

하지만 곧 국민의회는 회의장이 폐쇄당하게 된다. 이에 시민계급들은 회의장을 베르사유궁전 내의 실내테니스장으로 옮기고 자신들의 요구가 담긴 헌법이 제정될 때까지 이 의회를 해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테니스코트의 서약) 국왕 루이 16세도 어쩔 수 없이 국민의회에 참가할 것을 나머지 신분에게 지시하였다. 이렇게 사건은 일단락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곧 국왕 루이 16세가 베르사유에 군대를 집결시켰다는 소식이 파리에 전해졌고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국민의회가 공격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국민의회를 지키기 위해 민병대를 조직하였고, 무기를 찾던 민중들은 정치범 수용소로 여겨진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였다. 실제로 바스티유 감옥에는 정치범은 없었고 무기또한 얼마 없었지만 혁명의 첫 승리를 장식한 민중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이때 귀족들이 외세의 힘을 빌려 혁명을 진압하려한다는 소문이 돌았고 공포에 휩싸인 민중들은 귀족을 습격하고 성에 불을 질렀다. 이 소식은 바로 파리에 전해졌고, 귀족이 포함된 국민의회 시민대표들은 당황했지만 혁명은 농민의 지지없이 불가능했으므로 곧바로 봉건제를 폐지하겠다는 선언을 하였다. (봉건제 폐지선언) 그와 함께 혁명의 이념이 담긴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인권선언)을 채택하였다. 이제 국민의회는 초기에 요구했던 헌법을 제정하기로 하였다. 91년 헌법의 제정이다. 91년 헌법에서 시민은 능동적 시민과 수동적 시민으로 나뉘고, 이 중 능동적 시민에게만 참정권을 인정했다. 이로써 입법의회가 출범하였다.

 

입법의회는 두 분파로 나뉘었는데 기존 자코뱅파에 로베스피에르로 인해 공화주의자가 늘어나자 입헌군주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자코뱅파를 나와 페이앙파를 만들었다. 하지만 입법의회를 이끌어나간 건 둘 중 어느쪽도 아닌 중간파인 지롱드파였다. 지롱드파는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절대주의 체제에 철퇴를 가할 혁명전쟁을 시작했다. 신념으로 시작한 전쟁은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고 혁명으로 인해 군대를 지휘할 귀족장교는 다수가 외국으로 망명하여 병력 공백이 심각했다. 그로인해 혁명군은 패전을 거듭했고 위기감을 느낀 프랑스는 의용군을 조직하였고 그 결실을 맺어 발미에서 프로이센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다. 그와 동시에 국민공회가 시작되었다.

 

이전 국민의회시절 국외로 도망가려다 잡힌 (바렌느 도망 사건) 루이 16세는 혁명전쟁의 계속되는 패전이 그 자신이 외국과 내통했다는 의심을 받았고 결국 국민공회 때 처형당하게 된다. 국왕의 처형은 유럽 군주제 국가에게 위기감을 선사했고 이는 혁명전쟁의 적이 늘어나게 만들었다. 이로 인해 대규모 징집을 시행되었다. 그와 동시에 경제적 상황이 나빠지면서 반혁명반란이 잇달았고 국민공회는 지방을 감시하기 위해 혁명재판소와 공안위원회를 설치하였다. 민중의 힘을 받은 자코뱅파는 지롱드파를 숙청하고 공포정치를 주도했다. 로베스피에르는 반대파들을 수도없이 숙청하였고 이는 자코뱅파의 분열로 이어졌다. 신임을 잃은 로베스피에르는 결국 테르미도르의 반동으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혁명의 과격성을 경계한 테르미도르파는 95년 헌법을 제정하고 5명의 총재가 주도하는 총재정부를 만들었다. 하지만 허약한 총재정부는 곧 나폴레옹의 쿠데타로 막을 내렸다. 이는 마치 과거 허정과도정부와 장면내각이 5.16군사정변으로 끝이난 것과 과정이 유사하다. 나폴레옹은 나폴레옹 법전을 선포하고 국민투표를 통해 스스로 황제가 되었다. 혁명으로 혼란스러웠던 민중은 안정을 택한 것이다.

 

제1제정시기 나폴레옹은 전 유럽으로 나아갔다. 곧바로 전유럽은 프랑스 제국의 위성국가와 반강제적 동맹국으로 정리되었다. 하지만 영국은 이에 속하지 않았는데 나폴레옹은 괘씸한 영국에 대륙봉쇄령을 통해 고립시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러시아가 봉쇄령을 무시하는 모습을 보이자 러시아원정을 나서게 된다. 러시아원정에 실패한 나폴레옹은 엘바섬에 유배되었다. 후일 엘바섬을 나와 재집권을 획책했으나 워털루전투에 패하고 추방되었다.

 

나폴레옹이 전 유럽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프랑스혁명의 이념이 전 유럽으로 전파되었고 자유주의가 싹트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나폴레옹으로 인해 굴욕을 맛본 국가들에게 민족주의가 싹트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의 재상 메테르니히는 유럽에 자유주의와 민족주의가 퍼져나가는 것을 탐탁치 않게 생각했고 빈회의를 통해 시계바늘을 프랑스혁명 이전으로 돌리고자 하였다. 유럽의 국제협력으로 보수반동적인 빈체제가 시작된 것이다. 메테르니히는 자유주의와 민족주의 운동을 철저히 탄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빈체제는 곧 벽에 맞닥드리게 된다.

민족주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아메리카의 식민지 독립을 탄압하고자 하였으나, 영국은 상품시장 형성을 이유로 독립을 찬성했고 이에 영향을 받은 미국은 먼로주의를 통해 유럽의 아메리카 개입을 경고하는 고립주의를 선언했다. 그리고 빈체제는 그리스독립전쟁을 통해 본격적으로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스와 로마의 기반을 둔 유럽의 사정상 그리스독립을 지지하고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1830년 중도적인 입장을 견지한 루이18세의 뒤를 이어 보수반동적인 샤를 10세가 즉위하면서 파리에서 자유주의 혁명이 일어났다.(7월 혁명) 시민의 지지를 받아 루이 필립이 즉위하였다. (7월 왕정) 하지만 처음 기대와 달리 보수적인 정치를 이어나간 7월왕정에 대해 사람들은 불만을 품게되고 2월 혁명이 일어나 공화정이 시작된다. 프랑스에서 일어난 7월 혁명과 2월 혁명은 전 유럽에 영향을 미치고 결국 오스트리아에서도 2월 혁명의 영향을 받아 3월 혁명이 일어났다. 혁명의 결과 메테르니히는 실각했고 이로써 빈체제도 종말을 고했다.

728x90